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시론

21세기형 디자이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제품 디자인에 특화되어 있던 미국의 산업디자인 업계는 1960년대 이후 제조업 비중의 축소에 따라 영역이 계속 위축되었다. 그러나 디자인 전문가들은 위기 상황에서 발상을 전환했다. 적용 영역을 서비스 산업으로 확산하고, 정부도 디자인에 대한 새로운 인식 아래 디자인 개념을 공공조직에 적용한 결과 산업디자인은 새롭게 발전했다. 이러한 변화의 근저에는 공급자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 수요자 입장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혁신적인 디자인 전문가들이 있었다.

한국에서도 디자인 분야는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디자인 전공 졸업생은 매년 3만6000명에 달해 세계 2위에 올라 있다. 국내시장에서 소비자들은 가격.품질.애프터서비스를 넘어 브랜드를 구매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선택하고 있고, 더 나아가 심미안을 가진 소비자들은 디자인을 가장 중요한 가치 기준으로 삼기 시작했다. 해외시장에서도 삼성.LG.현대 등 한국 간판기업의 제품들은 디자인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2004년 연구에 따르면 한국 경제에서 디자인산업 비중은 4.7%로 영국의 2.0%를 두 배 이상 압도한다. 한국에서 만드는 세계적 제품인 자동차.전자제품.선박.휴대전화 등이 모두 디자인 집약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디자인 능력에 힘입어 우리 기업의 브랜드가치도 자연스럽게 올라가고 있다. 삼성전자의 브랜드가치는 전문평가기관인 인터브랜드사의 2005년 평가 결과 14조6000억원으로 세계 20위에 해당했고, 현대자동차와 LG도 100위권 안에 랭크되었다.

이제 한국이 디자인 강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필요조건은 갖추어진 셈이다. 앞으로 한국 경제를 주도하면서 한국 국민을 선진 국민으로 변화시킬 21세기형 디자이너의 모습을 그려본다.

첫째, 21세기형 디자이너는 사회 변혁의 선도자다. 자신의 전공을 적용하는 범위를 제품으로 제한하지 않고, 서비스 산업, 더 나아가 우리 사회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디자인하게 될 것이다.

둘째, 21세기형 디자이너는 고객 만족의 경영자다. 소비자가 찾지 않는 디자인은 존재할 수 없듯이, 디자이너는 고객을 찾아내고 이들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경영 활동을 통해 디자인의 부가가치를 극대화할 것이다.

셋째, 21세기형 디자이너는 부가가치의 창조자다. 우리 국민에게 디자인이 사치스러운 것이 아니라 우리 생활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선진형 부가가치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알려줄 것이다.

오늘날 디자이너는 한국 경제를 선진국으로 탈바꿈하는 주체고, 디자인은 21세기를 이끌어가는 화두다.

조동성 서울대 교수.한국경영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