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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연임 성공했지만 '험난한 4년' 예고, 3당 꿰찬 극우 "메르켈 사냥하겠다"

중앙일보

입력

24일(현지시간) 실시된 총선 결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사 4연임에 성공해 16년 간 재임한 헬무트 콜 전 총리에 이어 최장수 총리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제 3당으로 나치 이후 60년 만에 의회에 입성하면서 향후 독일의 정치 지형에 변화를 예고했다.

나치 이후 전후 처음으로 독일 하원에 입성한데다 3위를 차지한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공동최고 후보들이 기뻐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나치 이후 전후 처음으로 독일 하원에 입성한데다 3위를 차지한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공동최고 후보들이 기뻐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벌써부터 AfD는 “우리 국가와 국민들을 되찾겠다. 난민 위기에 대한 법적 조사를 통해 메르켈을 사냥하겠다"(알렉산더 가울란트 공동 최고후보)고 선전포고를 해 메르켈의 험난한 4년을 예고했다.
 이번 선거 결과 2차 대전 이후 독일 정치를 주도해온 중도 우파, 중도 좌파 두 주류 정당은 전후 최악의 성적을 거두며 하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 정도로 축소됐다. 프랑스ㆍ네덜란드 등 다른 유럽 국가와 마찬가지로 이념적 스펙트럼 등에 따라 극좌에서 중도, 극우까지 유권자의 정당 지지가 다변화하는 현상이 독일에서도 등장했다.
 독일 연방선거관리위원회의 개표 결과에 따르면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중도 우파 기독민주ㆍ기독사회당(CDUㆍCSU) 연합은 33%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1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기민ㆍ기사연합은 41.5%를 득표했던 2013년 총선에 비해 득표율이 8.5%포인트 낮아졌다. 이번 득표율은 1949년 독일 의회 선거가 시작된 이후 중도 우파 주류 정당으로서 가장 낮은 수치다.
 마르틴 슐츠 전 유럽의회 의장이 이끈 중도 좌파 사회민주당(SPD)은 20.5%를 얻었는데, 이 역시 전후 최악의 성적표다. 중도 좌ㆍ우파 두 세력은 1970년대 90% 이상을 차지했고, 2005년 총선 때만 해도 지지율 합계 69.4%를 기록했으나 이번엔 53.5%로 낮아졌다.
 반대로 메르켈 총리의 난민 포용정책에 반발해온 AfD는 득표율 12.6%로 제3당의 위치를 꿰찼다. 2013년 설립된 AfD는 당초 유로화 반대를 내걸었으나 급속하게 반 이슬람, 반 이민 정당으로 탈바꿈했다. 이 국수주의 정당은 몸을 가리는 부르카 착용 금지, 모든 이슬람 성직자에 대한 조사 등을 주장한다. 독일 국경을 강화하고 유럽연합(EU)이 개혁하지 않으면 EU 탈퇴도 고려하자는 입장이다. 당 주요 인사들은 "세계대전에 참전한 군인들을 자랑스러워 해야 한다"며 나치를 옹호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2013년 총선 때 의회 의석 배분에 필요한 득표율 5%에 미치지 못했던 친기업 성향의 자유민주당(FDP)은 10.7%를 득표했다. 좌파당과 녹색당은 각각 9.2%, 8.9%를 얻었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은 “이번 총선은 독일 정치권에 하나의 분기점"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사회가 균열 조짐을 보임에 따라 두 중도 주류 정당의 왼쪽에 좌파당과 녹색당, 오른쪽에 자유주의 성향의 FDP가 포진해온 독일 정당체제에서 과거의 망령과 같은 극우 AfD가 상당기간 상수로 자리잡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덜 균열적인 양당 체제'라는 평가를 받던 독일 정치가 ‘균열적인 다당체제'가 될 가능성이 제기한 것이다.
 실제 이번 총선에선 구 동독 지역과 서독 지역 간 분열 양상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출구조사에 따르면 극우 AfD는 구 서독 지역에선 10% 가량 득표하는데 그쳤지만 동독 지역에선 21.5%를 얻어 사민당을 누르고 2위를 차지했다.
 극우정당의 약진과 관련해 영국 가디언은 “출구조사에서 지지층의 이동을 분석한 결과 AfD에는 2013년 총선 무투표층과 집권 기민ㆍ기사연합에서 옮겨간 표가 많았다"며 “나치를 옹호하는 극우 정당 자체를 선호한다기 보다 2015년 이후 100만명 이상을 한꺼번에 받아들인 메르켈 총리의 난민 정책에 반대하는 유권자들이 표를 준 것"이라고 분석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총선 출구조사 발표 직후 당사에서 연설을 하며 4연임 성공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AFP=연합]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총선 출구조사 발표 직후 당사에서 연설을 하며 4연임 성공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AFP=연합]

 메르켈 총리는 총선 직후 연설에서 “더 나은 결과를 기대했지만 우리가 마주했던 엄청난 도전들을 돌이켜보면 우리가 전략적 목표를 꾸준히 달성해왔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극우 정당에 투표한 유권자들의 관심사항과 우려를 잘 살펴 지지자들을 되찾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난민 문제가 극우가 발호할 자양분이 된 것과 관련해선 “유럽연합(EU) 국가들이 하나로 뭉쳐 난민 발생 원인과 불법 이민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안보는 경제 만큼이나 사람들을 걱정시키는 주제가 분명하다"고 말했다.
 슐츠 사민당 대표는 총선 직후 “메르켈과의 대연정은 오늘 밤 끝났다"고 말했다. 중도 우파와 손을 잡은 이후 당 지지율이 계속 추락해왔기 때문에 야당의 길을 걷겠다는 의미다.
 메르켈 총리는 사민당과의 연정 가능성을 완전히 닫지 않은 채 과반을 달성할 수 있는 남은 유일한 방법인 ‘자메이카 연정' 협상에 착수했다. CDU 연합과 자민당, 녹색당의 상징색이 검정, 노랑, 초록으로 자메이카 국기의 색과 같아 붙은 이름이다. 하지만 녹색당은 화석 연료 사용 화력발전의 중단을 요구하는 등 자민당과 색체가 달라 연정 협상이 순조로울 지는 지켜봐야 한다.
 EU 내 자유 이동에 반대하는 AfD는 남유럽 국가들을 돕는데 세금을 쓰는 것에도 반대한다. 극우 정당이지만 동성애자이자 여성 경제학 박사인 38세 알리체 바이텔이 공동 총리 후보를 맡고 있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총선 결과 중도 우파, 중도 좌파 두 주류 정당 비중 낮아져 #나치 이후 60년 만에 극우정당 AfD 3당으로 의회 입성 #'덜 분열적인 양당 체제'서 '균열적인 다당체제'로 변화 조짐 #구 동독선 극우정당이 사민당 누르고 2위…갈라진 독일 #사민당 "야당 길 가겠다" 밝혀 메르켈, 자메이카 연정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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