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속에 찌든 폐 - 도시의 숨통이 막혀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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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도시에 사는 주부에게서 진폐증이 검진됐다. 광산촌에서는 이병으로 한해 (86년) 4백70여명이 죽어가지만 도시에서는 처음이다. 서울시내의 한 연탄공장 부근에서 10년 가까이 살아온 한 주부가 역학 검진 결과 폐의 표면에 연탄가루가 뒤덮여 있어 진폐증 중증환자로 밝혀진 것이다.
이 주부는 과거에 광산촌에 살았던 적도 없고 담배도 피우지 않는다. 결국 병에 걸리도록 한 주범은 연탄공장에서 날아온 석탄가루가 틀림없다. 하루 80만∼90만장의 연탄을 찍어내는 이 공장에서 연탄을 실어나를때 날리는 탄가루 때문에 주위에 있는 주택가 주민들은 밖에 빨래를 널지 못할 정도다. 근처에서 오래 살았다면 병이 안 걸리는 것이 오히러 이상할 지경이다.
서울시내만 해도 변두리에 밀집해 있는 연탄공장이 서울시내수요의 4O% 이상을 공급하고 있다. 이 일대 주민들이 겪는 석탄먼지의 공해에 대한 고통이 얼마나 심한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번에 진폐증 환자로 밝혀진 주부 이외에도 잠재적인 환자가 수없이 많으리란 추정은 어렵지 않다.
이번 환자발생을 계기로 해서 보건당국은 먼지가 많은 지역, 특히 연탄공장 주변 주민에 대한 관련 질병 집단검진을 실시,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고 그 대책을 강구해야한다.
진폐증이란 일단 발병하면 치유가 힘든 고질이기 때문에 조기 발견, 조기 치료가 급선무다. 국민이 건강하고 쾌적한 여건에서 살도록 환경을 규제하고 관리해야할 책무는 국가에 있는 것이고 그 책무를 소홀히 해서 국민의 건강에 피해가 발생했으면 그 책임도 마땅히 정부에 있는 것이다.
도시주민들이 먼지공해에 시달리는 것은 비단 석탄가루 뿐만은 아니다. 골재를 실어 나르는 차량에서 날리는 먼지, 건축· 굴착· 토목· 조경· 철거 등 여러가지 원인에 의한 먼지는 환경기준치를 훨씬 넘어 있다. 미국이나 일본 등의 주요도시 오염도에 비하면2∼3배에 이르고 있다.
정부는 작년 6월부터 환경보전법의 먼지공해 규제조항을 발동, 모든 사전 사후 조치를 취하도록 돼 있으나 막상 규제가 실시되고 있다는 소식은 들은바 없다.
대기중의 먼지를 단순히 먼지자체만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먼지는 대기 중에 떠돌고 있는 동안 각종유해가스를 비롯한 공해물질을 흡수하고 호흡기관을 통해 인체에 들어오도록 하는 일종의 공해질병 매개체 역할을 한다.
또한 공해물질을 함유한 먼지는 지상에 떨어져 땀에 흡수되면 토양을 오염시키고 황폐화시켜 자연계의 물질순환 자체를 끊어놓는 악영향을 초래한다. 매연과 배기가스 못지 않게 먼지에 대한 엄격한 단속이 요청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국민들도 자기 주변의 생활환경은 자기들이 지킨다는 적극적인 의식을 갖고 공해업소를 고발하고 그 요인을 제거하기 위해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다. 쾌적한 생활환경을 누가 만들어 주기만을 기다리지 말고 앞장서서 찾고 지키는 자세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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