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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1984년 닉슨·키신저 초청"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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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1994년 사망한 김일성 북한 주석이 생전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 등 미국의 유력 정치인들을 초청했던 것으로 기밀 해제된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문건에 나타났다.

리처드 닉슨

리처드 닉슨

자유아시아방송(RFA)이 입수해 분석한 CIA 기밀보고서(Kim Il-Song invited prominent Americans to visit DPRK)에 따르면 김일성은 84년 11월 15일 노로돔 시아누크 전 캄보디아 국왕을 통해 미국 정치인들에게 초청장을 전달했다.

기밀 해제된 CIA 문건서 밝혀져 #캄보디아 시아누크 통해 초청장 #닉슨·키신저 현직서 물러났지만 #대중국 정책 변화시킨 업적 주목 #“김일성, 북·미 관계 개선 노린 듯”

솔러즈

솔러즈

당시 김일성이 초청한 인사는 닉슨 전 대통령과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미 하원 동아태소위원장이었던 스티븐 솔러즈 전 의원 등이다. 솔러즈 전 의원은 80년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을 만났던 인물이다.

김일성이 이들을 초청한 목적과 관련해 CIA는 “이들이 미국의 대중국 정책을 변화시킨 인물이었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이는 김일성의 초청의사를 전달한 시아누크 전 국왕의 언급이었다고 한다.

김일성의 초청 당시 닉슨 전 대통령과 키신저 전 장관은 현직에서 물러난 뒤였지만 이들은 적대적이었던 미·중 관계를 개선했던 인물로, 김일성이 이들을 통해 북·미 관계 개선을 시도하려 했다는 뜻이다.

닉슨 전 대통령은 71년 미국 탁구대표단을 중국 대회에 참가시키는 탁구(핑퐁)외교를 성사시켰고 그해 7월 키신저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을 극비리에 중국으로 보냈다. 닉슨 전 대통령은 이듬해인 72년 2월 직접 중국을 방문해 관계를 정상화했다.

정창현 현대사연구소장은 “북한은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를 수레바퀴처럼 하나의 틀로 보고 문제를 풀어 왔다”며 “김일성은 남북 정상회담을 염두에 두고 북·미 관계 개선에 나선 차원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김일성의 초청 직전인 84년 여름 한국이 대규모 홍수 피해를 보자 북한은 수해물자 지원을 제안했고, 한국 정부가 이를 수용하면서 화해 분위기가 조성돼 남북 정상회담 추진으로 이어졌다.

정 소장은 “북한은 전두환 정부 출범 직후 대대적인 비난 공세를 펼치다 83년 버마(현 미얀마) 아웅산 묘소 폭발사건으로 국제적으로 고립됐고 수세에 몰렸다”며 “이를 만회하는 차원에서 북한은 대남 수해 지원을 했고, 전두환 전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 추진을 수용하면서 남북 간에는 화해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설명했다.

85년 들어 박철언 안기부장 특보와 한시해 북한 외교부 부부장이 실무접촉에 나섰다. 이어 허담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과 장세동 안기부장(지금의 국정원장)이 각각 서울과 평양을 비공개로 방문해 전 전 대통령과 김일성을 만나 각각 친서를 전달하고 의제에 합의하는 등 사상 첫 정상회담 개최 직전까지 갔다. 그러나 그해 10월 20일 북한 무장 간첩선이 부산 청사포 앞바다에 침투하다 한국군에 격침되는 사건이 발생하며 물거품이 됐다.

키신저

키신저

닉슨 전 대통령과 키신저 전 국무장관도 김일성의 초청에 답장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CIA는 파악했다. 결국 전 캄보디아 국왕을 통한 김일성의 닉슨 전 대통령 초청은 무산됐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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