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미·소 공존 시대 개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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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88년은 국내외적으로 다른 어느 때 보다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미소간의 새로운 평화공존 노력, 소련·중공의 체제 개혁 노력 등 화해 무드는 한반도 주변 정세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심화되는 경제 마찰, 장기화되는 페르시아만 분쟁 등 긴장 요인도 도사리고 있다. 88년의 국제 정세를 좌우할 요인이 될 초점들을 시리즈로 살펴본다.【편집자 주】
전세계의 화평 무드를 좌우할 미소 관계는 지난해에 이어 새해에도 공존 쪽으로 순항할 것 같다.
미소 정상은 지난해 군축 협상 사상 최초로 중거리 핵무기(INF) 폐기에 합의한데 이어 올해 5월 모스크바에서 열릴 정상회담에서는 전략 핵무기의 50%감축까지 합의될 전망이고 9월의 서울 올림픽은 10년 이상 지속된 동서 신 냉전의 종막을 확인케 해줄 것 같다.
미소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대립과 상호 협조의 양측을 중심으로 그때 그때의 필요에 따라 움직여 왔다. 그리고 지난해 미 소 정상은 INF협정을 체결한 직후 「새로운 시대의 개막」이라고 평가함으로써 상호 공존과 협조의 축으로 돌아섰음을 선언했다.
양국 관계의 이 같은 변화는 지난해 양국간의 갈등 요인이 후퇴한 반면 화해의 불가피성이 전면에 부상한 결과다. 미국은 SDI개발에 융통성을 보임으로써 과도한 군비경쟁으로 소련의 항복을 받아 내겠다는 기존의 입장에서 사실상 후퇴했고, 소련은 실질적인 핵무기 감축에 적극적으로 나섰을 뿐 아니라 미 소 화해의 장애가 되던 자국내 유대인들의 자유로운 이주 허가와 아프가니스탄 주둔군의 철수를 시사하고 실제 1만명을 철수하는 등 성의를 보였다.
외교가 국내 정치의 필요에 대해 구속적이듯 양국이 핵군사경쟁과 지역 분쟁에서 긴장을 지양하게 된 이유는 그들의 속사정에 바탕을 두고 있다. 「고르바초프」의 경제 정치 개혁운동을 위한 국력 집중의 필요성과 미 재정적자 감축 노력에 따른 군비 압박이 미국과 소련을 다같이 화해 쪽으로 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화해의 불가피성」은 쉽게 사라질 성질의 것은 아니어서 88년 미 대통령 선거에서 누가 당선되더라도 미소의 해빙기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더구나 작금의 미 소 데탕트는 70년대의 그것과는 매우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달러화의 대 엔·대 마르크화 가격이 하락을 거듭하는데서 실증되는 일본과 서독의 등장, 무역 개방 압력을 가열히 벌이면서도 줄어들 줄 모르는 무역 적자와 재정 적자에서 보여지는 미국 경제의 약화 추세 등은 80년대 신 냉전 드라이브 실패와 함께 종래와는 다른 세계 질서의 모색을 요구하고 있다.
결국 미소가 처한 이와 같은 여건의 덕분으로 이번의 데탕트는 쉽사리 냉전으로 퇴보하게 될 가능성보다 제3의 질서를 위한 조정기로서의 역할을 장기간 계속할 가능성이 많다. 여하튼 미소 대결 구조 완화는 양국의 영향권 아래에 있는 주변 국가들의 행동반경을 넓혀 탈 이념적 국리 추구를 쉽게 해줄 것이므로 우리로서는 반갑기 그지없는 현상이다.

<이재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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