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주택, 추첨 말고 노약자부터 주자" 이재민들 따뜻한 양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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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민들이 22일 오전 북구 장량동 LH 휴먼시아 1단지로 이주하고 있다. 냉장고를 정리하던 이재민 최병물씨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피어나고 있다. 포항=프리랜서 공정식

이재민들이 22일 오전 북구 장량동 LH 휴먼시아 1단지로 이주하고 있다. 냉장고를 정리하던 이재민 최병물씨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피어나고 있다. 포항=프리랜서 공정식

"입주 순서를 양보해준 주민들이 무엇보다 감사하고, 다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포항시, 당초 추첨 방식으로 이사 추진했지만 #이재민들 "노인·어린이 있는 집부터 해달라" 건의 #포항 이재민 22가구, 새 보금자리 임대주택 이사 #엉망인 원래 집 보며 한숨…새 집 들어서며 안도 #6개월 뒤 또 이사하는 불편은 개선 필요 지적도

22일 오전 경북 포항시 북구 장량동 장량 휴먼시아 아파트 1단지 103동 이재민 임대주택 이사 현장. 아파트 4층으로 이사한 최병물(80)할머니는 이삿짐센터 직원들에게 연신 인사를 했다. 바뀐 보금자리로 들어서는 최씨의 표정에는 안도감과 상실감이 교차했다. 지진 당시 혼자 집에 있었던 최씨는 북구 남산초등학교에서 기쁨의교회로 대피소도 한번 옮겼다.

최씨의 딸은 "혼자 사는 어머니가 그동안 대피소에서 전전긍긍하고 계셨는데 정부에선 별다른 조처가 없어서 매우 속상했다. 그래도 그나마 여진이 크게 나도 덜 흔들리는 저층이라서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지진 피해 이재민 가운데 포항시 북구 환호동 대동빌라에 거주하던 주민들이 22일 오전 북구 장량동 LH 휴먼시아 1단지로 이주하고 있다. 포항=프리랜서 공정식

지진 피해 이재민 가운데 포항시 북구 환호동 대동빌라에 거주하던 주민들이 22일 오전 북구 장량동 LH 휴먼시아 1단지로 이주하고 있다. 포항=프리랜서 공정식

이날 북구 환호동 대동빌라 이재민 22가구가 LH(한국토지주택공사) 임대주택인 장량 휴먼시아 아파트 1단지로 입주했다. 지전 전까지 거주했던 대동빌라는 지진으로 건물이 심하게 부서져 포항시에서 사용 불가 판정을 했다.
포항시는 새로운 집이 필요한 이재민을 500가구(1500명)로 추산했다. 이중 피해가 큰 북구 흥해읍 대성아파트 3개 동 170가구와 대동빌라 4개 동 75가구, 필로티 공법으로 지은 7개 원룸 83가구 등 328가구 이재민이 우선 이주 대상이다.
즉시 입주 가능한 임대주택은 장량 휴먼시아 71가구, 남구 청림동 우성한빛 25가구, 남구 오천읍 보광아파트 54가구, 남구 연일읍 대궁하이츠 10가구 등 160가구다. 시가 확보한 민간 원룸·다세대주택 50가구도 있다.

22일 오전 포항시 북구 환호동 대동빌라에서 이삿짐센터 직원들이 지진 피해 이재민들의 짐을 옮겨 싣고 있다. 포항=프리랜서 공정식

22일 오전 포항시 북구 환호동 대동빌라에서 이삿짐센터 직원들이 지진 피해 이재민들의 짐을 옮겨 싣고 있다. 포항=프리랜서 공정식

당초 포항시는 추첨을 한 뒤 순서대로 입주할 예정이었지만, 이재민들은 포항시에 노약자 먼저 입주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뜻을 밝혔다
이규환 포항시 이재민주거안정대책반 주무관은 "대동빌라 이재민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노인·어린이가 있는 가구부터 먼저 입주를 해야 한다'며 명단을 내밀었다"며 "임대 아파트로 이사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이재민들을 순차적으로 임대 아파트에 입주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22일 오전 포항시 북구 환호동 대동빌라에서 이삿짐센터 직원들이 지진 피해 이재민들의 짐을 옮겨 싣고 있다. 포항=프리랜서 공정식

22일 오전 포항시 북구 환호동 대동빌라에서 이삿짐센터 직원들이 지진 피해 이재민들의 짐을 옮겨 싣고 있다. 포항=프리랜서 공정식

이날 오전 7시 대동빌라에서는 이사 전에 소방관 9명이 아파트 현장을 둘러보며 안전점검을 했다.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구조차 1대, 구급차 1대도 투입했다. 민간 이사업체는 이재민들의 이사를 위해 발벗고 나섰다. 옐로우캡·포항사랑익스프레스·오케이2424 등 이사 업체 10곳이다.

이사를 도운 김후노(50)씨는 "시에서 연락이 왔는데 어떻게 안 갈 수가 있느냐"며 "위험하다는 생각보다는 하나라도 더 도와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대장연(49)씨도 "가구가 많이 부서져서 들고 오지 못한 게 많아 마음이 좋지 않다"며 "그래도 이렇게나마 도울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사비용 100만원은 시에서 지원한다.

이날 LH 나눔봉사단 60~70명도 장량 휴먼시아에서 이재민들의 짐풀기를 도왔다. 오세우(47) LH 대구경북지역본부 주택사업1부 차장은 "뭐라도 도와 드리고 싶어서 직원들과 함께 왔다"고 말했다.

대동빌라 주민이 지진에 부서진 냉장고를 보며 한숨을 쉬고 있다. 백경서 기자

대동빌라 주민이 지진에 부서진 냉장고를 보며 한숨을 쉬고 있다. 백경서 기자

이사를 하는 동안 이재민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엉망진창이 된 집을 둘러보며 착잡한 심정을 숨기지 못했다. 안부례(59)씨는 "냉장고가 다 부서졌다. 안 그래도 없는 살림에 가구, 가전 도구 등 다 새로 사야 할 것 같아서 막막하다.대피할 때 가져가지 못한 가전 도구가 쌓여있는 부엌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대동빌라 내부. 백경서 기자

대동빌라 내부. 백경서 기자

"6개월 뒤 또다시 이사를 가야 하냐"며 불안해하는 이재민들도 있었다. 현행법상 LH 임대주택의 임대 기간은 6개월이다. 포항시에서는 국토교통부에 2년까지 연장하는 방안을 건의한 상태다. 국토부에서는 장기간 거주해야 하는 이재민의 경우 LH와의 협의를 통해 기간을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대동빌라 주민 김모(42)씨는 "잘하면 2년을 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만약 6개월밖에 살지 못하고 또 이사를 가야 하면 우리에게는 너무 가혹하다"고 말했다.

22일 오전 북구 장량동 LH 휴먼시아 1단지네 입주를 반기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포항=프리랜서 공정식

22일 오전 북구 장량동 LH 휴먼시아 1단지네 입주를 반기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포항=프리랜서 공정식

한편 국토부가 이재민에게 제공하기로 한 LH 임대주택은 국민임대 아파트로, 평균 보증금은 2000만원이며 월 임대료는 20만원 수준이다. 포항시와 국토부에서 보증금은 전액 지원한다. 임대료의 경우 LH에서 50% 수준으로 낮추고 나머지 50%는 포항시에서 부담한다. 이재민들은 관리비만 내면 된다.

임대아파트를 원하지 않는 이재민들은 가구당 전세금으로 최대 1억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재민들이 다른 곳에 집을 구하면 전세보증금 융자를 지원해 주는 방식이다.

앞서 지난 19일 국토부는 가구 당 8500만원까지 전세금을 지원할 계획을 밝혔다. 포항시는 여기에 도비와 시비를 합쳐 1500만원을 추가로 지원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금리도 2%이지만 최초 2년에 한해 1%로 할인해줄 예정이다.

포항=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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