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도 소선거구로 카드 바꾼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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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임시국회개회와 함께 국회의원선거법협상이 부쩍 활기를 띠고 있다. 아직 탐색의 단계라 협상결과를 예측키는 어려우나 민정당은 회기를 연장해서라도 이번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이고, 민주·평민·공화당은 각기 미묘한 입장차이를 보이면서 민정당의 「선택」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각 당의 안을 크게 보면 ▲민정당이 1구1∼4인 ▲민주·공화당 1구2∼4인 ▲평민당 1구1인제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4개 정당 모두 자기들 안이 관철되리라고 믿는 것 같지는 않으며 각기 융통성을 갖고 담합, 또는 절충하겠다는 자세다.
민정당의 1구1∼4인제는 농촌·소도시에서는 1인을 뽑는 소선거구, 대도시에서는 2∼4인을 뽑는 중선거구제를 혼합한 것으로 여촌야도의 투표성향을 십분 활용한다는 발상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안은 「독식의 논리」「교묘한 게리맨더링」이라는 비판이 쏟아지자 민정당 내부에서도 「협상용」이지 관철대상은 아니라는 인식이 팽배해있다.
때문에 민정당은 1∼4인제를 여론을 수령해 어떻게 극적으로 버리느냐와 대야협상에서 「버리는 카드」로 한번쯤 써먹었으면 하는 속셈인 것 같다.
소선거구에서 2∼4인제로 당론을 전격 선회한 민주당의 중선거구제는 유신 이래의 현행 1구 2인제를 대도시 등에서만 선거구와 의원수를 을렸을 뿐 골격은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현행선거제를 약간 변형했지만 그 목적은 협상을 지연시켜 현행쪽으로 끌고 가려는데 있는 것 같다.
민정당이 통과 강행을 하지 않는 한 협상이 지지부진해 막판으로 밀리면 현행제로 가고, 그렇게 되면 호남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 「상당수」의석확보가 가능하다는 계산인듯하다.
야당통합의 거센 여론속에서 동요의 빛을 보이고 있는 평민당은 내부 분열상이 드러날수록 1구1인의 소선거구제에 더욱 집착하고 있다.
어차피 양금의 제휴는 현재로선 실현가능성이 희박한 만큼 소선거구제를 내세워 민주당의 명분 없는 담합을 선명성이라는 보도로 치고 중선거구가 되더라도 못이기는 체 받으면 그만이라는 속셈이 감추어져있다.
그러나 평민당의 호남출신 일부의원들도 내부적으로는 소선거구제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실정이다.
평민당 측은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2백45개 개표구중 금메달지역이 민정당(1백23개) 다음으로 많은 70개라는 점을 내세우면서 소선거구로 서울에서 「연승」할 경우 호남당이라는 오명을 씻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일찍부터 2∼4인제 중선거구를 내놓은 후 공화당은 소선구제를 「중형선고」와 마찬가지로 보고 중선거구타결에 사활을 걸고 있다.
공화당 안은 민주당안보다 3인선출구 인구기준을 35만∼75만 명으로 상하 폭을 넓혀 다당제기반마련을 겨냥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선거법협상은 1∼4인제를 버릴 가능성이 많은 민정당이 평민당의 소선거구제를 택하느냐, 현행제도를 보완하는 민주·공화당안을 받아주느냐에 성패가 달려 있다.
민주·공화당 측은 협상과정에서 민정당의 안정다수확보의 당위성을 인정, 심지어 전국구 의석 배분에 있어 불공정의 상징인 3분의 2배분 프리미엄조차 묵인(?) 하려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 공화당은 3분의2 대신 5분의3을 집권당이 가져도 좋다는 태도다.
그러나 민정당은 현행1구2인제는 「왜곡된 선거법」으로 차제에 청산해야 한다는 쪽으로 차츰 기울고 있다. 의원들간에는 야당이 굴욕에 가까운 양보를 하면 현행제도도 좋지 않느냐는 생각을 하는 것 같으나 노태우 당선자는 생각이 상당히 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 현행선거구제는 진짜 민주화를 하겠다는 노당선자의 6.29정신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민주화를 한다면서 비민주적인 유신의 산물을 잠시 편리하다고 눈감고 넘어가서야 되겠느냐는 논리다. 또 소선거구를 통해 정계의 전면개편을 해 보려는 포석도 작용하고 있다.
물론 소선거구제를 부활시키는 것도 다소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 예컨대 노당선자가 관심을 보여온 이념·혁신정당의 원내진출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줄어들며 분열된 야당과의 싸움으로 거대정당이 되더라도 또 다른 부담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체로 정계의 전면개편을 통해 여야공존모델을 정착시키기 외해선 소선거구로의 방향전환이 불가피하다는 컨센서스가 점차 확대되어 가는 것 같다.
이 때문에 민정당은 협상과정에서 민주당과 평민당에 더블 플레이를 한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민주당에는 현행대로 갈 수도 있다는 시사를 주고 평민당에는 소선거구가 더 합리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21일 민주당 측이 돌연 박종철군 고문치사 은폐조작사건의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권 발동과 선거법협상을 연계시킨 것은 민정당의 이 같은 전략을 간파, 소선거구를 한사코 막으려는 전략의 하나다.
그러나 민정당은 이미 소선거구 목으로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했으며 논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소선거구가 국민의 지지를 받을 것으로 믿고 있다.
때문에 선거법협상은 민정당이 「소선거구에 의한 4월초 선거」를 어떻게 관철해가느냐가 최대 관심사다.

<박보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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