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러시" 아직 이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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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홍콩에서 중공을 연구하고 있는 차이나 워처들은 한중관계를 연정을 품고 있는 남녀 사이로 비유하기도 한다.
서로 접근하고 싶고 상호 그 필요성도 느끼지만 여러 가지 조건이나 환경의 제약으로 서로 속셈을 드러내놓지 못하는 점이나, 이들의 관계를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조용하고도 은밀한 중매인을 필요로 하는 점 등에서 그러한 비유는 그럴듯한 비유 같기도 하다.
그러나 엄격히 보자면 중공은 한국과의 관계개선을 희망하더라도 북한이라는 정치·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형제국」과의 관계를 생각해야 하는 제약을 갖고 있다. 오랫동안 금기시 돼왔던 중국대륙에 관한 관심이 작년 12월초 노태우 후보의 중공방문 희망설과 대중공 관계개선에 대한 적극적인 공약 등으로 한국에서는 소외 「중공관련주」가 상승세를 타는 등 중공열기가 일고 있다.
노대통령 당선자는 한·중공관계를 현재의 간접교역에서 직접교역-88올림픽 후 상호 무역대표부설치-5년내 국교수립 적극 추진이라는 대중공정책 구상을 제시했다. 이같은 통치권자로서의 구상공표는 기존의 관례를 뛰어넘는 것으로 해석된다.
때맞춰 국내 매스컴들도 중공의 산동·교동반도 개방과 홍콩의 월간지 『90년대』가 보도한 『한·중공 직접교역 북한서 양해』설을 큼직하게 인용, 보도함으로써 중공열기를 부추기는 촉매역할을 했다.
그러나 한국의 서해안과 마주보고 있는 산동·교동반도의 개방은 중공이 추진하고 있는 해안도시 우선개발이라는 기존계획에 따른 개방정책의 일환이지, 한국의 서해안 개발에 대한 응답 또는 상응한 조치라고 해석하기에는 너무 조급한 것 같다.
「한·중공 직교역에 대한 북한양해설」도 근거가 없다.
『90년대』에 따르면 이는 지난해 5월 김일성의 중공방문때 일로 돼 있는데, 교역 형태면에서 9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과거와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 한국상사들은 물론 중공관계자들의 한결같은 말이다. 또 홍콩의 외교가나 중공 전문가들도 이와 같은 보도에는 부정적인 견해들이다.
홍콩에는 수많은 신문과 잡지들이 있는데 이들 중에는 비교적 정통한 소식도 있으나 근거가 약한 것들도 많다.
홍콩이 좌·우파의 언론이 혼재하는 매스컴의 천국이라는 것을 감안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한·중공문제는 센세이셔널한 반응에 앞서 차분히 취급해야 한다는 점에서도 자생의 소리가 있다.
또한 헝가리 등 동구와의 관계발전 사례로 그러한 모델이 중공에도 적용되리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중공과 북한의 관계는 헝가리와 북한의 관계와는 완연히 다른 것이다.
최근 나타나고 있는 중공 붐의 성급한 확대해석은 한국의 대중공 기대를 밑바탕에 깔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한국에서 일고 있는 기대감에 대한 중공의 반응은 그들이 지금까지 취해온 원칙과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중공 전 외교부장 황화가 분위기의 미성숙을 지적하고 남북한 관계개선이 선결요건이라고 발언한 것과 AFP통신을 통해 보도된 중공외교부의 원칙론 반복이 그들 반응의 전부다.
다만 중공외교부 대변인이 주1회 개최하는 내외신 기자 회견에서 공식논평을 하지 않고 황화나 AFP통신, 외교부 대변인이 아닌 다른 관리의 개별 논평이 있었다는 점은 한국에 대한 배려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중공외교부 대변인의 공시논평이라면 그들의 「혈맹」인 북한을 의식해 좀더 강경하고도 부정적인 것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홍콩의 중공인이나 차이나 워처들은 왜 한국이 미묘한 한·중공관계를 공개적으로 추진하려고 하느냐는 점 못지 않게 일본이 최선의 중개자인가에 때해서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중공시장이라는 관점에서 일본은 한국의 경쟁국이며 일본의 한·중공관계 중개는 일·북한 관계개선과 직접적인 관련을 갖기 때문이다.
86년11월 「나카소네」 일본수상의 중공방문 당시 우리 정부가 부탁한 대중공 메시지가 일본측에 의해 낱낱이 공개됐으며, 오히려 북한을 자극시켰다는 점도 짚고 넘어가야 된다.
모든 국가가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지만 한국·중공·북한 등 3자 관계에서 일본은 너무도 민감한 이해당사자로서의 한계를 갖고 있다.
경제적인 면에서 한·중공 양국은 상호 보완적인 요소가 많지만 장기적인 안목에서 보자면 중공은 우리의 강력한 경쟁자가 될 잠재력이 크다. 85년을 계기로 한·중공의 교역량이 중공·북한의 그것을 초과했다는 것은 나름대로의 의미가 크다.
그러나 최근 2∼3년간 한·중공간의 교역량이 거북이 걸음을 하고 있는 것은 생각해볼 일이다. 중공의 한국제품 수입은 대부분 타국에서 수입하려 해도 물량이 부족하거나 중국의 긴급수요에 국한되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노대통령 당선자의 진취적이고 정공법적인 대중공 관계개선 구상의 효과적인 추진을 위해서는 우선 객관적인 사실과 조건부터 냉정하게 평가하는 동시에 중국적인 패턴과 중국식 사고방식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중공사람들과 한·중공간의 왕래를 토론할 때 그들이 자주 인용하는 다음과 같은 성어는 음미할만한 가치가 있다. 「수도거성, 과숙보락」 (물이 흘러가는 곳은 저절로 수로가 생기고, 참외가 익으면 꼭지는 스스로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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