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쟁 책임 알린 '양심' 아라이 신이치 교수 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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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타계한 '일본의 양심' 아라이 신이치 교수. [중앙포토]

지난 11일 타계한 '일본의 양심' 아라이 신이치 교수. [중앙포토]

 ‘일본의 양심’으로 불리며 일본의 전쟁책임 규명 등을 위해 앞장 섰던 아라이 신이치(荒井信一) 이바라키(茨城)대학 명예교수가 지난 11일 별세했다. 91세. 고인은 지난 5월 담낭암을 진단 받은 뒤 투병해 왔다고 그가 공동대표를 역임했던 전국공습피해자연락협의회 측이 19일 밝혔다.

"전쟁과 식민지 지배 반성에서 시작하는 화해해야" #일본전쟁책임자료센터 설립해 과거사 규명에 노력 #일본 국회서 증언으로 조선왕실의궤 반환에 기여 #

역사학자인 아라이 교수는 "같은 과거를 반복하는 어리석음을 피하려면 전쟁과 식민지 지배 반성에서 시작하는 화해 밖에 없다"는 소신을 가졌다.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1993년 ‘일본전쟁책임자료센터’ 설립하고 동시에 대표를 맡았다. 제국주의와 2차세계대전, 전쟁책임 등에 대한 연구와 통찰을 바탕으로 일본의 2차대전 가해책임을 알리는 데 목소리를 높였다.

한일 간에 아직 청산되지 않은 전후보상 문제와 관련 "강제동원, 위안부 문제는 1982년부터 나도 해결을 위해 노력해 왔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는 나도 당사자이며 전쟁책임센터를 만든 것도 그 때문이었다"고 밝히기도 했다(2015년 3월 연합뉴스 인터뷰).

모토오카 쇼지(本岡昭次) 전 참의원 부의장과 함께 '위안부 문제의 입법 해결을 요구하는 모임' 공동대표를 맡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한국과 일본 정부의 진정한 노력을 촉구하기도 했다. 지난해 5월 자신이 공동대표로 있는 '위안부 문제의 입법해결을 요구하는 모임'의 입장문을 통해 한일 위안부 합의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도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도 직접 피해자와 면담, 그들의 목소리에 겸허히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한국·조선문화재반환문제연락회의 대표를 맡는 등 일본 내 대표적인 한국문화재반환 전문가로도 활동했다. 2011년 4월 그가 일본 국회에서 "조선왕실의궤가 궁내청 서고에 잠들어 있기보다 조선 왕조의 문화적 상징으로 그 고향에 가야 한다"라고 한 발언은 파장이 컸다. 2010년 8월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가 일본 궁내청 소장 조선왕실의궤를 한국에 반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음에도 일본 국회가 이에 동의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를 계기로 일본 국회의 반환 승인을 이끌어내는 등 조선왕실의궤의 국내 반환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일제 식민지배 때 일본으로 강제 반출된 조선왕실의궤 등 도서 1200책이 2011년 12월 6일 반환됐다. 인천공항 화물터미널에서 열린 환영 의전 행사가 열리고 있다. [중앙포토 ]

일제 식민지배 때 일본으로 강제 반출된 조선왕실의궤 등 도서 1200책이 2011년 12월 6일 반환됐다. 인천공항 화물터미널에서 열린 환영 의전 행사가 열리고 있다. [중앙포토 ]

고인은 1926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45년 학도병으로 종군하고 49년 도쿄대 문학부 서양사학과를 졸업했다. 고교 교사 등을 거쳐 이바라키 대학 및 스루가다이(駿河台)대학 교수 등을 역임하고 2001년 퇴직했다. 아베 내각 출범 이후 일본을 “쇄국정책으로 가는 것 같다. 나치의 분위기를 방불케 한다”고 말하는 등 최근까지도 모국에 대한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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