고령사회 진입 계기 노인 차별 기획 <상편>
지난 20일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 앞 버스 정류장. 이재남(75) 할머니가 접이식 손수레에 장 본 물건을 가득 담고 버스를 기다렸다. 두 발은 인도 끄트머리에 간신히 걸친 채 버스가 들어오는 방향을 끊임없이 살폈다.
“버스가 올 때 바로 타려면 이렇게 기다려야지. 의자에 앉아 있다가 걸어가는 걸 기사들이 어디 기다려 주나요.”
노인차별 37.7% '대중교통 이용 시' #버스 계단 천천히 오르면 눈치보여 #"저상버스 편하지만 자주 안 와" #전국 저상버스 보급률 22.3% #12~16년 국토부 목표치 절반 수준 #법안 발의, 예산 배정에서도 뒷전 #19·20대 국회, 노인 관련 법안 242개 #아동 관련 법안은 697개로 3배 달해 #가결 법안은 아동 관련이 4배 많아 #올해 고령 관련 예산 14조원 #저출산 해소 예산은 24조원 #"노인=소멸하는 존재…관심도 낮아"
운 좋게 버스에 바로 탄다고 해도 짐을 들고 높은 계단을 오르기 쉽지 않다. 성큼성큼 올라타서 교통카드를 찍는 젊은이들과 달리 한 발씩 차례로 올리며 천천히 탑승한다. 손에 든 짐까지 있다면 기사들이 재촉하는 일이 종종 생긴다.
2015년 노인실태조사(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노인 차별 3건 중 1건(37.7%)은 대중교통 이용 시에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흔하게 발생하는 차별 사례다. 이 할머니는 “버스 기사나 승객에게 잔소리 듣는 건 이제 익숙해졌다. 계단이 없고 바닥이 낮은 버스(저상버스)는 그나마 오르기 편한데 자주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처럼 '이동권' 차별이 빈번한 데엔 저상버스 부족이 한 몫을 한다. 장애인·노인 등을 위한 저상버스 전국 도입률은 22.3%(지난해 말 기준)다. 버스 4대 중 1대도 되지 않는다. 2012~2016년 2차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국토교통부)에서 세운 목표 41.5%에 한참 못 미친다. 저상버스가 없는 노선도 있다. 경사가 심한 지역에는 투입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2월 발표한 3차 계획의 저상버스 보급 목표치는 42%다. 2차 계획과 비교하면 사실상 제자리 걸음이다. 저상버스 도입으로 혜택을 받는 교통 약자 중 667만 명(51.2%)이 노인이다. 장애인(141만 명)보다 많다. 홍모(75) 씨는 “버스는 불편하고 택시는 비용이 부담돼서 보통 지하철을 타는데 역 오르내리기도 만만치 않다. 저상버스만 많아져도 이동이 훨씬 편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 법안 발의와 예산 배정에서도 노인은 뒷전이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0~14세 아동 인구를 추월했지만 법안 수는 이에 비례하지 않는다. 19대(2012~2016년)·20대(2016~2020년) 국회에서 발의된 노인 관련 법안은 총 242개(9월 기준)다. 같은 기간 아동 관련 법안은 697개가 발의됐다. 노인 관련 법안의 3배 가까이 된다. 가결된 법안 수도 노인 19개, 아동 76개로 정확히 4배 차이다.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에서도 '고령사회'는 '저출산'에 밀리는 신세다. 올해 중앙정부가 배정한 고령사회 관련 예산은 약 14조원이다. 저출산 해소 예산(24조원)보다 10조원 가량 적다. 시행 과제는 고령사회가 99개로 저출산(89개)보다 많지만 예산은 60% 언저리다. 지난해 대비 예산 증가율도 저출산 분야는 12.5%(2조7000억원)인 반면 고령사회 분야는 3.1%(4000억원)에 불과하다.
정경희 보건사회연구원 인구정책연구실장은 “아동은 성인이 돼서 사회의 생산인구로 들어가지만 노인은 소멸하는 존재로 여겨져 관심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라고 지적했다.
◇특별취재팀=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이민영ㆍ정종훈ㆍ박정렬ㆍ백수진 기자 sssh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