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자 김훈이 본 영화 '남한산성'은? 제작자는 김훈작가의 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영화 '남한산성'의 한 장면. 병자호란 당시 조선군의 수난을 실감나게 그렸다. [사진 CJ 엔터테인먼트]

영화 '남한산성'의 한 장면. 병자호란 당시 조선군의 수난을 실감나게 그렸다. [사진 CJ 엔터테인먼트]

 "뜨겁고 격정적인 것들을 냉엄하게 바라보는 시각을 영화에서 느꼈다."
 소설가 김훈(69)이 자신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 '남한산성'을 관람한 후 이런 소감을 밝혔다. 27일 서울 삼성동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 영화 시사회 이후 마련된 황동혁 감독과의 대담 자리에서다. 연합뉴스 등에 따르면 하루 전날 영화를 본 김씨는 김상헌이 사공을 죽이는 영화 첫 장면을 언급하며 소설과는 다른 영화의 특징을 지적했다. "김상헌이 사공을 죽이는 장면에서 카메라가 뒤로 빠지면서 얼어붙은 산하를 보여주더군요. 그 죽음과 죽임이 조국의 산천에서 벌어지는 비극이라는 것을 냉정하게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라고 평했다. 하지만 "영화는 감독과 연기자 것이고 저의 것이 아니다. 그러나 소설로 표현하고자 했던 의도를 영상으로 잘 표현해냈다"고 했다.

"격정적인 것들을 냉엄하게 바라보는 시각 영화에서 느껴" #"인조가 투항하기 위해 성문 나서는 장면 '만백성의 아버지' 떠올라"

2014년 병자호란 전문가인 명지대 한명기 교수와 남한산성을 찾은 소설가 김훈(오른쪽). [중앙포토]

2014년 병자호란 전문가인 명지대 한명기 교수와 남한산성을 찾은 소설가 김훈(오른쪽). [중앙포토]

 김씨는 인조가 청의 황제에게 항복하기 위해 남한산성을 나서는 장면에서 보편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봤다고 했다.
 "인조는 그가 갈 수밖에 없는 길을 간 사람입니다. 그 외에는 길이 없었습니다. 쓰면서 괴로운 순간이었죠. 인조가 성문을 나와서 삼전도까지 투항의 대오를 이끌고 산길을 내려갈 때 '저 불쌍한 임금이 비로소 만백성의 아버지가 되는구나' 싶었어요. 아버지는 그렇게 사는 겁니다. 슬프고 비참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죠."
 또 "내가 감춰둔 메시지를 감독이 끄집어내 언어화하는 것을 보고 들켰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며 "영화에서 김상헌과 최명길을 '두 충신'이라고 표현한 대목이 그렇다"고 했다. "두 사람은 꼭 적대관계에 있는 것은 아니었고, 하나의 비극적 사태가 포함하는 양면일 뿐이었다. 400년이 지난 지금 돌아볼 때 둘 다 충신이고, 인조가 항복하더라도 김상헌 같은 신하가 있기 때문에 그것은 완전한 패배가 아니라 미래를 기약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 '남한산성'의 한 장면. 오른쪽이 척화파 김상헌 역할을 맡은 김윤석.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영화 '남한산성'의 한 장면. 오른쪽이 척화파 김상헌 역할을 맡은 김윤석.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소설 『남한산성』은 1636년 병자호란 때 청나라의 대군을 피해 인조와 신하들이 남한산성에 머문 47일간을 그린 작품이다. 2007년 출간돼 지금까지 60만 부 가량 팔렸다. 김씨는"소설을 쓰면서 생각했던 것은 이 세상을 지배하는 악이었다. 악과 그것에 짓밟히고 저항하고 신음하면서 또 앞날을 기약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고난과 슬픔을 묘사하려 했다"고 말했다. 그런 소설을 영상으로 옮긴 영화에 대해 이런 소감을 밝혔다.
 "영화에서 살아있는 인간이 육성과 표정으로 대사를 하니까 나의 문장이 관념을 떠나 실존으로 변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관념에서 실존으로, 문자에서 인간의 목소리로. 목소리로 나온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죠. 목소리는 유일무이한 것입니다. 나의 문장이 관념의 틀을 벗어나서 삶과 피와 영혼을 보여주는구나 하는 기쁨을 느꼈습니다."
 다음달 3일 개봉하는 영화 '남한산성'의 황동혁 감독은 '수상한 그녀''도가니' 등을 연출한 바 있다. 영화 '마지막 황제'로 동양인 첫 아카데미 작곡상을 수상한 영화 음악 거장 류이치 사카모토가 한국영화로는 처음으로 OST 작업에 참여해 화제가 됐다. '남한산성'의 제작자인 이든픽쳐스 김지연 대표는 김훈 작가의 딸이다. 영화계에서는 명절을 겨냥한 대작으로 기획된 '남한산성'이 통상적인 흥행 공식을 따르기 보다는 원작의 깊이를 살리는데 촛점을 맞춘 데에는 작가의 딸인 제작자의 영향도 컸으리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