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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볼셰비키 혁명 이후 암울한 러시아 봤다면 마르크스 경악했을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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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100주년 맞은 러시아혁명 전문가 스티브 스미스 교수 

스티브 스미스 교수는 ‘러시아혁명도 소련의 패망도 역사의 필연은 아니었다’는 입장이다.

스티브 스미스 교수는 ‘러시아혁명도 소련의 패망도 역사의 필연은 아니었다’는 입장이다.

한국전쟁을 흔히 ‘잊혀진 전쟁’이라고 부른다. 러시아혁명은 ‘잊혀진 혁명’ 혹은 ‘잊고 싶은 혁명’이다. 러시아혁명과 그 여파로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혁명의 제단’에서 희생됐다. 올해 1917년 러시아혁명 100주년을 맞아 책이 많이 나왔다. 그중 주목할 만한 저자는 스티브 스미스 옥스퍼드대 교수다.

자본주의 착취 청산 표방했지만 #노동자계급 승리와는 거리 멀어 #빈곤하고 낙후된 나라의 레닌 #마르크스 공산주의 실현에 한계 #소련 붕괴는 혁명의 실패 아닌 #과도한 관료체제 산업화 못한 탓 #사회적 모순 일거에 폭발한 혁명 #오늘날 정치변화 모델로는 부적합

『러시아혁명: 제국의 위기 1890~1928』(영문판).

『러시아혁명: 제국의 위기 1890~1928』(영문판).

그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러시아혁명 전공 역사학자다. 평생 러시아혁명과 중국혁명을 연구했다. 『옥스퍼드 공산당사 핸드북』의 에디터다. 러시아혁명을 맞아 출간된 책들 중에서 그의 『러시아혁명: 제국의 위기 1890~1928(Russia in Revolution: An Empire in Crisis, 1890~1928)』이 백미로 평가받고 있다.(우리말로는 출간되지 않았다.) 스미스 교수의 전작으로는 『러시아혁명: 1917년에서 네프까지』가 있다. 스미스 교수는 ‘다이하드(die hard)’ 사회주의자들도 인정하는 객관적인 사학자다. 러시아혁명의 명과 암, 21세기적 함의를 주제로 스미스 교수와 인터뷰했다.

러시아혁명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러시아혁명을 다루는 책들은 제목에 ‘레닌’이 들어가는 경우가 꽤 된다. 볼셰비키를 비롯한 혁명가들의 혁명에 대한 생각을 중시하는 책들이다. 물론 혁명은 혁명가와 정당이 하는 것이다. 나 또한 레닌 없는 러시아혁명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구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요인도 중요하다. 다른 역사학자들의 저작들과 비교한다면, 나는 러시아혁명의 원인과 그 여파의 ‘보다 깊은 구조적인 힘들(deeper structural forces)’에 주목한다.”
러시아혁명은 왜 일어났는가.
“우선 제정러시아를 살펴야 한다. 제정러시아는 지정학적 경쟁, 국가적 고립과 경제 근대화의 필요성에 따른 사회적·정치적 긴장관계에 휩싸여 있었다.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들을 배경으로 혁명이 일어났는데 볼셰비키 정권도 제정러시아의 문제들을 승계했다.”
러시아혁명을 배태한 가장 중요한 ‘구조적’인 요인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두 가지라고 본다. 첫째, 차르의 제국은 쇠퇴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러시아는 날로 부상하는 독일·영국·미국·프랑스와 경쟁 관계였다. 차르 당국은 국방 능력을 제고하기 위해 강력한 산업 기반을 건설해야 했다. 둘째, 신분제도의 경직성은 노동자 계급, 자유주의적인 중산층 전문가 계급, 자본가 계급(비록 소수기는 하더라도)의 등장을 흡수할 수 없었다. 제정러시아는 정치적·사회적·경제적 권리를 주장하는 신흥 세력의 부상을 잠재적 위협으로 받아들였다. 1905년 혁명은 러시아 사회가 실제로 깊은 위기에 빠졌다는 것을 입증했다. 하지만 정치적·사회적 권리를 요구하는 사회 세력의 요구가 분출한 1905년 혁명에도 불구하고 1917년 혁명이 필연은 아니었다는 게 내 주장이다. 니콜라이 2세는 ‘왕권신수설’ 입장에서 전통적인 통치체제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황제의 바람과 달리 새로운 정당과 자발적 결사체들이 결성되고 상당히 자유로운 언론활동이 전개됐다. 차르 체제에 결정타를 먹인 1917년 혁명의 직접적인 원인은 엘리트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 특히 도시 거주자들을 이반시킨 제1차 세계대전이었다.”
러시아혁명이 세계에 남긴 역사적 유산은 무엇인가.
“혁명의 여파는 엄청났다. 러시아혁명은 스스로를 자본주의의 착취를 뒤엎고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글로벌 혁명으로 자처했다. 러시아식 혁명이 자국에서 재연될 가능성을 두고 미국·독일·이탈리아 등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러시아혁명: 1917년에서 네프까지』(한글판)의 표지.

『러시아혁명: 1917년에서 네프까지』(한글판)의 표지.

하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러시아혁명은 자본주의에 일격을 가하지 못했다. 노동계급의 승리를 표방했지만 노동자들의 처지는 악화됐다. 소련은 ‘노동자들의 국가’가 아니었다. 혁명의 일차적인 목표는 성과가 없었다. 대신 러시아혁명이 남긴 유산은 볼셰비키가 부차적인 문제로 간주한 것들이다. 그중 하나는 식민지들로 하여금 반제국주의 투쟁에 나서게 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여성해방운동이다. 러시아에서 여성의 지위는 서부 유럽보다 앞서 크게 신장했다. 이혼에 대한 제약이 사라졌다. 또한 스탈린 등장 이전에는 소련 내 소수민족들의 ‘민족건설(nation-building)’을 정책적으로 후원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 『공산당선언』과 러시아혁명 사이의 연결고리는 의외로 약한 것인가.
“그렇다. 동의한다. 물론 볼셰비키는 진심으로 자신들이 마르크스를 충실히 따른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사회관, 사회적·경제적 변화의 희구, 도덕적 비전, 착취 철폐, 정의와 같은 것들은 모두 마르크스에게서 나왔다. 하지만 볼셰비키는 마르크스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잔혹한 현실에 직면했다. 마르크스는 빈곤하고 낙후된 나라가 풍요롭고 근대화된 나라가 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전혀 제시하지 않았다. 볼셰비키는 필요한 아이디어를 다른 곳에서 찾을 수밖에 없었다. 승전을 위해 자원을 총동원하는 독일 전시경제 체제는 레닌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 독일식 국가관이나 중앙집권적 경제 통제 같은 것들은 마르크스와 별 상관없다. 마르크스가 러시아혁명의 발발이나 대량 학살 같은 혁명의 전개 양상을 볼 수 있었다면 경악했을 것이다. 러시아혁명 발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전쟁이다. ‘생산력’과 ‘생산관계’ 사이의 모순이 자본주의를 위기로 몰아넣는다고 생각한 마르크스는 전쟁이 혁명의 산파 역할을 한다는 주장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 볼셰비키는 제1차 세계대전이 자본주의의 ‘최종적 위기’라고 판단했다. 완전히 틀린 생각이었다. 마르크스의 이론보다는 내전, 경제적 낙후성, 국제적인 고립, 공산당을 혁명 정당에서 통치 정당으로 전환할 필요성이 볼셰비키 정권의 변화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 1917년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 혁명의 목표와 성격이 극심하게 바뀌었다는 점에서 러시아혁명은 마르크스주의 혁명이 아니었다고 주장할 수 있다. ”
소련·동구권 공산주의가 붕괴한 원인의 뿌리는 러시아혁명 자체에 내재됐는가.
“그렇다고 볼 수 없다. 강한 권위주의 국가와 계획경제로 구성된 스탈린식 혁명 모델은 1930년대에서 제2차 세계대전까지 성공을 거두었다. 1960년대까지도 소련은 글로벌사우스(Global South·제3세계)에서 대안적 근대화 모델로 인식됐다. 소련 모델이 지리멸렬하게 된 것은 산업의 중심이 점차로 중공업에서 정보기술(IT)로 바뀌는 제3차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다. 지나치게 관료화된 소련은 혁신을 구현할 수 없었다. 소련이 붕괴한 근본적인 원인은 경제다. 소련은 새로운 발전단계에 진입한 자본주의와 경쟁할 능력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소련의 붕괴가 필연적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역사에 필연은 없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보다 깊은 구조적인 힘’이 역사에 작용하지만 정치인·정부·사회세력, 심지어는 한 개인의 결정과 선택이 역사적 결과에 중대한 공헌을 한다. 정책 결정, 리더십 같은 정치적 요인을 고려해야 한다. 정치개혁과 경제개혁을 동시에 추진한 고르바초프의 결정은 패착이었다. 중국의 경우에는 자본주의의 여러 요소들을 수용했다.”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이 낙후된 러시아가 아니라 자본주의가 발달한 서부 유럽에서 발발했다면 우리는 오늘 매우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을 것인가.
“전적으로 그렇다. 볼셰비키보다는 그들의 적(敵)인 멘셰비키가 ‘낙후된 나라에서는 사회주의가 불가능하다’는 마르크스의 생각에 훨씬 가까웠다. 말년의 마르크스는 러시아 농민 공동체를 공산주의의 기반으로 삼는 구상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구상은 ‘사회주의가 가능하려면 자본주의가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는 마르크스 자신의 이론과 충돌한다.”
근현대사는 미국혁명·프랑스혁명·러시아혁명 등 정치혁명의 산물이다. 앞으로는 어떤가. 우리 앞에 혁명이 계속 나타날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축적의 논리가 지배하는 자본주의는 지구라는 행성의 미래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정치는 세계의 구조적인 문제들을 해결할 능력이 없다. 불의가 판치는 세상이기 때문에 대규모 시위가 발생할 가능성이 상존한다. 하지만 혁명이라는 ‘모든 종류의 사회적 모순이 폭발하는 가운데 미래를 향한 경쟁적인 비전을 두고 권력 투쟁이 벌어지는 지극히 농축된 시간’의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우리 독자들에게 강조할 게 있다면.
“올해 나온 내 책은 혁명이라는 관념을 의심하는 독자층을 염두에 두고 썼다. 혁명이라는 엄청나게 복잡하고 격동적인 사건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러시아혁명을 왜곡하는 좌파나 우파의 ‘단순화된(simplistic)’ 해석을 모두 거부해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러시아혁명의 어둡고 끔찍한 면을 드러냈다. 러시아혁명은 결코 오늘의 세계에서 정치적 변화를 위한 모델이 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러시아혁명에는 억압과 착취로부터 세상을 해방시키려는 선의의 욕구도 있었다고 믿는다. 러시아혁명은 다른 혁명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가능성을 배태하고 있었지만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왜’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됐는지를 우리는 이해해야 한다.”

김환영 기자 kim.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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