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뺑뺑이 통학버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9면

양영유
양영유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양영유 논설위원

양영유 논설위원

엄마들의 사연은 뭉클했다. 얼마나 가슴이 저미고 아플까. “그 심정 이해한다”고 말하는 건 위선이란 걸 깨달았다. 이은자씨는 발달장애가 있는 고3 지현이를 매일 새벽 5시50분에 깨운다고 했다. 씻기고, 입히고, 식사까지 챙기려면 한 시간도 빠듯하다. 서울 강서구 등촌동 집을 나와 통학버스를 타는 시간은 오전 7시20분. 특수학교인 구로구 정진학교까지 1시간30분 걸린다. 학생들 집이 여러 곳에 퍼져 있어 버스가 빙빙 돌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학교에 도착하기도 전에 지친다.

통학버스는 화장실 ‘비상사태’로 중간에 서기도 한다. 지현이 엄마는 “부모가 아이들에게 가급적 물을 안 먹이고 억지로라도 볼일을 보게 한 뒤 버스에 태우지만, 종종 돌발상황이 발생한다”고 했다. 거동이 불편한 아이들한테 용변 참는 고통은 오죽할까. 버스 안에서 아이가 ‘실례’할 수밖에 없다는 한 엄마의 하소연이 먹먹하다.

시각·청각·지체·정서 장애와 정신지체 등 특수교육 대상자는 전국에 8만7950명. 하지만 특수학교 174곳에 수용 인원은 2만5000명에 불과하다. 상당수는 집 근처에 학교가 없다 보니 원정 통학의 곤욕을 치른다. 서울은 25개 구 가운데 8개 구(동대문·중랑·성동·용산·양천·영등포·금천·중구)에 특수학교가 없다. 본지 취재 결과 통학버스의 한 시간 뺑뺑이는 약과였다. 강서구 학생이 21㎞ 떨어진 강북구 한빛맹학교에 가는 데 편도 1시간45분이 걸렸다.

그런 현실을 무릎 꿇고 읍소한 강서구 엄마들의 울림은 컸다. “때리면 맞겠다. 그래도 특수학교는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엄마들의 절규에 여론이 들끓었다. 지난 21일에는 이낙연 국무총리까지 나서 “특수학교 설립을 국민이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다행스럽지만 구체적 대안 없이 레토릭만 난무하는 느낌이다.

처음 무릎을 꿇기 시작한 장민희씨는 “국민적 관심이 너무 고맙지만 학교 첫 삽 뜰 때까지 안심하긴 이르다”고 했다. 맞다. ‘냄비 여론’과 ‘즉흥 행정’이 한두 번이었나. 차차 여론은 시들해지고 님비(NIMBY)는 또 날을 세울 것이다. 내 손주, 내 자식 학교라도 그럴까. 정부·국회·교육청·자치단체, 그리고 주민 모두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볼 일이다. 정작 무릎을 꿇어야 할 사람은 우리 아닐까. 오늘도 아이들 통학버스는 뺑뺑이를 돈다.

양영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