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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영의 글로벌 J카페] '가구 공룡' 이케아가 실리콘밸리 벤처기업 인수한 까닭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전통적인 소매 업체가 디지털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기술 기업을 인수하는 최근 트렌드에 '가구 공룡' 이케아도 합류했다.

이케아, '긱 이코노미' 업체 태스크래빗 인수 발표 #가구 조립, 못 박기 등 노동력 사고파는 디지털 장터 #DIY 가구 직접 조립 외면하는 소비자 행동 변화 #이에 대응하고 디지털 노하우 배우기 위한 결정

스웨덴의 가구ㆍ생활용품 업체 이케아는 미국의 ‘긱 이코노미’ 스타트업인 태스크래빗을 인수하기로 했다고 28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케아가 실리콘밸리 정보기술(IT)기업을 인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 마이애미에 있는 이케아 간판. 이케아는 반세기 넘게 조립식 DIY 가구를 판매해왔다. 최근 소비자들이 가구 조립을 외면하는 행동 변화를 보이자 단기 노동력을 중개하는 정보기술(IT) 기업 태스크래빗을 인수했다. [마이애미 AP=연합뉴스]

미국 마이애미에 있는 이케아 간판. 이케아는 반세기 넘게 조립식 DIY 가구를 판매해왔다. 최근 소비자들이 가구 조립을 외면하는 행동 변화를 보이자 단기 노동력을 중개하는 정보기술(IT) 기업 태스크래빗을 인수했다. [마이애미 AP=연합뉴스]

태스크래빗은 단기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는 사람과 이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디지털 공간에서 연결하는 장터 개념의 플랫폼이다.

가구 조립, 가구 옮기기, 못 박기, 페인트칠하기, 대신 줄 서기같이 자잘한 업무를 대신할 사람을 시간당 비용을 지불하고 구할 수 있다. 국내에도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기반으로 각종 심부름을 해주는 업체들이 영업 중인데, 태스크래빗이 그 원조라고 할 수 있다.

태스크래빗 홈페이지. 이 회사는 노동을 제공하려는 사람과 필요한 사람을 연결시켜준다. 가구 조립, 이사, 집 관리 등 사소한 업무를 시간당 비용을 받고 제공한다.

태스크래빗 홈페이지. 이 회사는 노동을 제공하려는 사람과 필요한 사람을 연결시켜준다. 가구 조립, 이사, 집 관리 등 사소한 업무를 시간당 비용을 받고 제공한다.

태스크래빗은 2008년 리아 버스크가 창업했다. 당시 회사명은 '내 심부름을 해줘'라는 뜻의 '런 마이 애런드(Run My Errand)'였다. 차량 공유업체 우버보다도 1년 먼저 설립돼 '공유 경제' 개념을 처음 선보인 기업 중 한 곳이다. 현재 미국 40개 도시와 런던에서 운영되고 있다. 프리랜서 근로자 6만 명이 등록된, ‘긱 이코노미’ 대표 업체로 꼽힌다.

'긱 이코노미'는 그때그때 발생하는 필요에 따라 계약직 혹은 임시직으로 사람을 고용하는 경제 상황을 일컫는 용어다. 긱(gig)은 '임시적인 일'이라는 뜻과 '라이브 공연'이라는 뜻을 모두 갖고 있다. 1920년대 미국 재즈클럽에서 단기로 섭외한 연주자들이 무대에 올라가 라이브로 하는 공연을 ‘긱’이라고 부른 데서 유래했다. 컨설팅 기업 맥킨지는 2015년 긱을 "디지털 장터에서 거래되는 기간제 근로"라고 정의했다.

이케아의 태스크래빗 인수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다. 직원 60여명을 둔 태스크래빗의 기업 가치는 2015년 약 5000만 달러(약 572억원)로 평가 된 바 있다. 창업 이후 벤처캐피털과 투자자들로부터 받은 투자금액은 3700만 달러(약 423억원)를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난 3년간 매출액이 해마다 2배로 증가하며 급성장 했다.

이케아가 태스크래빗을 인수하는 이유는 태스크래빗이 경쟁 우위를 가진 분야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가구 조립 서비스다.

이케아 가구는 소비자가 직접 조립해야 한다. [사진 이케아]

이케아 가구는 소비자가 직접 조립해야 한다. [사진 이케아]

이케아는 1950년대부터 소비자가 직접 조립해서 사용하는 DIY (Do It Yourself) 가구를 판매하고 있다. 세련된 디자인에 DIY 방식을 접목해 가격을 낮추는 전략으로 세계 최대 가구업체로 성장했다.

이케아 가구는 나무 틀과 판, 쿠션, 나사 등 가구를 만들 수 있는 재료가 담긴 ‘키트’ 형태로 판매된다. 큰 침대건 작은 의자건, 설명서를 보면서 지시에 따라 가구를 스스로 완성해야 한다. 과거 소비자들은 북유럽 스타일 디자이너 가구를 비교적 싼 가격에 살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노동’도 ‘재미’라고 생각하며 가구를 조립했다.

이케아는 소비자가 스스로 가구를 조립하는 DIY (Do It Yourself) 가구를 판매한다. 이케아 가구 키트를 쇼핑카트에 담고 있는 쇼핑객들. [사진 이케아]

이케아는 소비자가 스스로 가구를 조립하는 DIY (Do It Yourself) 가구를 판매한다. 이케아 가구 키트를 쇼핑카트에 담고 있는 쇼핑객들. [사진 이케아]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소비자가 달라졌다. 소비자들이 가구 조립을 기피하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온라인 경제전문 매체 쿼츠는 “DIY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은 미국에서조차 소비자들이 직접 가구 조립하기를 꺼려한다”고 전했다.

이케아도 이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가구 조립 자체가 너무 어렵다는 문제도 제기됐다. 가구 조립을 시연하는 영상을 이케아가 직접 제작해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에 올리기도 했다.

이즈음 가구를 직접 조립하는 대신 돈을 주고 남에게 조립을 맡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태스크래빗을 비롯해 핸디, 썸태크, 포치, 프로닷컴, 아마존 홈 서비스 등 긱 이코노미 업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나 노동력을 중개하는 역할을 했다. 결국 이케아도 유료 조립 서비스를 도입하기에 이르렀다.

소비자가 직접 가구를 조립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케아 비즈니스의 본질을 흔드는 것이다. 위기를 느낀 이케아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태스크래빗을 인수하게 됐다고 쿼츠는 전했다.

WSJ에 따르면 이케아는 현재 미국에서 가구 조립 서비스를 89달러 (가구 가격 299달러 이하)에 제공한다. 300달러 넘는 가구는 서비스 이용료를 더 받는다. 태스크래빗에서는 이보다 더 싸게 노동력을 살 수 있다. 예를 들어 휴스턴에 있는 프리랜서 노동자는 이케아 가구 키트를 배송하고 조립해 주는 대가로 보통 시간당 30달러를 받는다고 한다.

이케아는 일단 미국 내 제품 배송과 가구조립 서비스에 태스크래빗의 서비스를 접목할 것으로 보인다. 이후 단계적으로 서비스를 다른 나라로 확대할 계획이다. 앞서 이케아는 런던에서 태스크래빗을 통한 가구 조립 서비스를 시범 운영하고 있다.

이케아의 태스크래빗 인수는 가구 조립 서비스 외에도 태스크래빗이 보유한 디지털 비즈니스 노하우를 얻으려는 목적도 있다. 제스퍼 브로딘 이케아 최고경영자(CEO)는 “빠르게 변화하는 유통 환경 속에서 고객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태스크래빗이 가진 디지털 전문 지식과 기술을 배울 수 있다"고 인수 이유를 밝혔다.

최근 유통업체들은 고객 행동 패턴을 파악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고객 데이터 확보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태스크래빗이 10여년간 축적한 고객 데이터는 이케아에 긴요하게 쓰일 것으로 보인다.

이케아 가구로 꾸민 거실 모습. [사진 이케아]

이케아 가구로 꾸민 거실 모습. [사진 이케아]

1943년 창업한 이케아는 미국ㆍ한국 등 29개국에서 357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오프라인 유통 공룡들이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의 등장으로 곤경에 빠진 경우가 많은데 비해 이케아는 상대적으로 선방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액은 350억 유로(약 47조원)로, 2015년(326억 유로)보다 7.3% 증가했다.

하지만 이케아가 당초 설정한 목표에는 못 미친다. 2013년 이케아는 오는 2020년까지 매출액 500억 유로(약67조8000억원)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공개하며, 이를 위해서는 해마다 평균 10%씩 성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2014년 대비 2015년 매출액은 11% 증가했으나 최근 성장률은 한 자릿수로 뚝 떨어졌다.

이케아는 그동안 다양한 디지털 전략을 시도했다. 가장 최근에는 아이폰에서 사용할 수 있는 증강 현실 앱 ‘이케아 플레이스’를 출시했다. 카메라로 집안을 스캔한 뒤 이케아 가구를 배치했을 때 어떤 모습인지를 가상 현실(VR)로 미리 볼 수 있는 서비스다.

이케아의 증강 현실 앱 '이케아 플레이스'는 집안에 이케아 가구를 배치했을 때 어떤 모습인지를 가상현실 서비스로 볼 수 있다. [사진 이케아]

이케아의 증강 현실 앱 '이케아 플레이스'는 집안에 이케아 가구를 배치했을 때 어떤 모습인지를 가상현실 서비스로 볼 수 있다. [사진 이케아]

온라인 구매 서비스도 강화했다. 교외에 대형 창고형 매장으로 운영하는 방식을 깨고 도심에 소규모 매장을 열어 온라인에서 구매한 상품을 픽업할 수 있는 서비스도 시도했다.

이케아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오프라인 산업에 종사하는 대기업들은 거센 디지털 물결 속에서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WSJ는 “많은 기존 기업들이 성장을 위해 또는 하락세를 늦추기 위해 실리콘 밸리의 기술 기업들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전했다.

자동차 기업들이 앞다퉈 자율주행 관련 기술을 가진 벤처기업들을 사들이거나 투자하고 있다. 세계 1위 대형마트 월마트는 지난 6월 온라인 쇼핑을 확대하고 디지털 전략을 배우기 위해 온라인 패션 쇼핑몰 보노보스를 인수했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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