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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적 열 조절 장치 고장나면 ‘도둑 땀’이 당신 건강 훔쳐간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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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7호 24면

[新동의보감] 좋은 땀 vs 나쁜 땀

땀을 자연스럽게 못 흘리면 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 환자의 체력 등을 고려해 약재를 처방해야 한다. [중앙포토]

땀을 자연스럽게 못 흘리면 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 환자의 체력 등을 고려해 약재를 처방해야 한다. [중앙포토]

한의학과 서양의학은 우리 몸의 열(熱)을 다스리는 방법부터 다르다. 열병이 나면 서양의학에서는 당장 중추신경계의 흥분을 억제하여 열을 내리는 해열제를 쓴다. 이에 반해 한의학에서는 땀을 내게 하여 몸이 스스로 열을 조절할 수 있게 도와준다.

깰 때 두통·불쾌·무력감 동반 #끈적끈적한 촉감 느껴지는 盜汗 #우울증 등 신경성 질병 때 발생 #냉방 잘 돼 좋은 땀 적게 흘려 #체온 상승은 여러 질병의 원인

항온(恒溫)동물인 사람은 땀을 흘려 체온을 조절한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좋은 땀을 제대로 흘리지 못해 파충류처럼 변온(變溫)동물에 가까워지고 있다. 냉방이 보급되고 교통이 편리해진 데다 컴퓨터까지 출현하는 바람에 현대인들이 몸을 움직여 좋은 땀을 흘릴 기회가 줄었기 때문이다.

요즘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암반욕(岩盤浴)이 유행이다. 암반욕은 오래전부터 중병 환자들이 치료 목적으로 해왔던 것인데, 아키타(秋田)현의 다마가와(玉川)온천이 가장 유명하다. 그런데 현대의 일본 젊은이들은 치료 목적보다 기분 좋은 땀을 흘리기 위해 일부러 암반욕을 찾아서 즐기고 있다.

본래 땀은  노동이나 운동과 같은 활동을 하거나 더울 때 자연스럽게 흐르는 것이다. 따라서 과거에는 땀을 특별하게 의식하지 않아도 됐다. 그러나 현대인들이 암반욕이다 사우나다 해서 억지로 땀을 흘리려는 것은 그만큼 땀 흘리기 힘든 환경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발한(發汗)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체온이 올라가고 몸이 식지 않아 여러 가지 질병의 원인이 된다. 이와 반대로 좋은 땀을 흘리면 신진대사가 활발해지고, 혈액이 증가해 산소를 충분히 운반할 수 있다. 땀을 잘 흘리면 면역력이 높아지고 다이어트에도 효과적이며 체내의 독소를 밖으로 배출할 수도 있다.

사람들은 건강 면에서 대변이나 소변에 대해서는 신경을 많이 쓰지만, 같은 신체 배출물이라고 해도 땀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게 사실이다. 서양의학에서 병을 진단할 때 혈액·소변·대변 검사는 필수적으로 하면서도 땀 검사는 하지 않는다. 사실 지금까지 서양의학에서는 땀에 대한 관심은 별로 없었고, 땀과 질병의 관계에 대해서도 그다지 눈여겨보지 않았다.

한의사의 시각으로 볼 때 땀을 극단적으로 많이 흘리는 사람과 극단적으로 적게 흘리는 사람이 늘어나는 반면, 땀을 적당하게 흘리는 사람은 감소하고 있는 것 같다. 몸 전체가 아니라 손바닥이나 겨드랑이, 얼굴 등 특정 부위에서 다량의 땀을 흘리는 사람도 있다.

땀을 많이 흘려 고민하는 다한증(多汗症) 환자를 진찰하면서 느낀 점은, 모두 다 그렇지는 않지만 대체로 온화한 성격의 소유자가 많다는 것이다. 체온조절이 잘 안 되고 땀을 잘 흘리지 못하는 사람은 신체적 부조화뿐만 아니라 불면증이나 우울증 등 정신적 부조화를 호소하는 경우가 많았다. 땀을 잘 흘리지 못해 체온 조절이 잘 안 되면 다양한 질병이나 정신 불안 증상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한선(汗腺·땀샘)은 무색·무취·무미로 체온조절과 노폐물 배출을 담당하는 에크린선과, 겨드랑이 등 특정부위에 집중적으로 발달해 지방산과 유기물질을 배출시키는 아포크린선으로 나뉜다. 땀의 성분은 99%가 물이며 나머지는 염분·요소(尿素)·암모니아·미네랄(칼슘) 등이다.

냉난방이 완비된 쾌적한 온도의 방 안에서 생활하면 땀을 흘릴 필요가 없기 때문에 작동하지 않는 한선이 늘어나게 되고 한선의 기능도 저하된다. 그렇게 되면 땀이 나더라도 냄새가 지독한 땀을 흘리게 되어 체취(體臭)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최근 저체온 아동이나 성질을 잘 내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선 기능의 저하로 인해 신체 대사가 나빠진 것이 주요한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땀에도 좋은 땀과 나쁜 땀이 있다. 본래 자면서 흘리는 소량의 땀은 체온조절을 위한 자연스러운 생리반응이다. 사람은 잠을 자면 몸을 움직일 필요가 없기 때문에 발한중추(發汗中樞)는 땀을 흘림으로써 체내의 설정 온도를 약간 내려 준다. 이는 인간의 생명유지 활동에 필요한 현상이며, 운동할 때 흘리는 땀과 마찬가지로 자연적인 발한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 무서운 꿈을 꿀 때도 뇌의 발한중추가 자극받아 일시적으로 많은 양의 땀을 흘릴 수 있다. 꿈은 얕은 잠을 잘 때 주로 꾸기 때문에 대체로 일어날 때쯤 온몸이 땀에 젖게 된다. 이런 땀도 역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일어날 때 두통이나 불쾌감, 전신 무력감을 동반하면서 끈적끈적한 촉감이 느껴지는 병적인 발한도 있다. 이를 한의학에서는 도한(汗)이라고 부르며 좋은 땀과 구별한다.

인체 내의 수분은 혈액이나 눈물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며 각각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그러나 수분을 보급하지 않는 상태에서 땀을 흘리면 체내에는 혈액 등의 농도를 올려 땀 흘리는 만큼의 수분을 조절하게 된다. 다른 체액의 수분을 ‘훔쳐서’ 흘리는 땀, 즉 도한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도한으로 수분을 빼앗기게 되면 몸 상태가 불안정해져 병을 유발할 우려가 있다. 또 자율신경의 교란이나 호르몬 균형의 변화로 많은 양의 땀을 흘릴 수 있다. 도한은 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불안감, 우울증 등 신경성 질환의 초기에 잘 발생하며, 결핵 등 소모성 질환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도 자주 나타난다. 이처럼 땀은 건강의 바로미터이므로 건강한 일상생활을 보내면서 좋은 땀을 흘리도록 노력해야 한다.

한방에서 발한 이상을 치료할 때에는 발한 상태를 보며 환자를 구별한다. 구체적으로는 전신, 두부(頭部), 등, 손발 등 땀이 나는 부위와, 무한(無汗), 도한(盜汗) 등 땀이 나는 모양새를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 한방에서 환자의 상태에 따라 처방하는 발한 치료약을 몇 가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① 시호가용골모려탕(柴胡加龍骨牡蠣湯)

비교적 체력이 좋은 사람에게 사용한다. 배꼽 상부나 하부에 동계(動悸)가 있고 변비 경향이 있으며 불면증, 다몽(多夢), 불안, 우울증 등의 증상이 있는 경우에 처방한다. 이런 환자는 하초의 기혈소통이 나빠져서 아랫배나 허리 쪽이 더부룩하고 불쾌하며 무겁다고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머리 쪽으로 피가 치밀어 오르는 상기(上氣) 증상을 개선하는 계피(桂皮), 이뇨 작용을 하는 복령(茯笭), 진정 작용을 하는 용골(龍骨), 모려(牡蠣) 등을 배합한다.

② 시호청간탕(柴胡肝湯)

체력은 보통이며 알레르기 체질인 사람에게 사용한다. 소염과 발산 작용이 있는 시호(柴胡)나 박하(薄荷), 연교(連翹·개나리 열매), 배농, 항염작용을 하는 길경(桔梗)과 우방자(牛蒡子·우엉의 씨)를 배합한 체질 개선 한약이다. 불면증이 있고, 예민하여 잠잘 때 잘 깨고 꿈이 많은 경우에 처방한다. 만성습진에도 효과가 있다.

③ 방기황기탕(防已耆湯)

체력이 없는 사람에게 사용한다. 방기(防已)와 황기(黄耆)는 주로 이뇨작용을 하며, 부종을 없애는 효과가 있다. 뒤룩뒤룩 살이 찌고, 물을 많이 마시고 땀을 많이 흘리며, 쉽게 숨이 차는 타입의 사람에게 처방하면 효과적이다. 또한 평소 몸이 무겁고 잘 부으면서 관절부위에 물이 차는 퇴행성관절염 환자에게도 잘 듣는 처방이다.

정현석 약산약초교육원 고문
튼튼마디한의원 인천점 원장. 경희대 한의과 박사. 경남 거창 약산약초교육원에서 한의사들과 함께 직접 약초를 재배하며 연구하고 있다. 『신동의보감육아법』『먹으면서 고치는 관절염』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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