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웃기면서 쓰디쓴 … 늙은 개가 보는 삶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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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정우열(36)의 만화 '올드독'(거북이북스)은 그런 점에서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만화의 주인공 올드독은 작가가 실제 기르고 있는 14살 먹은 늙은 개다. 사람으로 따지자면 산전수전 다 겪은 꼬부랑 노인인 이 개는 침대에 턱 하니 누워 있다가 주인의 무슨 꼬투리라도 잡으면 벌떡 일어나 이러구러 잔소리와 수다를 그치지 않는 것이다. '귀차니즘'이라는, 만사가 귀찮은 게으른 고양이를 등장시켜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낸 권윤주의 만화 '스노우캣'과는 대척점에 서있는 캐릭터인 셈이다. 작가는 자신의 분신인 이 개가 등장하는 만화를 '소심한 낙천주의자의 도시 잡상(雜想)'이라는 수식어로 설명한다.

올드독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다채롭다. 반바지나 치마를 입었을 때 다리를 꼬고 앉아있다가 일어나면 자국이 남기 때문에 커피가 4분의 1 정도 남아 있을 때부터 다리를 풀어두면 좋다는 '정보',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에릭과 꿈속에서 벌인 논쟁, 약 싫다고 크게 울수록 벌린 입속에 약이 쑥 들어오는 법이라는 경구 등이 간결한 그림과 함께 술술 펼쳐진다.

작가는 대학에서 국문학을, 영화아카데미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하고 8년간 시사만화를 그렸다. 책 중간중간에 펼쳐지는, 파스텔톤의 그림을 배경으로 부분부분 컬러로 채색된 일러스트는 꿈속을 떠가는 듯한 몽환적인 느낌을 준다. 1만2000원. 02-337-7972.

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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