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속의 한국 보여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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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무신년 시무일. 우리는 다시 한자리에 모였다. 고향을 찾고 조상을 뵈온후 다시 일터에 왔다.
그렇게 흔히 쓰던 「근하신년」 「해피 뉴 이어」가 올해처럼 실감나게 느껴진 때가 있었던가. 이처럼 꿈에 부푼 새출발이 몇년만의 일이던가.
지난 한해는 숱한 고난과 슬픔으로 지새온 1년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헛되지 않아 우리에게 해피 엔드를 선사했다. 그결과 국민이 원한대로 민주적인 합의개헌이 이뤄졌다. 새 헌법에따라 국민직선의 대통령선출도 끝났다.
모두가 우려했던 무서운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역사의 후퇴도 없었다. 이제 50일후엔 민선대통령에 의한 평화적인 정부교체가 이뤄진다. 모두가 국민의 뜻대로 되어가고 있다. 바야흐로 암흑이 걷히고 광명의 신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광명의 시대」는 우리가 안일하기엔 너무나 벅찬 과제들을 안고 있다. 앞으로 수년안에 민주주의가 정착돼야 한다. 허상에 가려진채 방자하게 설치던 무력한 권위들은 사라져야 한다. 편견과 탐욕, 오만도 청산돼야 한다. 모두가 같이 살고 함께 번영하는 화합이 꽃피어야 한다. 겨레의 대합창이 이 금수의 산하에 메아리쳐야 한다.
다가오는 시대는 곧 「격동의 시대」다. 그러나 그것은 암흑의 격동이어서는 안된다. 희망이 끊이지 않는 광명의 격동, 발전이 멈추지 않는 긍정의 격동이어야 한다.
그런 새시대 원년의 첫째 과제는 민주주의 터전의 마련이다. 민주주의는 곧 자유의 확대와 평등의 실현이다. 국민에 씌워졌던 굴레는 모두 벗겨져야 한다. 자유가 방만과 무질서, 파괴여서도 안된다. 그것은 창조와 봉사의 에너지여야 한다.
평등은 계층과 지역과 세대의 거리를 메울때 이뤄진다. 기회에 차별이 있어서는 안된다. 법은 만인 앞에 똑같은 힘으로 군림해야한다.
독재자의 강권정치는 끝장나야한다. 정상배의 모리정치도 청산돼야 한다. 오직 국민만이 주인이고 국민만을 위해서 이루어지는 국민들의 정치여야 한다.
국내적으로 민주주의가 정착되면 우리의 오랜 고질은 치유된다. 정치발전은 경제성장과 결합하여 발전의 상승작용을 일으켜 국력신장에 새로운 기적이 이룩된다. 그 힘은 곧 한국 민족주의의 물리적 토대다. 그것을 바탕으로 부단히 몰아쳐오는 외부의 도전에 응전해야 한다.
둘째 과제는 북방시대의 개막이다. 우리 민족의 뿌리는 동아시아대륙이다. 우리는 그 고토에서 격리되어 반세기를 흘러왔다. 그나마 남북이 토막난 이산국가다.
그러나 지금 소련이 철의 장막을 거두고 동문을 열기 시작했다. 중공도 죽의 장막을 풀고 있다. 북한의 폐쇄와 고립도 한계점에 왔다. 이제 동아시아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우리가 맞문을 열어야 한다.스로 자초한 질식상태에서 허덕이는 북방사회에 신선한 바람을 보내야 한다. 노태우대통령당선자의 「서해안 시대」선언은 그런 바람의 하나다. 그러나 서문만 열어서는 안된다. 북문까지 열어 북한과 소련도 맞아야한다.
북방대륙은 새시대 우리겨레의 뉴 프론티어다. 북방진출은 고려조이래 민족의 의지다. 이 북방정신이야말로 겨레의 가슴속에 불타는 영원한 활화산이다. 그 뜨거운 힘으로 우리는 북으로, 대륙으로 달려야 한다.
새시대의 세째 과제는 세계화의 성취다. 후발국인 우리의 발걸음은 빨라야만 한다. 반도 남반부의 내적 목표와 동아시아에서의 지역적 과제에 머물러서도 안된다. 더 넓은 세계에도 도전해야 한다. 단순한 해외진출에 그쳐서는 안된다. 세계의 지도적인 선두대열에 서야 한다.
서울 올림픽은 「한국의 세계화」가 성취되는 결정적 계기가 돼야 한다. 가을이면 세계가 서울로 온다. 소련과 중공, 그리고 지구의 저 끝에서까지 우리 품에 안겨온다. 인류공동의 광장이 이 땅에 펼쳐지는 것이다. 한국사상 최대의 행사요, 올림픽사상 최대규모다. 단군개조이래 처음으로 우리가 세계의 중심, 인류의 초점이 되는 것이다.
이 기회에 우리의 모든 것을 유감없이 보여줘야 한다. 선조들의 유산과 우리 노력의 성과, 겨레의 가능성을 과시해야 한다. 세계적인 수치였던 우리의 민주주의도 함께 선보일 차례다. 우리를 모욕해온 세계인들에 대해 이 땅이 결코 장미가 피어날 수 없는 폐허가 아님을 확실히 증명해주자.
지금 저 백색대륙에서 펼쳐지는 남극개척대의 활동은 우리의 가능성을 충분히 과시하고 있다. 지금 우리의 인원, 기술, 자재가 거기서 선진국들과 함께 만년설의 대륙빙을 파헤치며 남극탐사를 개시했다. 인근 중공기지와의 상호교류와 협력관계도 터놓았다.
이제 새시대의 막이 열렸다. 민족사의 거창한 조류가 도도히 흘러가고 있다. 우리의 과제는 벅차다. 그러나 결코 비관하지 말자. 비관하는 민족엔 미래가 없다. 부정하는 집단은 발전하지 못한다. 자신감을 갖되 방심하지 말자. 미래를 낙관하되 태만하지 말자.
온 겨레가 새 역사의 흐름에 동참해야 한다. 다음 세계는 우리의 것이어야 한다. 87년은 「국민승리의 해」다. 88년은 「한국승리의 해」가 되게하자. 이를 위해 6천만이 하나가 되어 세계로 뻗어야 한다. 용이 하늘을 날듯 미래로 달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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