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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일관성 중요 ‘브랜드 옷=멋진 옷’ 인식은 착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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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7호 23면

[두 남자의 스타일 토크] 남자의 멋 부리기

물고기의 뼈를 모티브로 해서 만든 헤링본 패턴. 멀리서 보면 단색처럼 느껴지고, 가까이서 보면 디테일이 드러나는 반전이 특징이다. [사진 남훈]

물고기의 뼈를 모티브로 해서 만든 헤링본 패턴. 멀리서 보면 단색처럼 느껴지고, 가까이서 보면 디테일이 드러나는 반전이 특징이다. [사진 남훈]

남자가 멋 부리기 쉽지 않은 세상이다. 너무 정석대로 입으면 나이 들어 보이고, 최신 유행을 따르다 보면 나잇값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 십상이다. 때문에 브랜드 옷을 걸치는 걸 ‘멋진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도 많다. 자타 공인 멋쟁이로 통하는 두 명의 남자가 남자의 멋 부리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정갈한 슈트 입던 사람의 청바지 #파격적인 것보다 점잖은 게 적합 #푸틴 사냥복·턱시도 멋있어 #우리 정치인 복장 신경 썼으면 #넥타이보다 슈트 소재·패턴 중요 #얼굴 밝기 따라 컬러 채도 바꿔야 #헤링본은 점잖게 멋내기에 적합 #셔츠는 예의와 마음가짐의 표현

신동헌(이하 신)=오늘은 남자로서 멋 부리기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먼저 ‘멋’이란 무엇일까. 세대에 따라 달라지는 기준이라면 ‘멋’이라기보다는 ‘유행’이 아닌가 싶기도 한데.

남훈(이하 남)=우리나라의 멋은 돈과 비례하는 경향이 있다. 기성복이 없던 시절, 옷을 갖춰 입으려면 옷을 맞춰 입어야 했다. 돈이 없으면 제대로 된 옷을 입어 볼 기회가 없었지. 근대화가 시작되면서 기성복이란 게 생기기 시작했고, 그때 들어온 대표적인 브랜드가 아르마니, 버버리, 혹은 브랜드 로고가 큼지막하게 박힌 옷이었다. 이때부터 비싼 옷을 입어야 멋있다는 개념이 생겨나게 된 거 같다.

신=패션 잡지를 만드는 일을 오래 했지만, 미디어가 ‘진정한 멋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독자에게 던지는 것보다 어떤 특정 브랜드, 솔직히 말해 광고를 잘 하는 브랜드를 밀어 주는 경우도 많다. 유행을 바라보는 안목이나, 아이템에 대한 소화력을 키우는 것보다 ‘이거 입으면 멋쟁이’라고 설명하는 편이 간단하니까.

남=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었을 테니 죄책감은 갖지 않아도 될 것 같다.(웃음) 그런 미디어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따라 하는 것이 멋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이렇게 입어야 멋있어요’라는 콘텐트보다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걸 찾아 주는 콘텐트를 제공하는 게 미디어가 해야 할 역할이 아닐까.

신=사실 자동차를 살 때도 마찬가지다. 화려한 컬러를 좋아하는 게 취향인 사람도 결국 영업사원들이 추천하는 흰색, 검은색, 은색 차를 사게 된다. 나중에 중고 가격 더 받는다고 하면 대부분 설득당한다. 사실은 재고가 그거 밖에 없어서 그런 경우가 많은데. 옷 살 때도 마찬가지다. 노랗고 빨간 화려한 재킷을 입어 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결국 무난한 컬러를 선택하고, 또 그런 색깔만 잘 팔리니 다양성이 줄어드는 악순환이다.

남=물론 매장의 바이어들도 화려한 컬러가 예뻐 보이는 경우가 있을 거다. 하지만 잘 팔리는 컬러는 정해져 있으니 특별히 모험을 할 필요가 없는 거지. 딜레마 같은 거다. 자신의 취향을 철저히 반영하거나 아니면 평범한 쪽을 선택하거나. 나는 양쪽이 모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매번 이야기하는 거지만 나는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좀 더 멋을 부렸으면 좋겠다.

신=말이 나온 김에, 정치인은 어떻게 입는게 멋있는 건가.

남=정치인은 불가피하게 슈트를 입을 수밖에 없다. 정당을 상징하는 컬러의 넥타이를 매는 것이 그들의 유일한 멋의 표현이다. 꼭 그렇게 최소화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오히려 그들이 입는 재킷과 코트, 턱시도, 야외 활동 시 복장에 좀 더 신경 쓰면서 이렇게 입는 게 멋있다는 남성의 멋의 척도가 되면 좋을 텐데. 언제까지 공장 점퍼 입는 걸 ‘서민과 호흡하는 것’이라고 여길 건지.

사냥복 앞주머니에 나뭇가지를 꽂아 멋을 낸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연합뉴스]

사냥복 앞주머니에 나뭇가지를 꽂아 멋을 낸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연합뉴스]

신=유럽이나 미국의 정치인들이 여가를 즐길 때 복장을 갖춰 입는 게 멋있어 보이긴 하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사냥 복장을 갖춘 모습을 봤었는데 그게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다. 공식행사할 때 턱시도 차림도 아주 멋진데, 우리나라에서는 보기가 어렵다.

남=어떠한 그룹을 대표하는 사람이라면 제대로 된 옷을 갖춰 입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우리나라도 정치인이 옷을 잘 입으면 사치한다는 개념이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신=만약 문화부 장관이 서울 패션위크에 와서 국내 디자이너들과 교류도 하고 그들의 옷을 입으면 어떨까. 국내 패션 산업을 발전시키는 데 큰 도움을 줄 거 같다. 전 대통령의 옷에 관한 에피소드 때문에 당분간 힘들 것 같긴 하지만(쓴웃음).

남=옷을 브랜드나 돈으로만 생각 안 했으면 좋겠다. 그래도 요즘은 과거에 비해서 어느 특정 브랜드에 관심이 쏠리는 현상이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 그만큼 멋에 대한 범위도 넓어지는 거겠지.

신=슈트를 매일 입어야 되는 사람이 멋을 부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넥타이에 힘을 주는 게 맞을까.

남=넥타이로 멋을 부린다는 생각은 이제 좀 버려야 한다. 화려한 넥타이는 파티에나 어울리는 거지. 나는 넥타이 대신 슈트의 소재나 패턴에 집중하라고 말하고 싶다. 키 작은 사람이라면 스트라이프 패턴, 뚱뚱한 사람은 라펠이 넓은 옷을 선택하고, 얼굴 밝기에 따라서 컬러의 채도를 바꿔 보는 것도 좋다. 이런 게 멋내기의 상급 기술이다.

신=그럼, 지금 계절에 가장 잘 어울리는 패턴은 무엇인가.

남=가을에는 단연 헤링본이다. 물고기의 뼈를 모티브로 만든 헤링본 패턴의 특징은 반전이다. 멀리서 보면 단색처럼 느껴지고, 가까이서 보면 디테일이 드러난다. 헤링본 패턴이 가미된 슈트는 점잖게 멋 내기에 적합하다. 컬러는 크게 상관없다.

신=여자들이 멋있다고 얘기하는 남자들을 보면, 대부분이 옷이 많은 사람들이다. 가지고 있는 아이템의 종류나 가짓수가 적으면 검소하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남자는 여자만큼 많은 옷을 가지기 힘들다고 생각하는데, 꼭 옷이 많아야 멋있는 걸까.

남=옷이 많고 적고의 여부를 떠나 일관된 이미지를 확립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평소 슈트를 정갈하게 입는 사람이 파격적인 청바지를 입었다고 가정해 보자. ‘파격적이다’ ‘의외다’와 같은 반응은 들을 수 있겠지만 정작 ‘멋지다’는 말은 기대하기 힘들다. 복장은 일관된 멋을 유지하는 게 중요한 거 같다. 슈트를 정갈하게 입는 사람이라면 청바지 또한 점잖고 클래식한 타입이 좀 더 어울릴 것이다.

신=공감한다. 나처럼 평소에 청바지와 가죽 재킷을 즐겨 입는 사람이 갑자기 라펠이 좁은 네이비 슈트를 입으면 꼭 유흥업소 종업원처럼 보일 거다. 대신 패턴이 들어가고 실루엣이 살짝 변주된 슈트를 입으면 “너 답다”라는 말을 듣는다.

남=패션에 대해 일관성이 있으면 충동구매도 줄일 수 있다. 자신의 옷장의 범위를 정해 두고 쇼핑하는 거지. 이거야말로 현명하게 멋부리는 방법이다.

신=옷장의 범위를 정해 두더라도 어느 정도의 아이템은 갖추고 있어야 하지 않나. 남자라면 꼭 갖추고 있어야 할 아이템은 뭐가 있나.

남=우선 그레이와 네이비 슈트 두 벌. 블루와 브라운 컬러의 재킷과 회색 바지. 까만색 옥스퍼드 슈즈. 화이트 드레스 셔츠, 점잖은 디자인의 청바지와 질 좋은 면 티 정도만 갖추고 있어도 꽤 다양한 스타일링을 할 수 있다.

신=이렇게 갖춰 놓은 다음에 하나씩 새로운 아이템을 추가해서 조합하는 재미도 쏠쏠할 거 같다. 그럼 지금처럼 옷 입기에 애매한 시기에 입기 좋은 아우터는 뭐가 있을까.

남=방수와 방풍이 되는 소재로 만든 필드 재킷. 좀 더 추워지면 코트 안에 이너로 활용해도 멋스럽다. 하나 더 하자면 카디건. 슈트 속에 입으면 몸의 온도를 높이기에 충분하다. 더우면 벗어서 가방에 넣어 두면 된다.

신=나처럼 캐주얼 복장이 가능한 직장에 다니던 사람에게는 슈트는 불편한 옷이다. 나 같은 캐주얼 마니아가 슈트와 친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남=먼저 티셔츠와 셔츠의 차이점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티셔츠와 셔츠를 구분 지어 입는다는 건 하나의 선언과 같다. 티셔츠를 선택했다면 오늘은 공식적인 일정이 없다는 의미가 되는 거고, 반대로 셔츠를 입고 나왔다면 오늘은 예의를 갖추는 날이라는 의미가 생기는 거지. 티셔츠를 자주 입는 사람이 슈트와 친해지기 위해선 먼저 셔츠에 익숙해져야 한다. 청바지에 셔츠를 입어 보고 나아가 울바지와 입어 보고. 그러다 보면 타이까지 매지 않더라도 점점 슈트와 친해지게 될 거다.

신=언젠가 대기업 경영진과의 인터뷰에서 들었던 말이 생각난다. 그는 ‘모든 남자가 셔츠를 입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상대방에 대한 예의와 마음가짐 등을 복장으로 표현한다는 의미가 녹아 있는 거 같다.

남=물론 신분과 직업에 따라 다르겠지만, 본인의 라이프스타일과 어울리게 일관성을 만들어 가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미디어가 제공하는 수많은 정보가 좋은 테크닉으로 발전할 수도 있겠지만 이제 막 티셔츠를 벗고 셔츠를 입기 시작한 사람에게 미디어가 추천하는 심화과정의 테크닉들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본인에게 어울리는 게 어떤 건지 차근차근 알아 가며 일관성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기본기부터 갖춘 다음에 조금씩 더해 보고 덜어 내도 늦지 않다. 우선 아까 말한 기본 아이템을 갖추고 몸에 익히는 것부터 시작해 보자. 직진도 제대로 못하는데 코너링 연습할 수는 없는 거니까.

신동헌·남훈 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남성복 편집숍 알란스 대표
신동헌 스포츠투데이·에스콰이어 기자를 거쳐 남성패션지 레옹 편집장으로 일하면서 온갖 놀거리를 섭렵한 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패션뿐 아니라 카메라·오디오·전자기타·자동차·모터사이클에 이르기까지 광폭의 취미를 자랑하는 순혈 마초다.

남훈 남자의 복장과 패션에 대한 연구를 삶의 목표로 삼은 클래식 슈트 매니어. 패션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면서 여러 기업과 협업해서 브랜드와 편집숍을 함께 만들었다. 자신만의 남성복 편집숍 알란스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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