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국민 편 가르지 말고 중산층을 되살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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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증세라는 게 정부가 하자고 하면 되는 게 아니다. 어느 나라건 세금을 올리자면 정부가 공격받고 다른 사업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국회가 있고 시민사회도 있지 않은가.

청와대의 최고위 정책 담당자 세 명이 중앙일보 측과 '양극화 해소와 중산층 되살리기' 등의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 토론회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청와대 김용익 사회정책수석·김영주 경제정책수석·김병준 정책실장과 중앙일보 김정수 경제연구소장·박태욱 논설위원실장. 조용철 기자 <youngcho@joongang.co.kr>

▶김영주=올해 세법 개정은 내년에 반영할 내용만을 결정하는 것이다. 시차가 있는 문제다. 당장 올해 뭐를 어떻게 올리자 이런 것보다 공감대를 확실하게 모아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느냐를 고민하는 게 중요하다.

▶박태욱=그 점에서 생각해 볼 게 있다. 언젠가 연금 등 이전지출의 증가라든지 통일 비용에 관련된 문제가 나오면 증세가 필요할 수 있다. 이때를 대비해 여력을 남겨놓아야 한다. 지금은 지출의 효율성, 우선순위를 따질 시점이다. 거기에 대해 진지한 논의 없이 불쑥 재원을 늘려야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가 상황이 불리해지니 증세는 아니다, 이래서는 믿을 수가 없다.

▶김병준=정부는 진지한 논의를 계속해 왔다. 재정 측면에서 2005, 2006년 예산만 하더라도 약 7조원의 지출사업 구조조정을 한 바 있다. 올해 복잡한 과정을 거쳐 디지털 예산회계 제도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실시간으로 정부의 돈이 움직이는 것을 모니터할 수 있다. 예산의 투명성도 계속 강조하고 조세행정도 바꿔 나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요구로 재정이 더 필요할 가능성이 있는데 그 부분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문제를 던지는 것이다.

▶김교준=정부가 양극화를 들고 나오니 야당이나 언론에서는 집권 3년간의 실정을 호도하려는 목적 아니냐고 의구심을 보인다.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부동산이라는 지적도 있다. 대통령부터 강도 높은 표현으로 투기 근절의 의지를 보였지만 강남의 부동산 가격은 지금 이 순간에도 오르는 것 아닌가. 부동산이 정책실패로 인한 양극화 심화의 대표 사례로 꼽히고 있다.

▶김병준=우리는 실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부동산 역시 정책실패라고 보지 않는다. 아직 국민은 8.31 대책의 내용을 정확히 모르는 것 같다. 실거래가 등기부 기재에 대해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많은 사람이 종합부동산세 대상인데 자신이 2009년에 얼마를 낼 것인지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내용을 잘 아는 중개인 등은 설명해 주지 않고 있다. 실제 그 정책이 가져올 효과를 제대로 볼 필요가 있다. 또 많은 분이 이 정부 임기 후에 정책이 바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 잘못된 이해가 지금 부동산 가격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본다.

▶박태욱=부동산은 적정가격이 있는 게 아니다. 공급도 수요에 맞는 공급이어야 한다. 예컨대 지금 식으로, 재건축하는 데다 임대아파트 몇 개 내놔라, 이런 식은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차피 부동산도 투자 대상의 하나다. 지금의 추세는 과잉 유동성이 만들어 놓은 머니게임에 가까운데 정부가 일일이 쥐 잡듯 하는 게 과연 옳은가. 가만히 두면 꺼질 거품을 정부가 나서서 비누로 만들어 주는 게 아닌가.

▶김병준=저절로 꺼질 것이라고 만만하게 볼 사안은 아니라고 본다. 부동산정책은 기본이 거래질서의 투명화다. 두 번째는 개발이익이 되도록이면 적게 발생하는 쪽이어야 한다. 개발이익이 있는 곳은 투기가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개발이익을 환수 내지 최소화하는 데 신경 쓴다. 세 번째는 보유에 따른 부담을 적정 수준까지 가져간다는 기조다. 과도한 부동산 투자로 돈이 부동산에 몰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규제와 고용
"단기 이익 노려 규제 마구 풀 수 없어"
"언제 제대로 규제 풀어 본 적 있었나"

▶김영주=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는 최근 양극화가 점점 더 악화된다는 통계가 있다. 참여정부 이후에 과연 지금까지 해왔던 것 말고 무엇을 했으면 좀 더 나아졌겠느냐는 얘기를 해봤으면 좋겠다. 수도권 규제나 기업의 규제를 풀지 그러느냐는 얘기가 나올 수 있겠지만 주어진 여건 하에서는 모든 노력을 다했다. 추가로 어떤 정책을 썼어야 양극화가 줄어들었을 것이라는 해답은 잘 모르겠다.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의 대안도 들어봤으면 좋겠다.

▶김정수=정책을 맡고 있는 쪽은 통계나 숫자를 확보하고 있다. 상황도 제일 잘 안다. 정책 담당자들이 언론.학자 또는 야당에 대안을 내라고 요구하는 것은 문제다. 정말로 정부가 규제 완화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활발하게 추진해 봤는가. 청와대 사람들도 지금은 기업이 공장 세울 나라를 선택하는 시대라고 했다. 그렇다면 과연 기업이 매력을 느낄 만큼 규제를 풀었는가. 수도권 규제 완화 얘기하면 균형발전을 얘기하고, 대기업 규제 완화를 말하면 지분을 초과하는 영향력이 어떻고 하는 말이 돌아온다.

▶김영주=근래 들어 기업은 부자가 되는데 정부는 어려워지는 상태가 되는 것 같다. 2003년 말 법인세를 2% 낮췄고 결과적으로 올해부터 2조~3조원 정도가 감면될 것이다. 그러나 2004년에 기업이 사상 최대의 흑자를 냈다. 법인세를 낮추면 정부의 재정적자를 유발시킬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외자유치나 기업의 경쟁력에 얼마나 영향을 줄 수 있을지도 따져봐야 한다.

▶박태욱=현 정부 들어 이전과의 차이가 고용불안과 낮은 성장률이다. 저성장 때문에 고용불안이 일어나고 있을 개연성이 분명히 있다. 이를 타개할 돌파구로 규제 완화가 기능을 할 수 있다면 과감했어야 했다.

▶김병준=파주 LCD단지 규제를 푸는 데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모른다. 거세게 반발하는 구미를 내가 두 번 찾아갔다. 건교.산자부 장관도 몇 번 갔다. 수도권 규제를 풀면 수도권의 비대화와 전체 경쟁력의 약화라는 문제가 생긴다. 단기적 이익에 집중해 표 얻고 인기 얻으면 좋겠지만 그렇게만은 할 수 없다.

▶김정수=법 개정안 처리가 계속 연기되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정부의 복안은 뭔가.

▶김용익=지금 국회 특위가 만들어져 있고 국회에 상정된 상황이라 그 문제는 청와대가 함부로 얘기하기가 곤란하다. 이미 정부의 손을 떠났고 정치권에서 결정해주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다.

▶김교준=정부의 안에 대해 열린우리당 측이 여러 조항을 바꿔놓아 당정 간에도 조율이 어려운 상황 같다.

▶박태욱=지금 10.5%의 대표성으로 좌지우지되는 노동운동의 본질적 양상이 바뀌지 않고는 비정규직 문제는 아무리 사탕발림식으로 봉합하려 해도 해결이 어려울 것 같다.

총평과 대안
"재정 한계 … 사회공동체 함께 나서야"
"세금보다 소비 늘리는 정책 펼쳐라"

▶김용익=우리 기업이나 노조.학교가 모두 사람을 좀 보태줬으면 좋겠다. 증세나 기부도 중요하지만 지금 장애인이나 노인들을 제대로 보살피려면 정부의 고용이나 민간기업의 사업만으로는 절대 부족하다. 기업이나 노조가 자원봉사에 대규모 인력을 지원해 줬으면 좋겠다. 대학도 음대.미대. 사회복지대.체육대 등이 많은데 학생들이 장애인.노인들을 보살피도록 손을 뻗어줬으면 좋겠다.

▶김영주=경제가 지속적으로 잘되려면 사회 전 분야가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 더 튼튼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최근에 여러 나라와 FTA를 추진하고 있다. 한.미 FTA는 세계 최고의 제도를 가진 곳과 경쟁하는 것이다. 우리가 경쟁에서 이기면 세계 최고 수준의 능력을 가질 수 있다. 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게 처지는 부분의 능력을 개발해 주고 보완해서 함께 가야 하는 것이다.

▶김병준=정부도 사회안전망을 촘촘히 짜겠지만 이를 위해 막대한 재정이 소요되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사회 공동체가 자원봉사나 인력지원.기부 등을 통해 도와주면 양극화 문제를 푸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시장이 못하는 부분은 정부가 해야 한다. 다만 이를 정부 혼자서 하는 게 아니라 공동체와 함께 사회의 문제를 풀어갔으면 좋겠다.

▶박태욱=오늘 토론 중 일자리 창출이 필요하다는 데 전적으로 동감한다. 일자리 창출이 안 되는 큰 이유는 역시 내수 문제다. 다행히 대통령도 있는 사람들이 돈을 쓰는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고 해 기대도 된다. 돈도 있는 사람들이 쓰기 시작해야 밑으로 내려간다. 그게 순리다. 있는 사람들이 쓰게 하려면 부동산이나 증시 정책에 있어서 본의가 그렇지 않더라도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서는 안 된다. 정부가 많이 거둬서 많이 쓰는 방식이 아니라 소비를 부추기는 방향이 훨씬 바람직하다는 얘기다.

진행=최훈 정치부문 부장대우
정리=이상언 기자<choi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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