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위의 오늘과 내일|「굵직한 문제」제기…기대이상 각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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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노태우정권의 국정운영기조와 그 실천방안을 건의하기 위해 발족한 민주화합추진위원회가 예상을 뛰어넘는 활발한 발언과 활동을 계속하고 있어 국민들의 지대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출범당시에는 『모여봐야 별 뾰족한 수가 나오겠느냐』는 회의적 시각도 없지 않았으나 그간 4차에 걸친 전체회의를 통해 민화위는 광주사태·박종철군사건·새마을운동 중앙본부등「민감하고 굵직한」문제들을 거론, 국민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토론을 거듭하면서 모든 문제를 터놓고 이야기해보자는 공감대가 굳어져가고 노당선자 역시 『어떤 건의든지 진지하고 적극적으로 수용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어 민화위는 나름대로 생명력을 더해가는 느낌.
그러나 민정당측으로선 각종 의혹사건에 대한 위원회의 과감한 접근에 내심 당혹과 불안해하는 표정이 역력하고 벌써부터 위원회가 만들 「최종건의안」의 모양과 수용 여부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
민정당은 민화위가 정권교체에 앞서 광주사태등 사회의 응어리를 여과시키는 정치적 완충역할을 해주었으면 하는 생각이었으나 예상외로 빨리 폭발성이슈로 달려가자 「이러지도 저러지도」못하는 사태가 오지 않을까 걱정하는 눈치다.
또한 위원회 내부에서도 문제접근과 해결방식을 놓고 의견의 대립이 점점 심해져 「최종합의」전에 몇몇은 탈퇴할 것이라는 소문이 벌써부터 나돌고있다.
○…민화위가 안고있는 과제 중 가장 풀기 어려운 것은 역시 광주사태. 이관구위원장은 취임 기자회견에서 『문제를 싸둔다고 구린내가 안나겠느냐』며 「진상 규명」이 거론될 것을 일찍부터 시사했다.
공개토론이 벌어지자 현장 조사반 파견, 당시의 미CBS-TV 녹화테이프를 보자는등 「선진상조사, 후처방론」이 강력히 제기됐다. 그러나 다수 위원들은 조사부터 하자는 광주사태 관계자들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그렇게 하면 긁어 부스럼이 되지 않겠는가, 최상의 수습책은 유가족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하는 것이라는 등의 신중론을 폈다. 「선진상조사」 주장자들은 당국의 말대로 『더 조사해서 나올 것이 없다면 조사를 마다할 이유가 어디 있느냐』며 『관련자들의 책임문제 때문이 아니라면 당당히 조사하자』는 입장.
그러나 다수의견은 현실적으로 지금 현지에 가서 더 조사할 것이 없고, 해결방안과는 관계없는 유언비어나 확인하고 다닐 바에야 사망자의 명예 회복과 충분한 보상쪽에서 화합 방안을 찾는 것이 더 생산적이라는 주장이다.
「광주문제」를 둘러싼 또 다른 쟁점은 이 멍에를 짊어질 사람이 현대통령이냐, 아니면 차기 대통령이냐는 문제.
한 위원은 『이 어려운 짐은 현대통령이 다 걸머지고 물러나 새 출발하는 차기대통령에게 부담을 주지 말아야 한다』며 『이 뜻을 우리가 전대통령에게 건의하자』고 주장해 상당한 공감을 받았다.
하지만 이 제안은 『위원회의 설치목적은 차기대통령에게 건의하는 것』이라는 반대에 부닥쳤고 『위원장단이 비공식적으로 전대통령을 찾아가 「사과」를 건의하자』는 절충안이 나왔으나 더이상의 진전은 보지못했다.
다만 최근 임시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남재희 민정당정책위의장이 『광주사태의 해결은 현대통령의 임기중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 것과 관련, 앞으로도 계속 논란의 대상이 될것 같다.
○…민화위는 광주사태 외에도 박종철군 고문치사 조작사건, 범양비자금·새마을운동본부 비리등 제5공화국에서 일어난 대형 의혹사건들에 대해 집요한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특히 박군사건과 관련해서는『검찰이 재수사해봐야 국민이 납득하지 않는다. 대한변협이나 대학교수들이 참여하는 특별조사기구 구성을 건의하자』는 의견이 전직 대법원판사(이회창)에 의해 제기돼 법조계에 충격을 던졌다.
법조계는 민화위의 이같은 「과감성」에 대해 공개적이고 진지한 논의는 환영할만한 일이나 사법부의 제자리찾기 운동이나 국민화합이라는 취지에서 자꾸까발리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이 니라는 우려 표명이 있었다는 것.
민정당의 한 관계자는 『민화위가 국회의 대정부 질문장은, 아니지 않느냐』면서『문제 제기에만 중점을 둘것이 아니라 해결 방안을 국민화합적 차원에서 찾는 것이 우선 돼야할것』이라고 강조.
새마을운동본부 문제에 대해서도 위원들은 수백만평의 당을 불법사용한 사건에 군수 한명이 인책됐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개탄.
위원들은 노 당선자가 선거때 『제5공화국에서 있었던 비리라도 처벌 근거가 있으면 새 공화국에서 재조사할 수도 있다』고한 발언과 관련, 새마을운동본부의 철저한 수사를 최종건의서에 채택할 기세.
이처럼· 민화위가 대형사건을 건드리자 갑자기 각종 민원이 위원회에 쏟아져들어와 관계자들이 처리에 부심하고 있다.
구체적 실례로 80년 해직공직자단체(대표 김형태)는 탄원서를 제출, 『노태우후보의 대통령당선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면서 민화위가 자신들의 명예회복·복직·보상등을 위해 힘써줄 것을 탄원했다.
○…그러나 민화위는 막상 분과위 활동에 들어가자 시간적인 제약과 전문분야 지식의 한계등으로 진행 자체에서부터 다소 산만한 인상.
특히 사회적 이목을 끌었던 대형사건 등 개별적 사안이 아닌 「부조리 척결방안」 「지역감정해소」등 일반의제를 다루는데 있어서는 주어진 과제의 중요도에 비해 형식적인 문제점 나열에 그쳐 「수박 겉핥기」수준이라는 평도 없지 않다.
25일 지역감정 해소방안을 논의한 국민화합분과위의 경우 토론 도중에 『지역감정문제를 다루지 않는 것이 지역감정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의견도 있었고 체계적인 원인분석보다 다소 중구난방식 「불만토로」를 하는 모습도 노출돼 앞으로 의견을 어떻게 집약해나갈지 주목.
이같은 산만한 토론에 부정적 시각도 없지 않으나 일부에서는 『뚜렷한 결론을 비록 내지 못하더라도 그동안 음지에서만 떠돌던 많은 이야기들을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여 공론화시킨다는 자체만으로도 의의는 적지 않다』고 민화위의 존재 의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것도 사실이다. <김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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