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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오판 막으며 비핵화 압박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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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1호 30면

Outlook

한반도가 일촉즉발의 안보위기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지난 9월 19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미국과 동맹국들을 도발한다면 북한을 파괴할 것이라는 강경 입장을 피력했다. 이에 대해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은 “사상 최고의 초강경 대응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응수했다. 미국 괌 기지에서 발진한 B-1B 폭격기가 북한 영공에 대한 근접비행을 하자, 이용호 북한 외무상은 미국에 의한 선전포고라고 강변했다.

우발적 충돌 가능성 커진 상황 #정보·군사·경제·외교 총동원 #한·미 안보협의회 잘 활용하고 #나토처럼 핵공유 협정 검토를 #남북대화도 시기 봐 추진해야

국제정치학자들은 국가지도자들이 호전적인 성향을 보이거나, 개별 국가들이 공세적 군사력을 증강하면서 국가 상호 간에 군비경쟁의 양상이 나타날 때, 그리고 국력이 증대되는 국가가 기존 국제질서에 도전하는 행태를 보일 때 국가 간 분쟁 발발 가능성이 커진다고 분석해 왔다. 최근 미국과 북한 간에 나타나는 관계는 누가 보더라도 상호 분쟁 발발의 위험성이 높은 징후들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이 추가 미사일 발사를 감행하는 등의 무력도발을 자행한다면, 긴장 수준을 높이고 있는 양국 군사력에 의해 우발적 충돌이 발생할 위험성이 극히 높다. 역사상 이러한 상호 오인(misperception)과 우발적 충돌에 의해 국가 간 분쟁이 발발한 경우가 적지 않다. 정확히 80년 전 발발한 중·일전쟁은 베이징 근교 노구교에서 야밤에 일본군 진지방향으로 발사되었다고 간주된 총성 한 발에 의해 확대됐다.

베트남전쟁은 통킹만을 항행하던 미국 함선에 대한 월맹 측의 포격에서 발단됐다. 우리는 한반도 평화를 절실히 바라지만,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관련 당사국들 간의 상호 오판에 의해 언제라도 분쟁이 발발할 개연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설령 우발적 충돌의 가능성이 회피된다 해도, 핵개발을 정권의 생명선으로 간주하고 있는 북한 지도부가 어떠한 대가로도 이를 포기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해리 해리스 미 태평양사령관을 포함한 미국 전략가들은 북한 핵능력의 완성이 2018년 전후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예상하고 있다. 북한 핵능력의 고도화가 이루어지고, 그 운반수단으로서의 미사일 전력에 대한 탑재가 가시화할 경우, 한반도 안보지형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미로에 빠지게 될 것이다. 글로벌 비핵화를 안보정책의 중요한 축으로 상정해 온 미국이 이스라엘이나 인도의 핵보유 때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대응할 것은 자명하다.

단기적으로는 북·미 간의 우발적 충돌 위험성이, 중기적으로는 북한 핵능력의 고도화라는 안보위기가 지금 눈앞에 전개되고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경험해 보지 못한 위기적 징후로부터 국가안보를 보장하는 실마리를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필자는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건국 이래 역대 정부가 실시해 온 안보정책이 크게 자주국방, 한·미 동맹 강화, 국제안보협력, 남북 접촉이라는 4가지 유형을 보여 왔다고 생각해 왔다. 전례 없는 안보위기 상황 속에서도 이 4가지 안보정책을 적절하게 병용한다면 지금의 안보위기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선 자주국방 차원에서 북한의 핵 및 미사일 능력을 상쇄하기 위한 전력증강 사업이 지속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제(KAMD)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 또 주한미군에 배치된 고고도미사일방어(사드·THAAD) 체계 이외에 일본이 이미 배치한 PAC-3나 SM-3, 이스라엘이 단거리 미사일 방어용으로 독자 개발한 아이언돔을 추가 배치하여 중층적 미사일 방어체계를 구축하는 방안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

한·미 동맹 차원에서 북한의 오판을 방지하면서도 비핵화를 강력하게 압박하기 위한 최적의 방식을 찾는 긴밀한 협의가 보다 필요하다. 10월 이후에 예정된 한·미 간의 안보협의회(SCM)과 군사위원회(MCM)를 활용해 절제된 범위 속에서 한·미 동맹의 강력한 억제태세를 보여 주는 대북 전략의 방식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또한 미국을 중심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국가들이 구축하고 있는 핵공유협정을 한·미 동맹에도 적용하여 핵억제 능력을 높이는 노력도 경주할 필요가 있다.

이미 베를린선언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이 표명한 남북 간 대화도 시기를 보아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 보수적 성향의 박정희 정부와 전두환 정부도 대북 위기 해소를 위해 남북 접촉을 추진한 경위가 있다. 이러한 전례들을 참고하여, 북한의 오판을 방지하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북한의 핵능력 고도화 추진으로부터 기인하는 안보위기가 한반도를 엄습하고 있다. 국가안보의 험난한 길을 찾아 나가기 위해 정보·군사·경제·외교 등 국가의 가용 능력을 총동원하여 중단기 상황에 맞추어 정확히 대응해 가는 정책노력이 어느 때보다 긴요해 보인다.

박영준
국방대 안보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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