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불교를 찾아서] 文革 탓에 고승과 젊은 승려 脈 끊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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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지난 26일 오후 티베트 수도 라싸의 복판에 있는 조캉 사원에는 수많은 불자의 참배가 이어졌다.

사찰 정문 앞에선 순례객 20여명이 온몸을 땅에 조아리는 오체투지(五體投地)를 하며 불심을 다졌고, 사찰 안팎은 마니차(불경이 담겨 있는 기도 바퀴)를 빙빙 돌리며 소원을 비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들은 티베트 불교의 진언(眞言)인 '옴마니반메훔'(연꽃 속의 보석이여)을 끝없이 외고 있었고 , 또 그들이 여러 불상에 올리는 버터 기름 연기로 절 내부는 옅은 안개가 낀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티베트 주민의 98%가 불교 신자인 데도 참배객 대부분이 40대 이상의 장년층으로, 젊은 신자를 찾기가 어려웠다.

최근 서구사회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대안적 가치관으로까지 떠오른 '신비의 땅' 티베트에서 불교는 예의 활력을 잃어버린 것일까. 사실 티베트는 자녀가 부자가 되는 것보다 승려가 되는 걸 축복했던 곳 아니던가.

조캉 사원 주지로 있는 니마 치렌(37) 스님은 현실적 고충을 토로했다. 외국 관광객 등 절을 찾는 사람은 계속 늘고 있지만 정작 젊은 불자는 줄고 있다는 것.

그는 "요즘 젊은이 사이엔 '놀자주의'가 팽배해 내세나 윤회에 관심이 없다"면서 "중국 문화혁명 당시 티베트 불교의 명맥이 끊긴 탓에 고승과 젊은 승려를 이어주는 징검다리가 실종된 것도 큰 문제"라고 덧붙였다.

티베트 불교의 고민은 곳곳에서 느껴졌다. 1959년 중국에 함락된 이후 줄곧 중앙 정부에 복속돼온 티베트 불교의 한계랄까. 중국 당국은 문화혁명 당시 티베트 사찰 6천여개를 파괴했으며, 80년대 이후엔 유화 정책의 일환으로 일부 고찰(古札)에 대한 보수 작업을 하고 있다. 승려의 숫자.자격, 법회 규모 등은 제한하면서도 겉으론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는 이중정책을 펴고 있다.

일례로 라싸 서북쪽의 험준한 돌산에 웅장하게 들어선 드레풍 사원 주변에선 현재 복구의 망치질과 대패 소리가 쉬지 않고 있다. 라싸에서 서남쪽으로 2백80㎞로 떨어진 티베트 제 2의 도시 시가체에 있는 타쉬룽포 사원도 마찬가지다.

달라이 라마(현재 14대)와 함께 티베트 불교를 이끄는 판첸 라마(현재 11대)가 머물고 있는 이곳 건물은 대부분 80년대 이후 복구된 것이다.

시가체에서 북동쪽으로 90㎞ 떨어진 고도(古都) 갼체에 있는 쿤붐 사원도 산악 지역에 커다란 요새처럼 자리잡았던 예전 모습을 잃어버리고, 지금은 십만불탑(팡코초르텐)과 주요 법당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이곳 역시 사찰 입구 공사가 진행 중이다. 그간 파괴가 안되고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곳은 17세기 제 5대 달라이 라마가 건설하고, 현재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라싸의 포탈라궁 정도다.

그럼에도 티베트인의 불심은 여전히 강해 보였다. 지난 24일 오전 라싸의 세라 사원을 찾았을 때 수백명의 인파가 이곳 주지 스님의 축복을 받으려고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또 지금도 '세계의 지붕' 티베트 전역에는 탈초(지붕 위에 걸어놓은 오색의 천조각).룽타(길이나 산 등에 엮어놓은 천조각).카타(불상에 올리는 목도리 모양의 비단)가 출렁거리고 있다.

티베트 불교를 알려면 밀교의 전통을 이해해야 한다. 대승불교가 강화된 형태인 밀교는 모든 사람은 수행을 통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즉신성불(卽身成弗)을 추구한다. 달라이 라마나 판첸 라마가 각각 관세음보살과 아미타불의 현신으로 인정받는 것도 이런 전통에서다.

그래서 티베트 각 사찰에선 7세기 티베트를 통일하고 불교를 들여온 송첸감포왕, 14세기 부패한 티베트 불교를 정비한 총카파, 그리고 달라이 라마 불상을 부처(석가모니) 불상보다 더 비중 있게 받들고 있다.

한국에서 생활불교.재가불교를 표방하며 밀교의 전통을 잇고 있는 진각종의 회성 정사는 "갼체의 쿤붐 사원에서 밀교 경전 '금강정경'에 나오는 37존 불상의 완벽한 모습을 거의 처음 확인했다"며 "향후 한국과 중국, 티베트 밀교를 연결하는 보다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티베트 불교의 현주소는 한마디로 '공사 중'이다. 전통적 신앙과 정치적 장벽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현대화.개발의 바람이 불고 있는 티베트, 자연에 순응하며 사람으로 태어난 것 자체를 축복으로 생각했던 그곳이 앞으로 과연 어떤 모습을 띠게 될지…. 현재로선 순도 1백%의 코발트 빛을 내리쬐는 티베트의 하늘처럼 희망적이지만은 않은 것 같다.

라싸(티베트)=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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