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압류 당한 나이팅게일 정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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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생명이 꺼져가는 환자를 두고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려운 형편에 1천7백여만원의 거금을 갚아야 한다니 앞날이 막막합니다.』
낯모르는 교통사고 환자를 응급처치, 병원에 옮겨준 뒤 입원보증서에 서명해주었다가 환자의 입원비를 몽땅 부담하게된 간호원 김춘옥씨(30·서울 경희의료원)가 안타까운 하소연을 한다.
『제가 응급실 간호원인데 입원 연대보증이 위험 (?)하다는 것을 몰랐을리 있습니까. 그렇지만 똑같은 상황에 다시 부닥치더라도 환자를 살려놓고 보아야 한다는 제 생각은 변함이 없읍니다.』
강원도 인제가 고향인 김씨는 추석휴가를 마친 86년9월19일 귀경길에 홍천군 국도에서 교통사고현장을 목격, 중상을 입고 신음중인 심모씨 (당시 53세·노동)를 지혈하는 등 응급처치한 뒤 갖고 있던 2만5천원을 털어 춘천 한림대부속병원까지 후송, 자신이 연대보증인으로 나서 급히 수술을 받게 했다.
김양의 「나이팅게일정신」이 「가압류」 당하게 된 것은 심씨가 입원 10개월만에 숨진 지난해 7월. 심씨의 가정형편으로 치료비를 못 받게 되자 한림대병원 측은 김양에게 『봉급의 절반을 공제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해왔다. 『보사부·대한간호협회 등에 문의해 보았더니 민사문제라 해결이 어렵다더군요』
홀어머니와 세 동생을 부양하느라 혼기마저 놓친 미혼의 김씨는 1월에도 30여만원의 봉급 절반을 선행의 댓가로 떼여야할 입장.
어린이 유괴살해에 「경찰관의 거짓말」까지 횡행하는 삭막한 사회에 청량제로 느껴지는 김양의 양심 앞에서 『나라면 그때 어떻게 처신했을까』를 자문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선행에 대한 보상이 월급압류가 되어야만 하는 우리 사회도 과연 이대로 좋을지를….

<김춘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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