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피해 ‘직접 고소’ 시동 … 남발 방지책 마련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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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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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정거래나 가격 담합 같은 공정거래법 관련 사건은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의 고발이 있어야만 검찰이 공소 제기를 할 수 있다. 고발권을 남용해 기업의 경제활동을 어렵게 하는 것을 막기 위한다는 취지에서다. 공정위가 독점적인 고발권한을 가져 ‘전속고발권’이라고 한다. 공정위가 출범한 1981년부터 시행했다.

공정위, 전속고발권 개편 추진 #가맹·유통업·대리점법이 우선 대상 #김상조 “재벌, 법 위반 땐 모두 고발” #과징금 2배 인상 방안도 함께 논의 #경쟁사 음해성 고소 등 부작용 우려 #야당·유통업체 반발, 현실화 미지수

이 전속고발권 제도가 개편을 눈앞에 뒀다. 가맹·유통업·대리점법 위반행위에 대한 고발을 누구나 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해서다. 공정위는 이런 내용을 담은 ‘법집행체계 개선 태스크포스(TF) 중간보고서’를 12일 발표했다. 관계부처와 외부 전문가 등이 참여한 TF는 공정거래 관련 법집행체계를 개편하기 위해 지난 8월 출범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전속고발권 폐지를 공약으로 내놨다. 공정위가 고발권한을 제대로 발휘하지 않아 기업의 불공정 관행에 면죄부를 준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었다. 공정위 통계연감에 따르면 81년부터 지난해까지 공정위가 처리한 사건은 모두 8만467건이었는데 고발은 814건으로 전체의 1% 수준에 불과했다. 보완책으로 감사원·중소기업청(현 중소벤처기업부)·조달청이 요청하면 공정위가 반드시 고발해야 하는 ‘의무고발요청제’가 시행됐지만 역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목소리가 크다.

정부는 일단 일부 법에 대해 전속고발권을 폐지하기로 했다. 가맹·유통업·대리점법 등 소위 ‘유통 3법’이 대상이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유통 분야의 갑을 관계에서 비롯되는 불공정행위 근절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하도급법과 표시광고법 등의 경우 폐지 여부에 대한 결론을 일단 유보하고 논의를 더 거치기로 했다.

공정위는 전속고발권을 보다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김 위원장은 “전속고발권 폐지가 논란이 된 이유는 그동안 공정위가 검찰 고발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래픽= 이정권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 이정권기자 gaga@joongang.co.kr]

구체적으로 공정위는 공정거래법 고발지침을 고쳐 기업이 법을 위반할 경우 법인·임원뿐 아니라 실무자도 적극적으로 고발하기로 했다. 김 위원장은 특히 “재벌이 법 위반을 하면 모두 고발할 것”이라고 했다.

전속고발권이 폐지돼 누구나 공정거래 관련 고발권을 가지면 형사소송 건수는 급증할 가능성이 크다. 전속고발권 폐지 반대론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다. 이 때문에 TF는 전속고발권 폐지 검토와 함께 민사적 구제수단을 늘려 주는 방안을 마련했다. 공정거래 관련 법 처리가 지나치게 형사 중심으로 쏠리지 않게 하려는 목적이다. 대표적인 게 ‘사인(私人)의 금지청구제도’를 가맹·유통업·대리점법과 하도급법 등에 도입하기로 한 것이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갑질’ 피해를 본 소비자나 기업이 공정위를 거치지 않고 불공정거래행위를 중단시켜 달라는 소송을 법원에 제기할 수 있다. 현재 공정위가 조사를 안 하거나 무혐의로 처분하면 피해자는 공정위에 재신고하는 것 이외에 다른 구제방안이 없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배상액을 최대 ‘10배 이내’로 규정하는 방안을 논의하기로 한 것 역시 민사적 수단을 강화해 준 것이다.

행정처분 강화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는 ‘솜방망이’ 지적이 나왔던 과징금을 2배 더 매기는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과징금을 현실화하면 법 위반의지를 꺾을 수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이런 TF의 결론이 현실화할지는 미지수다. TF의 이번 보고서는 확정안이 아니다. 전속고발권 폐지 등은 법 개정사항이다. 국회 문턱을 넘어야 한다. 야당은 김 위원장이 TF를 꾸린 것에 대해 국회 법안소위 등의 과정을 무시한 ‘월권행위’라고 비판했다.

전속고발권 폐지에 첫 영향을 받게 될 가능성이 커진 유통업계의 반발도 넘어야 한다. 프랜차이즈업계의 한 관계자는 “공정위 이외에 다른 곳에서의 고발이 쏟아지면 소송비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경쟁사를 음해하기 위한 소송을 막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속고발권을 비롯한 공정거래법 시스템 개편은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보다 신중히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교수는 “전속고발권이 폐지되고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확대되면 소송 남발로 기업 투자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소송 남발을 방지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등 세심한 설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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