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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치안본부장 구속계기|일벌백계보다 제도개선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경찰총수인 강민창 전 치안본부장의 구속은 우리에게 대단한 충격을 던져주었다.
그러나 고문경찰관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는 여론이 아무리 높다하더라도 법정절차를 무시하거나 죄형법정주의 원칙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구속여부를 결정하는 재판에서는 특히 형소법70조의 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해야할 것이다.
강민창씨는 도주의 염려가 없음은 말할 것조차 없고 증거인별의 염려도 없다고 나는 본다. 즉 부검의와 과수소장의 조서가 이미 작성되어 주 증거가 확보되었고 검사 작성서류는 법상 증거능력을 인정받고 있음이 그것이다.
다음은 직무유기에 관한 이견이다. 즉 「철저한 진상조사를 지시할 직무상의 의무가 있음에도」란 영장내용을 살피건대 치안본부장은 구체적인 수사사건에 관하여 직무상 수사지시를 할 의무가 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나의 견해다. 근거로 치안본부장의 행정법상 지위는 최상급 경찰관청인 내무장관의 보좌관으로서 관청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것이지 결정권을 갖는 관청이나 지휘관이 아니다.
일반적인 수사지휘권은 그의 직무범위 내라 하겠으나 구체적 수사사건에 관한 지휘권은 전혀 법령상에 근거가 없다 하겠다.
형소법96조에 의한 총경이하의 사법사찰관의 검사지휘아래 구체적 수사사건을 담당하고 있을 뿐이다.
분명한 것은 법령상의 직무의무가 없는 자에게 직무유기의 형사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는 점이다. 어떻든 치안본부장의 직무범위에 관하여 유권해석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유죄는 논할 수가 없다. 13만 경찰 모두가 마치 얼굴에 모닥불을 뒤집어 쓴 것만 같은 모욕을 느끼면서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이들을 처벌하기에 앞서 경찰의 제도·조직·운영을 보완하고 경찰자체의 체질개선에 대한 진지한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만일 정부가 일벌백계하는 것만이 가장 현명한 대처방안이라고 판단했다면 그것은 너무나도 큰 오산이요, 무지의 소치라고 감히 단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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