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희기자의맛따라기] 털레기를 아시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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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레기(털래기 또는 털네기)라는 음식이 있다. 사전에 없는 말이지만 농촌진흥청 '향토음식' 홈페이지(http://www2.rda.go.kr/food/intro.htm)에 보면 경기도 고양의 음식으로 올라 있다. 명칭과 유래에 대해서는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미꾸라지탕에 갖은 야채와 국수, 양념류 등을'털어 넣는다'는 의미에서 유래했다고 고양의 토박이 노인들은 풀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김포.시흥.안산.파주.양주.포천 등지 음식점에도 비슷한 음식이 있다. 경기도 서북부 거의 전 지역에서 향토.향수 음식으로 전해 오는 것이다. 재료나 이름은 조금씩 달랐지만 조리법은 거의 같았다. 음식 내력이 비슷하기 때문일 게다. 고기가 귀하던 시절 개울에서 잡은 물고기에, 양을 불리기 위해 부재료를 많이 넣고 해먹던 천렵요리 또는 가정요리가 음식점 메뉴로 정착했으리라. 기원을 따지자면 애달프지만 자연산 민물고기를 뼈째 익혀 먹는 데다, 발효식품 고추장에 각종 야채가 듬뿍 들어갔으니 요즘 말하는 웰빙음식으로 손색이 없다.

미꾸라지나 자잘한 민물고기가 기본재료다. 통째로 넣고 먼저 끓인다. 양념은 대부분 고추장만 쓴다. 원형에 가까울수록 국물은 따로 만든 육수가 아니라 맹물이다. 야채는 깻잎.애호박.풋고추.홍고추 등 주변에 있는 대로 넣는다. 감자나 미나리를 넣기도 한다. 끓을 때 파와 다진 마늘, 국수를 넣고 한소끔 더 끓여 먹는다. 건지를 (안주로) 건져 먹고 국물을 보충해 마른국수나 수제비를 떠 넣어 먹기도 한다.

털레기에 대한 전혀 다른 증언도 있다. 외교관의 부인이자 요리에 두루 능통한 주부 장선용(66)씨는 외국에 사는 며느리에게 편지로 솜씨를 대물림했다. 편지는 주변의 주선으로'며느리에게 주는 요리책'(1993년 이화여대 출판부)이 됐다. 여기엔 사뭇 다른 '털레기'가 나온다.

'멸치국물에 김치를 송송 썰어 넣고, 끓을 때 마른국수를 넣어 익으면 먹는다. 떡국떡이나 떡복이떡을 넣어도 된다. 이 재미있는 이름의 요리는 충청도식이라더라. 점심 해먹을 것이 마땅치 않을 때, 칼칼한 게 먹고 싶을 때 한몫하는 메뉴다. 국물을 많이 넣어야 한다.'

경기도 포천의 '샛강 민물잡고기수제비매운탕' 주인 원건재(42)씨 설명은 또 약간 다르다. 마지막 국물에 수제비를 넣으면 수제비매운탕이고 마른국수를 넣으면 털레기라는 것이다. 원씨는 14대째 살아온 집에서 민물고기 음식점을 하고 있다. 바로 뒤가 개울인데 예전 그곳에서 물고기를 잡으면 어머니는 야채 넣고 재래식 고추장만 풀어 매운탕을 끓였다. 수제비나 마른국수도 넣어 먹었다. 그 솜씨를 물려받아 그대로 끓였더니 미식가들이 좋아했다고 한다. 잡어나 미꾸라지 뼈가 무르도록 푹 끓여 맛이 진하고 칼칼한 국물 덕이다. 단골 중엔 굵직한 그룹회장이나 프로골퍼가 여럿이다. 토속음식을 좋아하면 털레기의 고향을 자부하는 고양시 '수문회관의 털네기'나 시흥시 '산골추어탕의 통미꾸라지매운탕'도 기대에 값할 것이다. 이름은 달라도 비슷한 음식, 값은 3인용 2만~3만원.

이택희 기자

*** 털레기 하는 집

■샛강 민물잡고기수제비매운탕

위치: 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소학리 363-3 47번 국도변 베어스타운 스키장 정문 지나 북쪽 200m 오른편.

전화: 031-534-6679, 011-668-6674

■산골추어탕(미꾸라지매운탕 전문)

위치: 경기도 시흥시 군자동 39번 국도변

시흥시청~영동고속도로 사이 영각사 입구.

전화: 031-432-9339, 499-9292

■수문식당(민물고기, 털네기)

위치: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중산동 18-3

자유로 킨텍스IC~이산포IC 사이 한강변 옛 마을. 길이 복잡하므로 장항IC로 나가서 전화할 것.

전화: 031-976-0847, 5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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