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씩씩하고 해학적 … 시인의 삶 고스란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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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9호 21면

[CLASSIC COLUMN] an die Musik: 가곡 ‘명태’ 

바리톤 오현명의 음반. 애주가들이 특히 즐겨불렀던 '명태'가 수록돼 있다.

바리톤 오현명의 음반. 애주가들이 특히 즐겨불렀던 '명태'가 수록돼 있다.

생선 중 평생 가장 많이 먹은 게 명태다. 어린 시절엔 겨울이 되면 동탯국이 매일같이 밥상에 올라왔다. 그때는 질린다는 느낌도 있었는데, 세월이 흐르고 보니 그 시절이 황금기였다. 이제 명태는 동해에서 자취를 감춰 정부 차원의 ‘명태 살리기 프로젝트’가 가동되고 있을 정도다.

동해에서는 사라졌지만 북쪽 러시아 바다에는 여전히 많다. 덕분에 옛 입맛대로 명태를 맛볼 수 있다. 태백산맥 넘어 출장갈 일이 있으면, 진부령의 단골집에 들러 황탯국을 먹는다. 노란 황태 살에 겨울 무와 두부를 넣고 팔팔 끓인 국을 한 뚝배기 마시면, 온 몸이 후끈해진다. 회사 앞 식당에서는 간장만으로 양념한 코다리찜을 찬으로 준비하는데, 내가 가면 한 접시를 더 내놓는다. 광화문 카페에서는 먹태를, 집 앞 호프집에서는 노가리를 구워달라고 한다. 귀한 음식 명태를 이토록 다양하게 먹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명태’라는 우리 가곡이 있다. 입사 초 북한산 야유회에서 진면목을 알게 됐다. 체구는 작아도 배포만큼은 태산만 한 선배가 있었는데, 흥이 도도해지자 이 곡을 자청해서 불렀다. 몸을 잘 가누지도 못했지만 소나무 가지를 붙들고 끝까지 정확하게 불러냈다. 처음에는 아름다운 바리톤 음성에 놀랐고, 나중에는 변칙적인 멜로디, 리얼하기 짝이 없는 효과음에 폭소를 터뜨렸다. ‘명태’는 6·25 전쟁 중인 1952년 바리톤 오현명이 부산에서 발표했는데, 청중의 반응이 나와 비슷했다고 한다. 객석 여기저기서 킥킥대는 소리가 들렸고 평론가는 “그걸 노래라고 발표하느냐”고 나무랐다.

그러나 노랫말을 지은 시인 양명문은 성공의 확신이 있었던 모양이다. 전쟁 때 대구의 고전음악 감상실 ‘녹향’을 들락거리던 그는 환도할 때 노트에 쓴 가사 원본을 주인장 이창수에게 찢어 주며 “장차 큰 돈이 될 테니 걸어 놓으라”고 했다. 그의 장담대로 ‘명태’는 70년대 이후 재평가를 받았다. 씩씩하고 해학적이며 서민의 애환이 깃든 노래는 전에 없던 독특한 분위기로 주목을 받았다. 머리가 하얗게 센 오현명은 TV에 나오면 으레 ‘명태’를 불렀다.

‘명태’의 노랫말이 그리는 시인은 양명문 자신일 것이다. 한밤중에 시를 쓰다가 소주를 마시는 가난한 시인이 그 아니면 누구겠는가.

그는 낙천적인 사람이다. ‘검푸른 바다 밑에서 사랑하는 친구들과 줄지어 떼지어 꼬리치며 춤추며 몰려 다니다가 어부의 그물에 걸리면’ 끝장이다. 그런데도 시인은 ‘어진’ 어부라고 했다. ‘살기 좋다는 원산 구경’을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명태는 태백 준령에서 겨우내 얼었다 녹으며 노랗게 익어간다. ‘바다에서 길이나 대구리(머리)가 클 대로 큰’ 명태가 딱딱한 황태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시인은 그것을 ‘미라가 된 이집트 왕’이라고 했다.

첫 번째 절정은 “카~”에서 온다. 깊은 밤, 출출한 뱃속에 독한 ‘쐬주’를 털어 넣으면 고통과 환희가 섞인 감탄사를 토할 수밖에 없다. 6·25 당시의 소주는 몇 도였을까. 북한산 야유회 때만 해도 25도였고, 그 소주잔을 기울이면 누구나 명태의 시인이 되었다. “카~.”

두 번째 절정에 오른다. 선배는 골짜기를 향해 아랫배에서 터져 나오는 함성을 질렀다. “짝짝 짖어지어 내 몸은 없어질지라도~.” 미라처럼 뻣뻣해진 명태는 한밤중에 시인의 안주가 되어 세상에서 사라진다. 그리곤 이름만 남는다. 몸은 없어지지만 이름만이라도 남기를 바라는 것은 외롭고 가난한 시인 자신이다. 선배의 열창 덕분에 그 특별한 노래는 평생에 걸쳐 가끔 LP를 뽑아 드는 애청곡이 되었다.

날씨가 추워졌다. 며칠 전 회사 구내식당에서 오랜만에 동탯국을 먹었다. 베링해의 깊은 바닷속을 헤엄치다 그물에 걸려 내 식탁까지 왔을 것이다. 옛 선배의 ‘명태’가 귓가를 울렸다.

글 최정동 기자 choi.jeongd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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