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샅바 하나 차이 … 씨름·합사가이 통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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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한국 씨름 시범단이 이달 초 러시아 야쿠티아 공화국 수도 야쿠츠크에서 열린 국제레슬링자유형 그랑프리대회에서 씨름 기술을 선보였다. [김원 기자]

한국 씨름 시범단이 이달 초 러시아 야쿠티아 공화국 수도 야쿠츠크에서 열린 국제레슬링자유형 그랑프리대회에서 씨름 기술을 선보였다. [김원 기자]

한국 선수들이 ‘씨름의 꽃’으로 불리는 뒤집기 기술을 선보이자 관중석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민속씨름 세계화 메치기 성공 #러시아 야쿠티아공화국 ‘합사가이’ #기술·원리 비슷해 ‘샅바 없는 씨름’ #우리 선수단 시범에 열띤 관심 보여 #내달 천하장사대회엔 거꾸로 초청

지난 1일 국제 레슬링 자유형 그랑프리대회가 열린 러시아 야쿠티아 공화국 수도 야쿠츠크의 트라이엄프 경기장. 12명의 한국 청년들이 허리에 샅바를 두르고 레슬링 매트 위에 섰다. 주명찬 감독(울산대)의 구령에 맞춰 선수들의 씨름 시범이 20여분간 진행됐다. 뒤집기·오금당기기·들배지기 등 화려한 씨름 기술이 이어졌다. 관중석에서 씨름 시범을 지켜본 러시아인 니콜린 안톤(33)은 “빠르고 화려한 씨름 기술이 매력적”이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한국의 전통 스포츠인 민속씨름이 세계화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대한씨름협회는 지난달 27일부터 일주일간 러시아의 야쿠티아 공화국에 씨름 시범단 20명을 파견했다. 대학생 선수들과 현역 시절 ‘뒤집기의 달인’으로 불렸던 이승삼 씨름협회 심판부장이 시범단 부단장으로 함께 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이번 씨름 국제 교류 사업을 지원했다.

야쿠티아 관중이 씨름을 관람하고 있다. [김원 기자]

야쿠티아 관중이 씨름을 관람하고 있다. [김원 기자]

씨름은 올해 문화재청 국가무형문화재(제131호)로 지정됐다. 유네스코(UNESCO) 인류 무형유산 등재도 추진 중이다. 정인길 씨름발전기획단장은 “정부에서 한류 콘텐트로서 씨름의 발전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씨름협회는 앞으로도 씨름의 세계화를 위해 다양한 국제 교류를 시도할 계획이다. 19일에는 미국 뉴욕에도 씨름 시범단을 파견했다.

씨름 시범단이 찾은 야쿠티아 공화국은 러시아 내 21개 자치공화국 중 하나다. 러시아 전체 영토의 17.3%를 차지할 정도로 넓다. 반면 인구는 100만명에 불과하다. 야쿠티아에는 130여개 민족이 어울려 살고 있다. 한국인과 겉모습이 비슷한 투르크계 야쿠티아인이 50% 정도 차지한다. 고려인은 1500여명이 산다.

야쿠티아 합사가이 선수와 한국 씨름 선수가 종목을 바꿔 대결했다. 합사가이는 샅바가 없다. [김원 기자]

야쿠티아 합사가이 선수와 한국 씨름 선수가 종목을 바꿔 대결했다. 합사가이는 샅바가 없다. [김원 기자]

야쿠티아에는 합사가이(Khapsagai)라는 전통 격투 종목이 있다. 남자들이 들판에 모여 힘겨루기를 한 것이 스포츠로 발전했다. 야쿠티아에선 1년에 20개가 넘는 합사가이 대회가 열린다. 합사가이 경기가 열리면 거의 매번 만원 관중이 들어찬다. TV 중계 시청률도 높다. 우승 상금으로 중형차 한 대를 준다. 시범단의 통역을 맡은 카리토노바 군네예는 “야쿠티아 남자들 중에서 합사가이를 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 했다.

파벨 피니긴 야쿠티아 공화국 국회의원이 이번 씨름 시범단의 방문에 다리를 놨다. 피니긴 의원은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레슬링 자유형 68㎏급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다. 피니긴 의원은 올 초 한국을 방문해 씨름의 매력에 푹 빠졌다. 그는 “씨름과 합사가이의 교류를 통해 한국과 야쿠티아, 양국의 관계도 돈독해지길 바란다”고 했다. 씨름 시범단은 지난달 28일부터 합사가이 선수들과 함께 훈련했다. 종목을 바꿔가며 대결을 펼치기도 했다. 지난 1일에는 국제 레슬링 자유형 그랑프리대회 도중 씨름 시범을 펼쳤다.

야쿠티아 합사가이 선수와 한국 씨름 선수가 종목을 바꿔 대결했다. 합사가이는 샅바가 없다. [김원 기자]

야쿠티아 합사가이 선수와 한국 씨름 선수가 종목을 바꿔 대결했다. 합사가이는 샅바가 없다. [김원 기자]

합사가이는 기술을 통해 중심을 무너뜨린다는 점에서 씨름과 비슷하다. 레슬링 자유형과도 흡사하다. 공식 경기도 레슬링 매트에서 한다. 합사가이 선수들은 레슬링처럼 상대의 균형을 무너뜨리기 위해 손으로 머리를 밀고, 허리를 향해 태클을 건다. 야쿠티아에서는 합사가이와 레슬링을 병행하는 선수들이 많다. 씨름을 해본 파벨 보리소프는 “씨름과 합사가이는 골반 근육을 잘 사용해야 이길 수 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기회가 된다면 씨름을 배워보고 싶다. 6개월 정도만 하면 한국 선수도 이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승삼 심판부장은 “ 씨름에서 샅바만 빼면 합사가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라고 했다.

씨름협회는 다음달 20~26일 전남 나주에서 열리는 천하장사 씨름대축제에 야쿠티아의 합사가이 선수단 11명을 초청한다. 씨름협회는 지난 2009년부터 천하장사대회에 세계의 유사씨름 선수단을 초청해 시범경기를 개최하고 있다. 몽고의 부흐, 스페인의 루차 카나리아 등에 이어 야쿠티아 합사가이가 한국 팬들에게 첫 선을 보일 예정이다.

야쿠티아 공화국은 …

야쿠티아 공화국

야쿠티아 공화국

러시아 극동연방지구 북부에 있다. 인구 100만 명 중 한국인과 겉모습이 비슷한 투르크계가 절반을 차지한다. 전통 격투 종목인 합사가이는 남자들이 들판에 모여 힘겨루기를 한 것에서 발전했다. 사진은 국제레슬링자유형 그랑프리대회 개막식에서 시연단이 야쿠티아 전통무술을 선보이는 모습.

야쿠티아(러시아)=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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