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위기 바꾼「민주호」···순항 미지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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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민주당의 앞날과 전당대회 모습>
민주당 전당대회가 예상대로 김영삼 총재의 사퇴서를 반려했다. 아울러 새 당헌에 의해 부총재 4명이 선거로써 뽑혔고 일부 당직의 개편도 단행되었다.
김총재로서는 선거패배 후 당내외로부터 끈질기게 일었던 책임문제를 이 대회로써 일단 털어 버리고 대통령선거패배의 후견국면에서 총선 국면으로 전환할 전기를 잡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내막이야 어떻든 형식이나마 당헌을 어느 정도 민주적으로 손질하고 부총재도 임명이 아닌 선거절차를 통해 쁩아 당내의 민주화 요구도 어느 정도 수용했다고 내세울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전당대회라는 하나의 의식을 통해 당분위기를 일신할 수 있는 토대는 마련됐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하여 전당대회 후 과거와 같이 일사부난한 김총재 체제가 다시 구축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속단키 어렵다.
우선 당분위기가 선거패배에 대한 책임의 처리가 완결됐다고 보지 않고 있는 점이다.
이번 대회에서 김총재의 사퇴서가 반려된 것은 마땅한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지 않느냐는 것이었지 흔쾌하게 모든 문제를 덮어두자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이 당내의 일반적인 여론이다.
김총재는 최형우·김동영씨 등 자신의 오른팔과 같은 측근들을 회생시킴으로써 패배 책임의 돌파구를 찾았다. 이로써 당내의 불만은 어느 정도 잠재울 수는 있을지 몰라도 앞으로 리더십확보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김총재로서는 대여정치협상에 선수를 치고 나오는 등 총선정국에서 주도권을 장악해 당을 국회의원 선거 쪽으로 휘몰아 갈 작정이다. 대여협상에서는 막후절충도 할 수 있다는 유연성을 가지고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면서 야권통합 운동에 나서는 한편 당내에서는 공천권을 무기로 당권을 확립하자는 계산인 것 같다. 아직 김총재계 일색인당에서 그런 계산은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주변여건이 그리 간단치가 않다.
우선 거의 강요당하다시피하여 후선으로 물러 앉은 핵심 측근들이 과거와 같은 충성을 보일 것이냐는데 의문이 있고 또 대의원들에 의해 선거로써 뽑힌 부총재들의 목소리도 상대적으로 커질 것이다.
김총재로서는 전당대회에서 자신이 표를 몰아 주도록 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당선된 부총재들이고 단일지도체제 하인만큼 별 일이 있겠느냐는 판단이 있는 것 같다.
사실 총선을 앞두고 당이 총재단 대신 선거대책본부 중심으로 운영될 계획인 만큼 새 진용은 과도적 성격을 띨 수 밖에 없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상도동계보 일색이었던 당직을 과도적이나마 외인부대가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게됐다는 점에서 민주당내의 세력분포에 새로운 변화가 생기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즉 김영삼계라는 단일계보였던 당에 새로운 반대그룹, 다시 말해 비주유가 태동하고 있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이들은 앞으로 공천과정 등에서 자신들의 몫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총선결과에 따라서는 야권의 재개편 움직임에 따라 다시 한번 전당대회를 치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것으로 보인다. 그때가 되면 측근들의 원심작용, 새로운 비주유의 탄생등으로 김총재의 처지는 이번보다 훨씬 어러워질지 모른다. 그는 마지막 승부가 될지도 모르는 총선을 앞두고 도박을 하는 셈이다. 때문에 그에게는 어쨌거나 선거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지 않으면 안된다는 부담이 지워지게 됐다.
○…대의원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재신임을 획득한 김총재는 간단한 인사말을 한 후 기자들과 만나 현재의 심경 및 당운영 방안등에 대해 일문일답.
-현재 소감은.
『60평생 정치적 이유로는 처음으로 선거패배 후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현정권이 80년도나 이번 대통령선거전에서 나에게 한 짓을 고려할 때 이 정권이 바라는대로 해서는 절대로 안되고, 민주화를 위해 계속 싸우는 것이 내가 해야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원들이 다시 나를 신임해 주어 마음이 무겁다.』
-김총재의 퇴진을 바라는 대의원들이 10% 정도 나왔는데 이것이 갖는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든지간에 본인을 채찍질해 이번 총선에서 책임을 지고 제1당을 만들라는 것으로 생각한다.』
-야권 통합에 대한 구상은.
『대통령선거 결과등을 볼 때 모든 민주세력이 민주당중심으로 뭉치는게 국민의 여망이며 역사의 순리다. 우리 당을 나간 사람이 들어오길 바란다.』
-나간 사람 중에는 김대중 평민당총재도 포함되는가?
『내가 언급한대로 이해해달라.』
-지역구로 출마할 것인가.
『어떻게 하는게 민주당이 제1당이 될 수 있겠느냐의 판단에 따라 결정할 것이다.
총선에서는 전국을 지원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전국구를 시사하면서)참모들과 의논해 보겠다.』
-당8역은 언제 임명할 것인가.
『당3역과 대변인은 금주 내에 임명하고 나머지도 빠른 시일 내에 임명하겠다.』
○…박종율 사무총장은 김총재 사퇴안의 표결결과 부결이 확실해지자 상도동으로 김총재를 찾아가 30여분쯤 후에 김총재와 함께 대회장에 입장.
김총재의 입장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갔으나 불과 10여명만이『김영삼』을 연호했고 나머지 대의원들은 엉거주춤한 상태로 있어 지난번 대통령후보 지명대회때와는 퍽 대조적이었다.
김총재는 꽃다발을 받은 뒤 양손을 쳐들어 V자를 만들었으나 열기는 역시 저조.
김총재는『내가 이 자리에서 꽃다발을 받기에는 너무 마음이 무겁다』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인사말을 시작,『역사와 국민 앞에 속죄하는 뜻에서 이 잔을 피하고 싶지만 마실 수밖에 없고 이 짐을 벗고 싶지만 다시 지고자 한다』고 총재직을 수락.

<문창극· 안희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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