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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법정 최고금리 24%로 … 최대 162만 명 ‘대출절벽’ 몰릴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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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내년 2월 8일부터 법정 최고금리가 24%로 인하된다. 지난해 3월 27.9%로 내린 지 2년 만이다. 정부는 이러한 내용의 대부업법과 이자제한법 시행령 개정령안이 31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내년 2월 8일부터 개정안 시행 #2002년 연 66%서 꾸준히 내려가 #대부업계 “금리 올라 이중고” 반발 #신용 8등급 이하 제도권 이용 막혀 #불법 사금융 피해 막을 대책 필요 #“2금융권, 저신용자 대출 늘려야”

최고금리 인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사항이다. 대선 공약에선 최고금리를 20%로 내리겠다고 밝혔지만 정부는 일단 24%로 내린 뒤 단계적 추가 인하를 검토키로 했다. 금융위원회는 이날 보도자료에서 최고금리 인하에 대해 ‘고금리 대출 이용자의 부담 경과를 위하여’라고 설명했다.

대부업법의 법정 최고금리는 대부업체뿐 아니라 전 금융권에 공통 적용된다. 따라서 저축은행과 여신전문금융회사(카드, 캐피탈)의 신용대출 금리나 연체금리도 동반 하락하게 된다.

인하 된 법정 금리표

인하 된 법정 금리표

단, 소급 적용은 없다. 내년 2월 8일부터 신규로 체결되거나 갱신·연장되는 대출 계약부터 인하된 최고금리를 적용한다.

따라서 지금부터 내년 2월 7일까지 고금리 신용대출을 이용하는 고객이라면 가급적 만기를 짧게 하는 게 유리하다. 이미 27.9%의 금리로 장기(3~5년) 계약을 맺은 경우라면 기존 계약을 상환하고 신규 계약을 체결하는 것(대환대출)이 유리할 수 있다.

2002년 대부업법 제정 당시 연 66%였던 최고금리는 꾸준히 인하됐다. 2007년에 49%로 내린 뒤로는 짧게는 9개월, 길게는 3년에 한 번 3~7%포인트씩 내렸다. 그때마다 대부업체들은 크게 반발했지만 정부로선 내릴 명분이 충분했다. 시장금리가 꾸준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2007년 말 5%였던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지금은 1.25%로 내려갔다. 비용(조달금리)이 줄었으니 가격(대출금리)도 깎아야 한다는 논리였다.

이번엔 좀 다르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상 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시장금리가 빠르게 상승하는 추세다. 이재선 대부금융협회 사무국장은 “최고금리는 내려가고 조달금리는 올라가면서 업계의 이중고가 예상된다”며 “대부업체의 대출 공급량이 감소하는 건 기정사실이고 그 폭이 얼마나 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최고금리가 내려갔기 때문에 대부업체 등에서는 저신용자에 대한 대출을 줄일 것이라는 의미다. 최고금리를 27.9%에서 24%로 내리면 실제 대부업을 포함한 제도권 금융시장에서 탈락하는 대출 인원은 얼마나 될까. 그 추정치는 다양하다. 대부금융협회는 기존에 대부업 이용자 중 34만8000명이 대출을 못 받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상위 15개 대부업체를 대상으로 한 ‘최고금리 인상 시 대출 축소 규모’에 대한 설문조사가 근거다. 지난해 전체 대부업체 신규대출자(124만7000명) 중 4명 중 1명꼴로 대출이 거절되는 셈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8~10등급의 저신용자만 놓고 봤을 때 전체 금융권에서 최소 25만8000명이 대출시장에서 배제될 것으로 분석했다. 사업을 중단·축소하는 대부업체가 나타나면 이 규모는 더 늘어나게 된다.

대출 탈락자가 무려 162만명에 달할 거라는 전망치도 있다. 금융위원회 시뮬레이션 결과다. 금융위가 지난 7월 추산한 자료에 따르면 최고금리를 24%로 내리면 대출 타락 인원은 최소 38만8000명, 최대 162만 명으로 추정됐다. 대부업, 저축은행, 카드, 캐피탈 업계를 모두 합쳐 분석한 결과다. 금융위가 공개하지 않았던 이 내부자료는 지난 30일 국회 정무위 국감에서 김선동 자유한국당 의원에 의해 공개됐다.

162만 명은 지난해 한 해 대부업 신규대출자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대부업, 저축은행, 카드, 캐피탈사의 저신용(8~10등급) 대출자 수 합계(181만7000명)와 거의 맞먹는 규모다. 사실상 8등급 이하 저신용자는 제도권 대출 시장에서 ‘아웃’이란 뜻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162만 명이란 추정치에 대해 “최소와 최대 추정치의 차이가 너무 커서 자료를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면서도 정확한 탈락 예상 인원을 밝히지 않았다.

대부업체로부터 대출을 못 받는 저신용자는 사채와 같은 불법 사금융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최고금리 인하의 부작용으로 불법 사금융이 판치는 일을 막기 위해 범부처 차원의 보완대책을 다음 달 중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보완책은 크게 두 가지다. 강도 높은 일제 단속을 통해 불법 사금융을 엄단하고, 제도권 대출에서 탈락하는 저신용자엔 정책서민금융을 더 확충하겠다는 방안이다. 현재 은행이나 중금리 대출이 어려운 저신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정책서민금융 상품으로는 햇살론이 있다. 다만 소득 제한(연소득 3500만원 이하)이 있고, 무직자나 연체자는 아예 대상이 아니어서 대부업 대출을 대체하기엔 한계가 있다.

최고금리 인하에 찬성하는 쪽도, 반대하는 쪽도 모두 일본을 예로 든다. 일본은 2010년 대부업 상한 금리를 연 29.2%에서 연 20%로 9.2%포인트 인하했다. 3년 6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쳤지만 인하된 최고금리를 무제한으로 소급 적용토록해서 충격이 컸다. 일본의 대형 대부업체가 줄줄이 문을 닫았고 대부업계는 고사했다. 저신용자는 불법 사금융으로 밀려났다.

이에 일본 정부는 4개 금융지주사에 대형 대부업체를 하나씩 떠맡겼다. 최근 일본에선 대형은행이 ‘카드론’이란 이름으로 약 15%의 금리를 받고 저신용자 대출을 해준다. 은행계 대부업체는 7~8%의 보증수수료율을 챙기면서 이러한 카드론의 보증업체 역할을 한다. 정희수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한국도 최고 금리 인하로 대출 사각지대가 발생하겠지만 일본과는 달리 제2금융권(저축은행, 캐피탈)이 발달했다는 건 장점”이라며 “제2금융권이 저신용 계층 대출을 늘리고 햇살론 재원을 확충해 지원을 강화하는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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