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또 10일 한반도 위기설 … 끝장 제재로 북한 압박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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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10일 북한 노동당 창건일을 앞두고 한반도 위기가 한층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북한은 김일성·김정일의 생일인 4월 ‘태양절’과 2월 ‘광명성절’, 또는 10월 10일 노동당 창건일에 맞춰 도발한 적이 많았다. 하루 전인 9일은 미국 국경일인 ‘콜롬버스데이’다. 북한은 독립기념일·콜롬버스데이 등 국경일을 골라 핵무기와 미사일을 실험하곤 했었다. 선전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10일 노동당 창건일에 도발 가능성 #미 트럼프는 군사옵션 가능성 흘려 #코리아패싱 피하려면 해법 마련해야

지난 2일부터 닷새간 북한을 다녀온 러시아 하원 의원들도 “북한이 더 강력한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시험을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여러 정황상 북한의 무모한 불장난이 또다시 저질러질 가능성이 여느 때보다 크다는 얘기다. 청와대가 10일 전후를 가장 위험한 때로 보고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비상 가동한 것도 이 같은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북한이 정말로 엉뚱한 짓을 저지르면 군사적 위험도 손쓸 수 없이 커질 것이란 점이다. 북·미 간 유례 없는 말 폭탄은 수그러들기는커녕 갈수록 험악해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 7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전임) 대통령들과 그 정부는 25년간 북한과 대화해 왔지만 소용없었다”며 “그러나 단 한 가지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단 한 가지’가 뭔지 트럼프 대통령은 밝히지 않았지만, 군사 옵션을 의미한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트럼프는 지난 5일 군 수뇌부를 배석시킨 채 “지금은 폭풍 전 고요”라고 말했다. 미국 대통령의 입에서 북한 공격을 뜻하는 표현이 갈수록 빈번하게 나오고, 그 강도도 세지는 건 예사롭지 않다.

여기에 북한은 주춤하기는커녕 타협 가능성까지 걷어찼다. 유엔 주재 북한 대표는 지난 6일 유엔총회에서 “핵 무력 강화의 길에서 단 한 치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 다음날 북한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핵과 경제 병진노선을 다시 채택한 것도 핵무장 완성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한 것이다. 이에 맞서 이달 중순 항모 로널드 레이건함이 한반도 근해로 오고 핵추진 잠수함 미시간호와 스텔스 전략폭격기 B-2 등의 전략자산도 순환배치될 예정이다. 한반도 긴장이 고조될 수밖에 없는 수순이다.

이 땅에서 또다시 전쟁이 벌어져선 안 된다. 미 안보 관계자가 시사한 “남한의 피해가 없는 군사적 옵션”이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현실이다. 미국이 군사적 옵션을 거둬들이는 경우는 오직 한 가지다. 다른 방법으로도 북핵 문제를 풀 수 있다는 믿음이 들 때다. 지금으로서는 전 세계가 물샐틈없이 대북 제재를 밀어붙이는 게 가장 현실적이고도 유일한 해법이다.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과 중국의 미온적인 대북 제재를 못미더워하는 흐름도 있다. 하지만 경제 제재가 빛을 보려면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다급해진 북한은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자력 경생’을 다시 강조했고, 일부에서 대북 제재가 서서히 효과를 거두는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북한 전문매체 38노스에 따르면 중국이 대북 원유 파이프를 잠글지 모른다는 뉴스가 나오자 평양의 휘발유·경유 값이 세 곱절 뛰었다고 한다. 대북 제재가 본격화되면 달러 대비 북한 원화 가치도 뚝 떨어져 북한은 다시 고난의 행군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얼마전부터 북한이 개성공단 내 19개의 의류공장을 몰래 돌리기 시작한 것은 명백한 재산권 침해다. 하지만 뒤집어 보면 그만큼 북한이 심각한 경화(硬貨) 부족에 시달린다는 의미다. 앞으로 북한이 스스로 “말로 하자”며 협상장에 나오도록 대북 제재의 강도를 높여야 북핵은 해결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추가 도발이 임박하고, 미국은 군사옵션을 거두지 않는 위기 국면이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대비해야 한다. 거듭 강조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한·미 공조를 통한 북핵 억지력 강화다. 여기에 ‘코리아 패싱’을 차단하는 일도 잊지 말아야 한다. 한·미 간에 허물없이 소통해야 하고, 북·미 간의 물밑 대화 조짐에도 눈길을 떼선 안 된다. 북·미 간에 ‘평화협정’이란 이름 아래 북핵을 묵인하고 대한민국이 북핵의 인질로 방치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결단코 막아내야 할 것이다. 미국과 북한의 미치광이 전략에 우리마저 합리적인 노선을 포기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