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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가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개구리들의 합창소리가 산골을 가득 메웁니다. 오늘따라 유난히 큰 목소리로 울어대는 걸 보니 뭔가 슬픈 일이라도 있나 봅니다.
오늘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제삿날입니다. 해마다 이날이면 제사음식을 차리지는 못하지만 술한병만은 꼭 마련합니다. 그래서 집에서 2km나 떨어진 개암골 가게에서 정종한병을 사가지고 오는 길입니다….』
이것은 최근 『소년중앙』에 실린 어린이 가장들의 수기 가운데서 고른 박미례양(13·충남보령)의 글 첫 구절이다.
광부였던 박양의 아버지는 진폐증을 앓다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 대신 광산에 나갔던 어머니는 어느날 두자매를 버려둔채 훌쩍 집을 나갔다.
이같은 소년·소녀가장이 해마다 늘고 있다. 보사부에 따르면 현재 전국의 소년·소녀가장수는 6천4백31명으로 지난해말 (6천39명)보다 6·7% 늘었으나 85년말 (4천9백1명) 보다는 무려 31·3%나 늘어났다. 그중에는 부모의 사망 (4천3백43명)이 가장 많지만, 부모의 가출(9백43명), 이혼 (5백68명), 복역등 기타사정 (1백19명)으로 인한 결손가정이 25%를 넘어 충격을 준다.
세상 살기가 그토록 어려워서인가. 아니면 자기몸 하나만 편하려는 이기주의적 세태때문인가.
『아가는 잠시도 나한테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잠깐 변소에만 다녀오려해도 막 뒹굴고 웁니다. 할수 없이 아가를 등에 업고 변소에도 가고 밥도 지읍니다.』
몇년전에 단행본으로 나온 당시 13세 소년가장 김영출군의 수기『엄마없는 하늘아래』 는 다시 읽어도 가슴이 뭉클해 온다.
어린이 가장이 겪는 고초가운데는 물론 생활고가 가장 심각하지만, 부모를 찾는 어린동생들을 달래야하는 마음고생이 더 가슴을 저민다.
『어린이는 인간으로서 존중되어야 하며…』 로 시작되는 「어린이헌장」 제7조는 『굶주린 어린이는 먹여야하고, 병든 어린이는 치료해 주어야한다』로 돼있다.
그러나 정부는 이들을 생활보호대상자로 지정, 생계비를 조금보조할뿐 어린이가장에 대한 항구적 대책이 없다. 사회의 손길도 대부분 「1회성 온정」에 그치는 형편이다.
하지만 이들에겐 물질적 도움못지않게 중요한게 「정」이라는 것을 우리는 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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