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땅 함부로 맞바꾸면 낭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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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서울 마포구 신수동에 사는 이모씨는 한달 전 교환거래를 통해 매입한 부동산만 생각하면 화가 치민다. 주택 3채를 보유한 그는 경기도 안양의 22평형 아파트(시세 1억8000만원)를 중개인의 권유로 경남 하동군의 임야 750평과 맞바꿨다. 땅 매도 희망가(1억5000만원)와 아파트 값과의 차액인 3000만원은 현금을 받는 조건으로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하지만 나중에 확인한 결과 임야 시세는 5000만원에 불과했다.

이씨는 "골칫거리였던 '나홀로 소형아파트'를 처분하고 대신 땅을 거머쥐는 데다 현금까지 받는다는 기쁨에 취해 현지 시세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게 화근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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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거래시장이 얼어붙으면서 부동산 물물교환이 다시 늘고 있으나 곳곳에 함정이 도사리고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부동산 교환을 주선하는 중개인과 교환전문업체로 변신한 기획부동산(땅을 싸게 사들여 비싼 값에 쪼개 파는 업체)의 농간에 소비자가 피해를 보는 경우도 잦아졌다.

◆ "집 줄 테니 땅 주세요"=교환거래는 부동산을 사고 파는 당사자가 각자 갖고 있는 부동산을 바꾸고 차액만 현금으로 결제하는 거래 방식이다.

부동산시장이 침체돼 거래가 잘 이뤄지지 않을 때 빈번하게 나타나는 데 외한위기 이후 사라지다시피했다 최근 다시 성행하고 있다. 교환 거래를 잘 활용하면 애물단지인 부동산을 빨리 처분하고 원하는 부동산을 골라 잡을 수 있다.

서울 강남의 대형 중개업소인 H공인에는 맞교환을 원하는 물건이 50~60건 쌓여 있다. 지난해 이맘때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중개업소 관계자는 "환금성이 떨어지는 오피스텔.상가 점포.연립주택.다세대주택 등이 대부분"이라며 "최근엔 다주택자 중 양도세 중과를 피하기 위해 비인기지역 소형주택을 내주고 지방 토지나 상가와 바꾸려는 고객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권과 종로 일대에서 성업 중인 200여 곳의 부동산 교환전문업체들에도 물건이 쌓인다. 서울 상암동 SK컨설팅 강상민 부장은 "회사 사이트에 올라오는 매물만 하루 평균 40~50건으로 지난해 말보다 두 배가량 늘었다"고 전했다.

◆ 기획부동산의 '먹잇감' 우려=8.31대책에 따른 세금 중과조치로 연립.단독.다세대 등을 보유한 다주택자들이 규제가 적은 땅으로 바꾸고자 하는 교환거래 수요가 늘면서 소비자들의 피해가 늘고 있다. 교환거래 전문업체로 '변신'한 기획부동산이 다급한 수요자들을 노려 가치없는 땅을 제시하고 주택이나 상가를 챙기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이달 초 가게 임차권(권리금 4000만원. 보증금 3000만원)을 경기도 연천군의 250평짜리 농지와 맞바꿨다. 김씨는 "장사가 안 돼 월세 내기도 벅찰 때 알짜배기 땅을 잡았다고 좋아했더니 기획부동산 직원이 제시한 개발 계획은 없고 땅값도 시세보다 훨씬 비싸 손해가 크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권과 종로 일대에서 활동 중인 기획부동산은 200여 곳. 이 가운데 상당수는 요즘 활동 영역을 땅 팔기에서 교환거래로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3월부터 농지나 임야 등 비도시지역의 토지 분할이 허가제로 강화되는 등 영업 차질이 예상되자 헐값에 사 둔 땅을 서둘러 처리하기 위해서다.

교환전문업체로 둔갑한 기획부동산이 보유한 토지의 대부분은 개발이 어려운 땅이다. 대신 이들이 노리는 물건은 주로 수도권 외곽 나홀로 소형 아파트.연립주택.다세대주택.오피스텔 등이다.

해밀컨설팅 황용천 사장은 "기획부동산이 시세를 속였더라도 계약을 무효처리하거나 사기 혐의로 소송해 승소하기는 쉽지 않다"면서 "직접 발품을 팔아 대상 물건의 가치와 시세를 꼼꼼히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철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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