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의 『독일에서의 사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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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장정일의 『독일에서의 사랑』(시운동 제10집)은 갇힌 삶을 조직화하고 있는 사회가 인간의 자유로운 사고를 얼마나 억압하고 길들이고 있는지를 비극적으로 보여준다.
시적화자인 <나> 는 <독일에서의 사탕>이란 제목으로 글을 쓰고 싶어한다. <그 제목>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마음에 든>제목으로 글을 쓰고 싶다는 것은 시인의 자연스런 욕망이고 그것은 우리들 인간욕망에 다름아니다.

<나>는 한껏 상상을 펼쳐 드라마틱하게 시적 내용을 전개해 나간다. 그 전개방법은 장정일의 대부분의 시가 그렇듯 극적이다 (이 드라마틱한 전개가 그의 시적 특성의 하나인데, 그는 그러한 세계를 시로 감싼다. 때문에 그 드라마가 자의적이거나 도식적일 때 그의 작품은 시적 효과가 반감된다. 물론 다른 측면에서 보면 자의적·도식적 흔적도 우리들 갇힌 삶의 상처일 수 있다).

<독일의 가로수는 사철나무다 겨울에도 낙엽 질 줄 모르는 독일의 연인들은 걸을 때 사철나무 아래를 걷고 연인들이 미소지을 그 입술이 푸르게 물든다>는 식으로 시는 풀려나간다. 그러나 이는 모두 사실적 묘사가 아니라 끝없는 상상의 산물이다. 상상속의 독일의 연인들 얘기는 잘 풀려주지만, 이상하게도 한국의 연인들 얘기는 엉뚱한 쪽으로 흘러간다.
즉, <한국의 가로수는 은행이다 한국의 연인들은 가을이 되면 그 아래를 걷는다 노랗게 물들어 은행나무아래를 거니는 연인들>까지는 상상 속의<독일에서의 사랑>처럼 부드럽게이어지지만, 결국은 <한국의 연인들은 가을이면 옐로 카드를 받는다 한국의 가을에 납총탄을>는 비시적 상상으로 굴절한다. 다른 나라 (독일) 의 연인들은 상상 속에서 <그들은 자신의 그림자를 달에게 벗어주고 얼른 지상의 별이 되어 타오른다>고 쓸 수 있었지만, 한국의 연인들은 <옐로카드>를 받고, <군대>에 가고, <붉은 말 (언)><푸른 말(언)>에 짓눌린<까까머리 일등병>이 그만<탕->해 버리는 그러한 상상으로 이어진다.

<한국의 연인들은->하면시인의 상상력이 언제나 비극적이고 비시적으로 귀착되는 이 현상이 바로 갇힌 삶이 우리들 영혼을 병들게 하고 있다는 참담한 증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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