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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가 본 민주당 '野人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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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동안 그런 시대가 있었다. 안심하고 쓸 수 있는 TV 드라마 소재로 거지와 도둑밖에는 건드릴 게 없었던 압제의 시대 말이다. 이런 소재는 문민과 국민, 또 참여정부의 등장과 함께 조폭과 불륜.도박으로 바뀐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소재와 더불어 여전히 변하지 않는 이미지가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사회의 정치인이다.

'야인시대'를 연상케 하는 장면이 어느 정당의 당무회의에서 일어났다. 활극이 벌어지고 무릎을 꿇고 당 대표에게 읍소하는 장면이었다. 요즘은 조폭도 워낙 멋있게 그려지는 세상이니, 이를 있는 그대로 전해주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국민은 울화통이 터질 지경이다. "정말 욕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래저래 전 국민을 욕쟁이로 만들면서 우리 정치인은 술자리 안주감으로 새로운 변신을 한다.

'이미지의 정치'가 작용하는 시대에 우리의 정치인은 '조직과 보스'의 정치라는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의 보스는 사라졌고, 믿을 구석은 아무 것도 없다. 갈곳은 없고 살길은 막막한 정치의 춘추전국시대에 우리 정치인은 자기도 모르게 이전까지 해왔던 조폭의 행동을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드러내고 있다.

막가는 심정으로 '올인(all-in)'을 하든지, 아니면 무슨 짓인들 내가 좋으면 할 수 있다는 심정으로 하게 된다. "누구나 다 하고, 이게 시대의 대세야"라는 변명과 함께.

정치판의 불륜행동을 조폭의 심리와 도박판의 논리로 해석하는 것은 상식 이하의 짓일 것이다. 하지만 '로또 공화국'과 조폭영화와 불륜의 드라마가 대중문화의 주요 내용이 된 대한민국에서 이것만큼 우리 정치인의 행동을 잘 설명할 수 있는 코드는 없다.

추첨일은 4년, 또는 5년마다 돌아오지만 추첨은 분명히 있고 대가도 확실하다. 이런 불확실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가치와 행동방식을 일관성 있게 하지 않는다. 인간심리의 법칙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분명한 가치가 무엇이기를 찾기보다는 자신에게 영양가가 있어 보이는 행동만을 하기 때문이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도박판의 '올인'만큼이나 무지하고 폭력적인 행동은 없다. 그것은 인간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만드는 게 아니라 외부의 기준에, 또는 우연한 사건에 맡겨 버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미신 행위'와 같다. 하지만 인간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이런 행동을 아주 자연스럽게 한다.

스키너라는 심리학자는 이를 비둘기를 통한 실험으로 보여주었다. 먼저 비둘기는 박스 속의 한 지점(원반)을 쪼아대면 먹이를 얻는다는 것을 배웠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먹이는 비둘기가 그 지점을 쪼더라도 나오지 않았다. 환경이 바뀐 것이다. 먹이는 정해진 시간 간격만큼 나오도록 바뀌었다. 비둘기의 입장에서 보면 아주 '불확실한 상황'이 됐다.

한동안 비둘기는 배가 고프면 이전에 쪼아대던 지점을 열심히 쪼았다. 그러나 점점 아무런 먹이가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물론 간혹 먹이가 생기면 거의 횡재한 듯이 허겁지겁 주워 먹었다. 며칠이 지난 후 심리학자는 비둘기가 다리 하나를 든 채로 빙빙 도는 행동을 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상히 여겨 살펴보니 비둘기는 마치 자신이 다리를 들면 먹이가 나오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는 것이었다. 다른 비둘기들도 모두 비슷하게 이런 불확실한 상황에서 자기 나름의 '미신적인 행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현재의 한국 정치인들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먹이를 찾아야 하는 비둘기와 유사한 행동을 하고 있다. 자신들의 상황이 너무 불확실하기에 그 행동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다. 이렇다 보니 민주화 투쟁, 보스 또는 '짱'을 위한다는 것과 같은 정당성 속에서 스스럼없이 해왔던 행동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다.

더 기막힌 것은 모두 이런 행동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자신에게 가장 확실한 먹이를 줄 것이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여기에 지도자의 역량이나 다양한 관점의 존중과 같은 상식과 사명감을 기대하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인 것 같다. 요즘 우리 정치인의 행동을 보는 국민은 단지 스키너 박스 속의 비둘기를 보는 심리학자의 심정이 될 것 같다. "요것들이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황상민 연세대 문과대 심리학전공 교수

◇ 약력:▶서울대 심리학과.동 대학원 졸업▶미국 하버드대 심리학 석.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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