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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묘 갔더니 사라진 묘 6기…'무연고 묘지' 허위 신고로 태양광시설 설치돼

중앙일보

입력

추석을 맞아 성묘를 하기 위해 선산을 찾은 한 시민이 겪은 황당한 사건이 알려져 공분이 일고 있다. 조상의 묘가 통째로 사라진 것도 모자라 선산의 묫자리에 버젓이 태양광 시설이 설치되어있던 것이다. 업체의 비상식적 업무처리와 행정당국의 안일한 허가 과정이 빚은 사건이다.

묘 20기를 이장하고 태양광시설을 설치한 경북 김천시 남면 운곡리의 야산. 성묘하러 왔던 후손이 조상 묘가 사라진 것을 뒤늦게 알고 울분을 터뜨렸다. [제보자 제공=연합뉴스]

묘 20기를 이장하고 태양광시설을 설치한 경북 김천시 남면 운곡리의 야산. 성묘하러 왔던 후손이 조상 묘가 사라진 것을 뒤늦게 알고 울분을 터뜨렸다. [제보자 제공=연합뉴스]

백성준(58) 씨는 이번달 초, 성묘를 위해 경북 김천시의 선산을 찾았다가 증조부모의 묘 등 조상 묘 6기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태양광 시설이 설치된 것을 확인했다. 백씨는 연휴를 마치고 김천시 당국에 민원을 제기했고, 그 결과 한 태양광 시설 업자가 시설 설치를 위해 선산의 묘 20기를 이장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장업자는 멋대로 이장한 묘를 인근도 아닌 충남 금산군의 한 사설 납골당으로 옮긴 것으로 나타났다.

행정당국, 묘 표지석 뺀 업체측 사진만 보고 이장 허용

묘의 이장은 김천시의 허용으로 가능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장업자가 백씨 조상들의 묘를 무연고 묘로 허위 신고했던 것이다. 이장업자는 백씨 증조부 묘 앞의 표지석을 뺀 사진을 김천시 남면사무소에 신고했고, 김천시는 현장 확인도 없이 이장을 허용했다. 이에 이장업자는 지난해 12월, 선산의 묘 20기를 모두 이장시킬 수 있었다.

김천시 측은 지난해 9월부터 3개월간 모 중앙일간지와 경북도 홈페이지, 김천시 홈페이지 등을 통한 개장 공고를 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해당 일간지를 읽지 않거나 지자체 홈페이지에 접속하지 않는 이상 이를 알 수 없어 논란이 불가피하다. 실제, 3개월간 선산에 있던 20기 가운데 '연고가 있다'는 연락이 되돌아온 것은 6기에 불과했고, 나머지 14기는 연락이 없는 상태다.

김천시 관계자는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이장할 경우 공무원이 현장을 확인하지 않는다"며 "다만 이번에 이장 신청을 받을 때 특약사항에 '분묘 소유자의 이의제기 있을 때 묘 이장업자가 민형사상 모든 책임을 진다'는 내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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