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인 자율심의 바람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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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정초부터 「외설시비」로 연극계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극단 바탕골(대표 박의순)의 『매춘』(오태영 작·채승훈 연출)은 최근 민주화의 물결이 도도했던 우리사회의 변화가 문화계에 어떻게 수용될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을 본격적으로 제기했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이번사건은 극단측이 공연윤리위원회에 대본심의를 신청했으나 공륜이 대본의 전면적인 개작을 종용, 이에 대해 극단측이 『심각한 표현자유 침해다』는 판단에서 공륜의 심의를 받지 않고 공연을 강행한데서 비롯됐다.
이에따라 공륜은 서울시에 행정계도를 요청해 공연을 중지토록 했으나 극단은 계속 공연을 강행하기에 이른것이다.
지난 수년동안 큰 물의를 일으키지 않았던 공륜의 심의과정이 이번에 크게 부각되게 된것은 최근 우리사회의 변화가 원인이 된듯하다.
그동안 공연예술계의 많은 사람들은 『대본의 사전심사를 제도화한 공연법은 위헌』 『표현 자유의 침해』 『창작의욕을 저하시킨다』는 등으로 당국에 의한 예술계 통제제도의 문제점을 많이 지적해 왔지만 이번처럼 실정법을 정면으로 거부한 사례는 없었다.
극단이 이렇게 강경한 자세로 공륜의 심의에 문제제기를 한 것은 『공륜이 예전의 관료적 습성을 견지, 정말 문제삼고 싶은것은 외설·퇴폐가 아니라 우리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을 지적한 부분』이라고 판단했기 때문.
극단의 기획자 우상전씨는 『최근 연극의 전반적인 질 저하가 문제되고있는데 이는 표현자유의 지나친·침해로 인한 창작의욕 저하에도 한 원인이 있고 따라서 공륜의 무원칙한 심의 태도는 문화의 발전차원과 함께 연극인들의 생존권과 관련된 일』이라며 『대학생층 관객이 많은 연극계로선 현실을 다루지 않는다는 점은 치명적』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이번 사태에 대해 다른 연극인들은 『공륜의 존재자체에 대한 의문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연극작품의 윤리성문제는 연극인들로 구성된 자율기구에 맡길 일』이라며 『다만 연극적으로 상당히 높은 수준의 작품이 이번 사건의 발단이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연극협회(이사장 김의경)는 8일 이번 사건에 대해 ▲『매춘』이 연극적으로 거칠지만 주제는 오히려 진부할 정도로 도덕적이며 공륜이 심의 반려 할 이유는 없었다 ▲공륜의 사전심의제 철폐와 연극인 자율기구 설립촉구 ▲젊은 연극인의 성실한 자세는 충분히 인정되나 작품은 범용한 수준이고 실정법을 위반하는 행동은 자제해 달라는 등의 내용을 담은 성명서를 발표했다. 어쨌든 이번 『매춘』사건은 앞으로 표현자유 문제의 모델 케이스가 되리라는 점에서 결말이 주목된다.

<강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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