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추적] 5t쓰레기더미에 어린 남매 두고 가출한 친모 사연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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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한 임대주택 안에 가득 쌓인 쓰레기더미. [사진 수원시]

수원 한 임대주택 안에 가득 쌓인 쓰레기더미. [사진 수원시]

지난 27일 오전 9시쯤 경기도 수원시 내 한 동주민센터에 한 통의 제보가 들어왔다. 임대아파트 옥상에 허름한 행색의 A씨(32·여)가 있다는 주민의 전화였다. 검은색 점퍼에 청바지 차림의 그는 심하게 손과 발을 떨었다. 옷에서는 불쾌한 냄새가 났다. A씨는 쓰레기가 가득 찬 집안에 어린 남매를 놔둔 채 지난 12일 가출했던 친모였다.

주민제보로 15일만에 옥상서 발견 #"빚 독촉자들 올까봐 두려워" 은둔 #사회복지사들 오면 외면하기 일쑤 #다행히 아이들 신체학대 정황 없어 #하지만 비위생환경서 정서학대 혐의 # #어린 남매 "엄마와 함께 있고 싶다"고 해 #

주민센터 사회복지사들은 일단 물을 주며 진정시킨 뒤 “우리가 무엇을 도와드리면 되냐”고 물었다. 그러자 A씨는 “빚 때문에 무서워 힘들다”며 “(빚 독촉자들이 올까 봐) 그래서 (임대아파트 현관) 문을 안 열었다”고 말했다. 현재 정확히 어느 정도 금액의 채무가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또 “관청(구청이나 동주민센터 직원)에서 올까봐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고 횡설수설했다.

주민센터 측은 최근 아동보호전문기관으로부터 A씨의 정서적 학대가 의심된다는 판정을 받은 만큼 일단 경찰에 A씨를 인계했다. 정서적 학대 판단 근거는 몇 달씩 비위생적인 환경에 아이들을 방치한 점을 근거로 삼았다. 남매 모두의 치과 치료, 사시를 앓고 있는 둘째의 안과 치료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점 역시 포함됐다.

수원시 등에 따르면 A씨는 지자체의 돌봄 사업 사례관리자였다. 2013년 하반기 남편과 이혼 뒤 살던 부산을 떠나 2015년 당시 6살·5살(여) 어린 남매와 수원시 내 여인숙을 전전하는 생활을 했다. 어느 날은 노숙도 했다. 부모가 화성시에 거주해 인접한 수원으로 왔다.

수원시내 한 임대아파트 집 안에 가득 쌓인 쓰레기. [사진 수원시]

수원시내 한 임대아파트 집 안에 가득 쌓인 쓰레기. [사진 수원시]

A씨는 중학교 때 수학경시대회에 나갈 정도로 성적이 우수했다고 한다. 하지만 고등학교 진학 뒤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고교 1학년 때 자퇴했다. 성인이 돼서는 게임에 빠지는 날이 잦았고, 돈 문제로 부모와 갈등을 빚기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결혼해서 나아질 줄 알았지만 이혼한 전 남편 역시 게임중독 수준이었다고 한다.

A씨를 딱하게 여긴 한 숙박업소 주인의 제보로 지자체의 복지서비스가 제공되기 시작했다. 일단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등록, 일부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왔다.

첫째가 학령기 연령이 된 점을 고려해 지난해 1월 수원의 한 60㎡면적의 임대주택(보증금 340만원·월세 13만원)에 입주시켰다. 보증금은 친정 부모가 냈고, 월세는 수원시가 제공하는 주거급여로 해결했다. 마땅한 직업이 없던 A씨 세 식구의 생활비는 친정부모가 도왔다.

하지만 문제는 이후부터였다. 사회복지사들이 상담을 위해 방문하면 거부하기 일쑤였다. 해당 임대아파트에 사례 관리자들이 다수 입주해 수시로 A씨에게 연락했다고 한다. 하지만 사회복지사들에게 강제로 문을 열 수 있는 권한은 없었다.

이즈음 학교에 입학한 첫째 아이의 결석도 잦았다. 동주민센터는 학교 문제 얘기를 듣고 A씨에게 주의를 줬다. 다행히 이후부터는 학교생활이 정상적으로 이뤄졌다.

혹시 모를 아동학대를 우려한 동주민센터는 아이들을 주의 깊게 살폈는데, 신체적 학대를 받은 상처가 없었다. 아이들의 평소 차림은 말끔했다. 매주 주말이면 친정 부모가 아이들을 돌봤기 때문이다. 이때 일주일치 옷을 빨아 입혔다. 남매는 학교에서도 여느 또래 아이들처럼 장난도 잘 치며 어울렸다고 한다.

몰라보게 달라진 화장실. [사진 수원시]

몰라보게 달라진 화장실. [사진 수원시]

발육상태도 나쁘지 않은 편이라고 한다. 다만 A씨가 즉석식품 등을 사다 식사나 간식으로 제공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웃 주민들 역시 신체적 학대를 전혀 의심하지 못했다. 올초 사회복지사에게 현관문 걸쇠 너머로 거실이 잠깐 보였는데 쓰레기는 없었다고 한다. A씨 친정 부모 역시 아직 딸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했다고만 여겼다.

사건은 지난 12일 외할아버지(56)가 쓰레기더미를 발견하면서 외부로 알려졌다. 이날은 A씨가 가출한 날이다. 학교에 갔다가 집으로 온 남매가 아파트 현관 문을 열지 못해 외할아버지에게 연락했다. 외할아버지에게는 비상열쇠가 있었다. 평소 딸의 반대로 그동안 집안을 들어가지 못했던 그는 집안을 보고 놀랐다.

거실에는 아무렇지 않게 나뒹군 술병과 비닐·과자 포장지·옷가지 등이 뒤섞여 있었다. 화장실이 특히 심각했다. 용변 후 사용한 휴지가 구석에 높게 쌓여 있었다. 주방 싱크대에서는 말라 붙은 음식물 쓰레기가 악취를 뿜었다. A씨가 수건으로 창문 틈을 막아 냄새가 외부로 새나가지는 않았다.

수개월전부터 술을 찾는 날이 늘었고, 쓰레기를 치우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수원시 내 한 주민센터 관계자 등이 도배작업 등을 벌이고 있다. [사진 수원시]

수원시 내 한 주민센터 관계자 등이 도배작업 등을 벌이고 있다. [사진 수원시]

외할아버지는 즉시 동주민센터에 연락했다. 주민센터의 도움으로 치운 쓰레기량은 5t이나 됐다. 현재는 말끔하게 치워진 상태다. 도배·장판도 새로했다.살림살이도 한 봉사단체로부터 지원 받았다.

경찰은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A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28일 밝혔다. 수개월간 쓰레기를 치우지 않은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어린 남매를 정서적으로 학대한 혐의다. 경찰 조사때 A씨는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심경을 전했다고 한다. 경찰은 정신건강의학과 상담진료를 계획 중이다. 어린 남매는 “엄마와 함께 있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수원=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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