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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전 대통령 "백인우월주의는 신성 모독" 트럼프 질책

중앙일보

입력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AP=Photo/Seth Wenig)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AP=Photo/Seth Wenig)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트럼피즘'을 강력히 질책했다. 뉴욕 조지 부시연구소가 주최한 안보 관련 토론회 연설에서다. 워싱턴포스트(WP)는 예고 없이 나온 이 비판은 웅변에 가까웠다고 분석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편협함과 백인우월주의는 어떤 형태이든 미국적 신념에 반하는 신성모독"이라면서 트럼프를 겨냥했다. 미국 전직 대통령이 트럼프에 대해 이렇게 장시간 비판한 건 처음이다.

트럼프 이름은 언급하지 않은 채 #보호무역주의, 인종차별 등 비판

부시는 연설 도중 "위대한 민주주의의는 새롭고 심각한 위협에 직면해 있고, 그들 고유의 소명과 권한에 대한 확신을 잃어가고 있는 듯 보인다"면서 슬슬 시동을 걸었다. 민주주의의 역사를 거론한 뒤 "자유무역은 미국을 세계 경제의 권력을 만들었다"며 트럼프의 자유무역협정 폐기에 대한 비판이 시작됐다. 그는 "70년 이상 미국 양당이 내놓은 대통령들은 미국의 안전과 번영이 자유의 계승에 있다고 믿었다"면서 그것이 "미국의 이상주의 DNA"라고 말했다. 또한 "우리가 우리의 이상을 보지 못한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실패한 건 아니다. 민주주의를 보존하고 보호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가 단순히 트럼프만 비판한 건 아니다. 유럽 연합의 위기, 서구권 국가에서 민족민주주의의 부활 등을 함께 거론했다. 하지만 미국 역시 이런 트렌드와 무관하지 않다면서 "편협함이 대담해졌고, 우리 정치는 음모 이론과 노골적인 날조에 더 취약해졌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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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우리는 애국심(nationalism)이 배척적인 보호주의(nativism)로 왜곡되는 걸 봤다. 이민이 미국에 불어넣은 역동성을 잊어버리고, 자유 시장과 국제 무역의 가치에 대한 확신이 엷어졌다. 보호주의의 결과로 갈등과 불안정 및 빈곤이 따른다는 걸 잊어버렸다"면서 트럼프를 본격적으로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 Photo/Evan Vucci)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 Photo/Evan Vucci)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그는 보호주의에서 탈피해야 한다면서도 "사이버 공격, 그릇된 정보 및 재정적 영향을 포함한 외국의 침략은 경시되거나 용인돼서는 안 된다"면서 "우리의 선거 기반 시설을 보호하고 우리의 전자 시스템을 전복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러시아가 트럼프의 당선을 돕기 위해 개입한 정황이 드러난 점을 꼬집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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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인종과 지역, 민족성과 관계 없이 모든 사람이 완전히 동등한 미국인"이라면서 "편협함과 백인우월주의는 어떤 형태이든 미국적 신념에 반하는 신성모독"이라고 말했다. 백인우월주의자들의 폭력 집회로 충격을 준 샬러츠빌 사태와 이를 방조하거나 부추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비판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부시는 "우리의 젊은이들은 긍정적인 롤 모델이 필요하다"면서 시민성에 대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지금은 "약자를 괴롭히고 편견을 조장하는 국가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잔학성과 편협성을 용인하며, 아동의 도덕 교육에 관해 적당히 타협한다"면서다.

부시는 "지금 당장, 우리의 가장 큰 국가적 문제는 신뢰 부족"이지만 "미국의 정신은 '우리가 관리해야 한다'거나 '최선을 다 할 것'이라고 말하는 대신 '극복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바로 신과 서로의 도움으로 우리가 할 일"이라면서 연설을 마무리했다.

WP의 보수적 칼럼니스트 제니퍼 루빈은 "트럼프를 지지한 공화당원은 트럼프의 우둔함을 못 본 체 하거나, 그의 가증스런 언어와 행동에 대해 변명하는 말을 들으며 수치심을 느껴야 한다"면서 "부시의 연설이야말로 대통령답게 들린다"고 썼다.
이경희 기자 dung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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