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죄, 구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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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8호 29면

삶과 믿음

몇 년 전 구입한 시집을 읽었다. 세월이 흘러도 책은 변함없이 날 반겼다. 첫 페이지에 이런 글이 있다.

“아프지 않고 마음 졸이지 않고 슬프지 않고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미워하지 않고 성내지 않고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 따뜻한 그런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10월도 흔적 없이 가고 어느새 입동(立冬)마저 지나가 버렸다. 겨울이 이제 성큼 다가섰다는 뜻이다. 서울 인사동 어느 골목을 벗어났을 때, 노란 은행잎이 바람에 흩어지고 있었다. 그런 날도 나에겐 추억이다.

시인 박인환은 내가 태어나기 1년 전인 1956년 세상을 떠났다. 그의 시를, 친분이 있는 화가가 적적한 내게 보냈다.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여기에서 나에게 인상 깊은 대목은 나뭇잎이 흙이 된다는 거다. 어찌 보면 한 해 두 해 나뭇잎처럼 시간이 나를 덮어 가고 있는 듯하다. 엊그제 자동차를 운전하며 조용히 지나온 시간을 음미해 봤다. 내가 살면서 ‘하고 싶은 말’을 얼마나 하고 살았을까. 한 50% 정도 했을까.

종교 수행자들은 하고 싶은 말을 얼마나 해야 하나, 한 30%로 해야 할까, 아니면 40%로는 해야 할까. 그러나 내가 ‘다짐한 말’은 앞으로 15% 정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옛 수행자들은 줄곧 묵언(默言)수행을 즐겼다. “말하면 뭐하나. 정신만 빼앗기고 서로의 허물만 드러나는데…” 한마디로 ‘말은 죄악의 씨앗’이라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남 말하는 걸 좋아한다. “누군가 그랬데. 그 사람…”. 그러면서 그 사람의 평소 삶을 되짚고 또 자기 생각을 더하여 그렇게 말한다. 그것이 말의 죄, ‘구업(口業)’이다. 구시화문(口是火門)이라고 한다.

내가 이 종교에 들어와 스승을 만났을 때 가장 두려웠던 것은 “입단속을 잘하라”는 말이었다. “하고 싶은 말도 기꺼이 아껴 두어라” 하는 말씀은 지금도 나에겐 진리로 남아 있다.

내가 하고 싶은 말도 덮어야 할 때가 있고, 남이 한 말도 덮어야 할 때가 있는데 세상 사람들이야 오죽하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날마다 죽고 아침마다 다시 태어난다. 우리의 영혼이 그리고 죽었던 마음이 그리고 잘못과 후회가 그렇게 교차해 부침하는 것이다. 내 안에서 소화시키지 못해 죽지 않는 마음은 내 가슴에 오래 남아서 상처가 되고 괴롭고 슬픔으로 다가올 때가 많다.

낙엽을 덮는 흰 눈이 내 가슴속 깊이 소리 없이 내릴 때쯤이면, 내가 저지른 말들의 상처도 아물게 될까.

정은광 교무
원광대 박물관 학예사. 미학을 전공했으며 수행과 선그림(禪畵)에 관심이 많다. 저서로『마음을 소유하지 마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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