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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으로] 하와이에선 물고기로 상추 키운다 … 흙·비료 없는 자연순환 농법에 주목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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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친환경 유기농 ‘아쿠아포닉스’ 현장

카후마나 농장의 물고기 수조 앞에 선 이 농장 농부 줄리아. 여기선 물고기를 이용한 수경재배인 아쿠아포닉스 농법으로 채소를 기른다. [안혜리 기자]

카후마나 농장의 물고기 수조 앞에 선 이 농장 농부 줄리아. 여기선 물고기를 이용한 수경재배인 아쿠아포닉스 농법으로 채소를 기른다. [안혜리 기자]

‘유기농 채소와 과일을 생산하는 농장이라더니 웬 물고기?’

물고기 배설물이 채소 영양분 #식물이 정화한 물, 다시 수조로 #현지 유명 레스토랑·마켓에 납품 #펌프 돌리는 전기도 태양열 이용 #지속 가능한 농법으로 떠올라

하와이의 관문인 호놀룰루 공항이 있는 오아후 섬 서쪽 와이아나에 지역의 ‘카후마나 농장&카페’를 지난 11월 4일 찾았을 때 갸우뚱했다. 한국인에게 하와이는 그저 아름다운 해변으로 유명하지만 현지인은 물론 미국 본토 사람들은 바다가 아닌 섬 내륙의 농장 투어도 많이 한다. 하와이 농장이 다른 지역에 비해 뭐가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서 ‘제7회 하와이 푸드&와인 페스티벌’ 참석차 이달 초 오아후에 간 김에 농장 투어에 나선 참이었다.

넓은 초록 평지 뒤로 병풍처럼 둘러선 산이 어우러져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들어내는 이 농장을 방문하기 전 미리 확인한 정보에는 평균 나이 30세를 넘지 않을 정도로 젊은 농부들이 주축이 돼 친환경 농법으로 생산한 채소를 오아후 각지의 레스토랑과 마켓에 공급하는 곳이라고 했다.

그런데 농장에 발을 딛는 순간 처음 마주친 게 넓은 허브 온실이나 이국적인 망고 나무가 아니라 큼지막한 원형 수조에 가득 담긴 물고기라니. 직접 생산한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제공하는 이 전형적인 팜투테이블(farm-to-table) 농장에 왜 관상용도 아닌 아이 팔뚝만 한 크기의 물고기로 가득 찬 수조가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인근 쿠니아 공장에서도 물고기 수조에서 흘러나온 영양분 섞인 물로 수경재배를 한다. [안혜리 기자]

인근 쿠니아 공장에서도 물고기 수조에서 흘러나온 영양분 섞인 물로 수경재배를 한다. [안혜리 기자]

조금 더 찬찬히 둘러보니 물고기 수조 바로 옆 조금 낮은 위치에선 상추 같은 여러 채소가 수경재배로 자라고 있었고, 또 그 바로 옆 좀더 낮은 곳에는 물만 담겨 있는 또 하나의 수조가 보였다. 수조와 수조는 서로 파이프로 연결돼 있었다. 혼란스러워하는 내 얼굴을 보더니 농장 투어 가이드로 나선 농부 줄리아가 “이게 바로 아쿠아포닉스 시스템”이라고 설명해줬다.

아쿠아포닉스? 하이드로포닉스(hy droponics·수경재배)는 들어봤지만 아쿠아포닉스는 생소했다. 이게 대체 뭘까.

줄리아는 이렇게 설명했다. “틸라피아 같은 민물고기를 키우면서 나온 배설물과 유기물이 섞인 물을 아래로 흘려 이 물로 상추 등 채소를 수경재배하고, 이 과정에서 식물은 자연적으로 물을 정화하죠. 이렇게 깨끗해진 물을 다시 물고기 키우는 데 쓰는 자연 순환 방식이에요. 버려지는 물이 거의 없을 만큼 자원 낭비가 적은 데다 물고기 모이를 주고 수경재배용 파종 작업 외에는 사람이 직접 신경 쓸 일이 없어 적은 노동력으로도 유지가 가능해요.”

아쿠아포닉스는 별도의 영양분을 더하지 않고 물고기 양식 과정에서 나오는 배설물을 영양분으로 쓴다는 게 하이드로포닉스와 달랐다.

그제서야 낯선 아쿠아포닉스 시스템의 작동원리가 이해가 됐다. 하지만 궁금증은 여전히 남았다. 비록 이 농장이 오아후의 가장 럭셔리한 호텔인 포시즌스 리조트 코올리나 등에 식자재를 납품할 정도로 인정받고 있다고는 하나 하와이에서 이 같은 아쿠아포닉스가 얼마나 널리 활용되고 있는지 등등 말이다.

그런 의문은 자동차로 30분 떨어진 쿠니아 컨트리 팜에 가본 후 확실히 풀렸다. 이곳에서 더 대규모의 아쿠아포닉스 시스템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곳은 틸라피아가 가득 담긴 3개의 물고기 수조에서 나오는 물로 무려 29m×2m40㎝짜리 수경재배용 수조 18개에서 상추 같은 잎채소를 키우고 있었다. 이에 사용되는 땅 크기는 1에이커, 그러니까 4000(약 1200평) 정도에 불과하지만 생산량은 엄청나다. 전문가들은 같은 크기라면 많게는 30배 이상의 생산성을 보인다고 말한다. 게다가 모든 과정이 거의 자동으로 이뤄져 이 공정을 관리하는 건 딱 1명이면 된다.

하와이 사탕수수로 만든 럼을 생산하는 마누렐레 증류소와 맞붙어 있는 이곳 쿠니아 컨트리 팜 투어를 도와준 가이드 브룩은 “아쿠아포닉스는 친환경적일 뿐 아니라 물 자원의 낭비가 거의 없고 인건비도 덜 들어 경제적이라 하와이 주정부도 적극적으로 농가에 아쿠아포닉스를 알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카후마나 농장에서 키운 채소로 만든 샐러드. [안혜리 기자]

카후마나 농장에서 키운 채소로 만든 샐러드. [안혜리 기자]

실제로 아쿠아포닉스에는 농약과 화학비료는커녕 아예 흙도 필요없다.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맨 처음 설비를 갖추는 데 들어가는 초기 비용을 제외하고는 물 순환용 펌프 구동에 필요한 전기값 정도가 가장 큰 비용 요소다.

이 농장에서는 하루 8만6000갤런(약 32만6800L)의 물을 재순환시키는데 이는 전체 사용되는 물의 86%에 달한다. 쿠니아 컨트리 팜은 펌프 구동을 위한 전기마저도 태양열을 이용하고 있다. 농작물 생산뿐 아니라 전기 역시 지속가능한 에너지를 활용하고 있다는 말이다.

천국 같은 기후와 환경을 자랑하는 하와이. 뛰어난 자연환경을 누리기만 하는 줄 알았더니 미래에도 지금 같은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이런 시도를 끊임없이 하고 있었다.

오아후=안혜리 기자 ahn.hai-ri@joongang.co.kr

[S BOX] 한국선 KAIST 출신 두 청년이 아쿠아포닉스 농사

카카오의 투자전문자회사인 케이벤처그룹은 2016년 생소한 업종의 스타트업에 투자를 했다. 한국의 대표 공룡 IT업체가 고른 건 잘나가는 게임회사나 기발한 신사업이 아니라 뜻밖에도 농업 관련 회사였다. 바로 KAIST 출신의 박아론(30)·전태병(28) 두 공동대표가 운영하는 스타트업 만나씨이에이(CEA)다.

이 회사는 한국에서는 아직 생소한 아쿠아포닉스를 본격적으로 시도하고 있는 몇 안 되는 회사다. 2015년 이 방식으로 첫 수확을 한 이후 규모를 점차 확대하고 있다. 투자 결정 당시 카카오 관계자는 “아쿠아포닉스를 비롯한 스마트팜의 밝은 미래를 보았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농업진흥청도 농업기술박람회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아쿠아포닉스의 장점을 알리고 있다. 소비자 사이에서도 “아쿠아포닉스 농법으로 생산한 채소는 신선도가 오래 가고 맛도 좋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호감도가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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