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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거품경제를 예방하는 이자율 인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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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전 아시아개발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전 아시아개발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

주식, 부동산 같은 자산의 가격이 갑자기 많이 오르면 ‘거품(버블)’이 아닌지 조심해야 한다. 가격이 계속 오를 것으로 기대하고 투자했다가 갑자기 폭락하면 크게 낭패를 볼 수 있다.

세계 금융시장은 과열 양상 #저금리와 투기로 거품 우려 #선진국 통화정책의 정상화와 #경기회복, 시장 변화에 맞추어 #한국도 이자율 인상 시작해야

버블 현상을 연구한 킨들버그 교수는 “친구가 부자가 되는 것만큼 한 사람의 행복감과 분별력을 어지럽히는 일은 없다”고 했다. 주변에서 쉽게 돈을 벌면 나도 빌려서라도 투자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자산 가격이 실제가치보다 너무 오르면 언젠가는 거품이 꺼지고 가격이 하락한다.

18세기 초, 프랑스는 해상무역을 위해 신대륙에 ‘미시시피 회사’를 세웠다. 이 회사의 주식이 지폐처럼 유통되면서 투기의 대상이 되었다. 주식 가격이 1년 만에 3000% 넘게 올랐다. 백만장자를 뜻하는 프랑스어 ‘밀리어네어(millionnaire)’는 이때 탄생한 큰 부자들을 일컫는 말에서 유래했다. 하지만 투기 과열이 식으면서 주가가 폭락했고 ‘미시시피 버블’은 근대 유럽의 3대 버블로 역사에 남았다. 현대에 와서도 1987년 ‘검은 월요일’, 2000년 ‘닷컴 버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처럼 거품이 붕괴하는 세계적인 사건들이 발생했다.

거품과 실제가치를 구별하고, 언제 거품이 붕괴할지 예측하는 것은 쉽지 않다. 미국 연준(Fed) 의장을 18년간 지낸 그린스펀도 “거품이 언제 터질지는 거품이 꺼진 뒤에나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거품을 방치하다가 너무 커진 거품이 붕괴하면 금융시스템이 마비되고 경제위기가 발생할 수 있어 최선을 다해 예방해야 한다.

최근 세계 금융시장의 과열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실러 교수는 미국 기업의 ‘수익에 비교한 주가 비율(CAPE)’이 2000년 닷컴버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았다면서 버블 현상을 경고했다. 중국 중앙은행 저우샤오촨(周小川) 총재는 기업과 가계의 부채가 빠르게 증가해 앞으로 중국이 금융위기를 겪을 수 있다고 했다. 많은 국가에서 주식뿐 아니라 주택 가격도 장기평균치에 비해 많이 올라 거품에 대한 우려가 높다. 한국도 주가가 최근 많이 올랐고, 규제 조치에도 부동산 가격이 꾸준히 올랐다. 14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는 한국 경제의 뇌관이다.

이종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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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주가가 오르는 것은 경기 회복 속도가 빠르고 기업의 미래 수익에 대한 전망이 밝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격을 떠받치는 또 다른 중요한 요인은 낮은 이자율이다. 이자율이 낮으면 싸게 돈을 빌려 투자할 수 있고 미래의 수익을 현재 시점에서 계산한 가치가 높아진다. 투기심리를 부추겨 위험자산에도 투자가 늘어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앙은행들은 앞다퉈 단기 정책금리를 낮추고, 국공채를 대량으로 사들이는 양적완화 정책으로 장기 이자율을 낮췄다. 한국은행도 기준금리를 위기 이후 연 5.25%에서 급속히 낮추었고 지난해 6월부터 1.25%의 역대 최저 이자율을 유지해 왔다.

이제 미국, 캐나다, 영국을 시작으로 중앙은행들이 금리인상과 양적완화 축소를 시작했다. 실물경기의 빠른 회복과 금융시장 과열에 대응하는 것이다. 다만 노동시장의 구조변화로 임금상승이 둔화되고, 기업 간 가격경쟁 심화와 민간의 물가상승 기대 약화로 인해 물가상승률이 아직 높지 않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통화정책을 정상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도 금리인상의 ‘깜빡이’를 켰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10월 기자회견에서 “경기 여건이 금융완화 정도를 줄여나갈 정도로 성숙됐다”고 했다. 경기회복세와 세계 통화정책의 흐름에 맞추어 이자율을 올리는 것은 금융시장과 외환시장 안정에 도움이 된다. 아직 수요 측면의 물가상승 압력이 높지 않지만 금리인상을 마냥 지연시키면 거품이 커지고 자금 배분이 왜곡되어 금융시스템과 거시경제에 해가 될 수 있다.

기준금리를 올해와 내년에 걸쳐 두 번 올려도 한국의 통화정책은 여전히 완화적이라고 국제통화기금(IMF)은 평가했다. 비유하자면 기준금리를 올리는 것은 자동차의 브레이크를 밟는 것이 아니라 가속페달을 약하게 밟아 정상 속도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 도로 사정이 바뀌었는데도 계속 가속페달을 밟아 제한속도 이상을 달리면 위험하다.

상황이 좋을 때에도 누군가는 불을 보면 ‘불이야’를 외치고 소화기를 잡아야 한다. 한국은행은 올해 여름부터 정책의 변화를 예고했고 시장에서도 30일 열리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제 통화정책을 정상 궤도로 돌려야 하는 ‘말보다 행동이 중요한’ 시점이다.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전 아시아개발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