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코리안] "한국 정서로 독일 시청자 사로잡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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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출간된 시집 '달과 별'을 들고 포즈를 취한 강문숙씨.

한국 여성이 베를린 문화계를뒤흔들고 있다. 1989년 독일로 이주한 강문숙(41)씨가 주인공이다.

강씨는 명함 한 장에 다 적을 수 없을 만큼 하는 일이 많다. 연극.영화배우, TV 탤런트, 시인, 방송 리포터, 퍼포먼스 예술가, 모델 등이 그가 하는 일이다. 그래서 직업을 묻는 질문을 받으면 다소 난감해한다. 독일 언론은 그를 가리켜 '종합 예술인' 혹은 '문화의 전령사'라고 부른다. 교민 사회에선 '베를린 팔방미인'으로 통한다.

강씨는 독일 시청자들에게 매우 친숙하다. 국영 ZDF 방송이 격주로 방영하는 아침 교양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하고 있다. 현재 '안녕하세요. 문숙입니다'라는 코너의 진행을 맡고 있다. 강씨는 베를린 구석구석을 누비며 이색적인 문화와 예술, 정감이 풀풀 넘치는 사람 사는 얘기를 전해준다. 강씨 특유의 넉살과 위트, 한국식의 따뜻한 감정을 앞세워 20%대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한국이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주빈국이 되면서 특히 바쁜 한 해를 보냈다. 독일 방송팀을 이끌고 귀국해 현장감이 넘치는 한국 알리기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강씨는 ▶한국의 교육 ▶장터 ▶결혼 ▶문학 ▶밤문화 등 다섯 가지 주제로 제작한 이 프로그램을 통해 시청자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연기자로도 주목받고 있다. '타트오르트(Tatort)'라는 인기 수사 드라마에 정기적으로 얼굴을 내비친다. 이달 말부터는 베를린 RBB 라디오 방송에서 고정 코너를 진행한다. 삶을 사는 지혜를 생활 주변의 이야기로 풀어가며 자작시를 소개할 예정이다.

주체할 수 없는 '끼'가 그를 전천후 문화 예술인으로 자리 잡게 했다. 그는 이화여대 종교음악과를 졸업한 뒤 1989년 독일로 유학, 성악과 오페라를 전공했다. 그래서 요즘도 오페라나 뮤지컬에서 활동하자는 제의를 받곤 한다. 현재는 올 여름 독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펼쳐질 오페라극 '크롤' 작업에 매달리고 있다 2002년에는 영국으로 건너가 오페라 '왕과 나'에서 레이디 티앙 역을 맡아 전국 순회 공연에 나서기도 했다. 그는 "당시 영어를 배울 목적으로 배역을 맡았다"고 말했다.

계획대로 그는 생애 첫 시집을 영어로 냈다. 지난달에는 독일 유명 출판사인 로볼트에서 '달과 별'이란 독일어 대담 시집을 펴냈다. 베를린의 유명 문화계 인사 22명을 직접 인터뷰한 내용에 자신의 인상을 담은 자작시를 첨부한 이 책은 최근 각종 언론매체에 소개되며 호평을 받았다.

패션 모델로도 인기가 높다. 평소 카우보이 복장을 하거나 피터팬 모자를 쓰고 다니는 등 대담한 패션 감각을 보여 주변에 항상 사람을 끌어 모은다. 그래서 명사들의 모임이나 파티장에서 강씨는 한껏 주가를 올리고 있다.

경남 함양군의 한 시골에서 4남2녀의 막내로 태어난 그는 학비 마련이 어려워 상고에 진학했다. 대학 졸업 뒤 부천시립합창단에서 안정된 직장을 얻었지만 삶의 새로운 도전을 위해 독일 유학길에 올랐다. 유학 시절에는 영화 엑스트라나 연주회 아르바이트 등 학비와 생활비를 버는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떠맡았다. 그럴수록 그의 오뚝이 정신은 더욱 빛을 발했다.

강씨는 이렇게 말한다. "정열과 자신감을 갖고 일에 열중하면 못해낼 게 없습니다."

베를린=유권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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