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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성장의 성공은 노동개혁에 달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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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원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원배 경제부 차장

김원배 경제부 차장

“기업의 역동성과 야성적 충동이 떨어졌다. 젊은이는 좌절하고 우수한 사람들도 공직자를 하겠다며 안주하려 한다.” 노무현 정부의 첫 건설교통부 장관인 최종찬 국가경영전략연구원장이 본지 외환위기 20년 취재팀에 한 말이다.

역시 노무현 정부 시절 인사인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지난 6월 출간한 책 『경제철학의 전환』에도 비슷한 대목이 있다. “창의와 혁신이 활발히 샘솟는 기업가 정신의 자유로운 발현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엄연한 우리의 현실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소득주도 성장을 내놨지만 이는 국가 재정과 기업의 부를 분배하는 정책으로 지속 가능성이 떨어진다. 그러자 보완책으로 등장한 게 바로 ‘혁신성장’이다. 소득주도 성장이 수요 측면이라면 혁신성장은 공급 측면의 전략이라고 한다.

4차 산업혁명, 창조경제, 혁신성장. 말은 다르지만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 등 신기술을 제조업이나 서비스업, 바이오·의료·환경 분야에 응용하고 융합하는 범주 안에 있다. 이를 위해 기술형 창업 기업을 육성하는 게 목표일 것이다. 이렇게 보면 그리 새로운 얘기도 아니다.

혁신은 기업가의 ‘창조적 파괴’를 통해 이뤄진다. 정부는 혁신이 일어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 기반은 ‘자유로움’이다. 규제가 많은 곳에선 혁신이 일어나기 어렵다.

기획재정부 블로그(8월 21일)는 성장·복지·고용이 함께 가는 한국식 황금삼각형 경제모델을 소개한 적이 있다. 이는 덴마크의 황금삼각형 모델을 변형한 것으로 노동시장 유연화와 사회안전망 강화, 적극적인 교육 훈련을 3대 축으로 한다. 해고를 쉽게 하면서도 해고된 근로자에게 재직 시절 급여의 90%를 지급한다. 이를 위해선 국민이 적지 않은 세금을 내야 한다.

변양균 전 실장도 슘페터식 공급 혁신을 위해선 ‘노동의 자유’ 등 4가지 자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고용주가 쉬운 해고를 할 수 있는 동시에 근로자도 자신의 노동력과 기술을 원하는 회사에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실업수당과 임대주택 공급 등으로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대신 저성과자를 합리적 기준과 절차에 따라 해고할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지금까지 보여준 정책은 친(親)노동 일변도다. 근로자의 권리를 확대하고 사회안전망을 확충해야 하지만 혁신성장을 위해선 그다음 발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다음달 정부가 내놓을 혁신성장 대책엔 노동개혁과 규제완화 방안이 담겨야 한다. 그렇지 않고 단순한 벤처 지원책에 그친다면 박근혜 정부가 내놨던 ‘창조경제’의 전철을 밟을 게 분명해 보인다.

김원배 경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