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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죽음의 백조’는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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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나현철
나현철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나현철 논설위원

나현철 논설위원

미국의 전략폭격기는 세 종류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개발된 B-52H ‘성층권의 요새(Stratofortress)’, 1980년대 냉전시대 배치된 B-1B ‘랜서(Lancer·창기병)’, 90년대 나온 B-2 스피릿(spirit)이다. 각각 58기, 66기, 21기가 현역에 배치돼 있다. B-52H는 입증된 신뢰성으로, B-2는 탁월한 스텔스성으로 ‘세계의 경찰’인 미국의 주먹 노릇을 하고 있다.

B-1B는 이 중 가장 빠른 폭격기다. 최고 속도가 마하 1.25로 B-52H(마하 0.87), B-2(마하 0.95)를 앞선다. 저공에서도 마하에 가까운 속도를 낸다. 애초 옛소련의 요격기를 피해 침입할 목적으로 개발된 기체이기 때문이다. 유사시 괌 기지에서 이륙해 2시간이면 한반도에 도달할 수 있다. 기체 안팎에 최대 56.7t의 폭탄을 실을 수 있어 B-52H, B-2보다 무장 탑재량이 많다. 미국과 소련 사이의 전략무기 제한협정에 따라 지금은 핵무기를 싣지 않지만 언제든지 탑재가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B-1B의 외형은 여객기라 해도 좋을 만큼 매끈하다. 연료 효율과 스텔스성을 절충했기 때문이다. F14, F111처럼 날개도 가변익이다. 90년대 미 공군은 랜서라는 정식 명칭을 부여했지만 조종사들은 ‘뼈(bone)’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B-1(B-One)의 발음을 딴 것이다. 이라크에서 정밀유도무기인 합동직격탄(JDAM)을 마구 뿌려대는 걸 보고 ‘JDAM 택시’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이 비행기가 요즘 한반도에 자주 날아오고 있다. 북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집착하는 김정은에게 경고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국내 언론의 B-1B 호칭이 영 낯설다. ‘죽음의 백조(swan of death)’라고 다들 부르는데 미국이나 미군의 공식 용어가 아니다. 구글링을 해 보면 죽어 가는 백조 사진만 잔뜩 나온다. 해외 언론에서도 쓰지 않는 출처 불명의 용어다. 한미연합사에 물어봐도 “전혀 들은 바 없다”고 한다. 출처가 어딘지 미스터리다. 1년쯤 전 한 방송사가 실수한 걸 다른 언론들이 따라 쓴다는 설, B-1B의 옛소련 경쟁기인 TU-160 블랙잭의 별명인 ‘백조’와 혼동했다는 설이 있지만 정확히 확인할 길은 없다. 지금 한반도 위엔 미군도 모르는 ‘죽음의 백조’가 떠다니고 있다.

나현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