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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호텔]100년 전 프랑스가 찾은 베트남 파라다이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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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은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동남아시아 여행지다. 한 해 150만 명 이상이 베트남을 찾는다. 태국·필리핀보다 인기다. 한국인의 발걸음은 다낭·하노이·호치민, 이렇게 세 도시에 집중된다. 나트랑·푸꾸옥 같은 남부 휴양지도 최근 뜨고 있다. 그런데 이와는 전혀 분위기가 다른 고산 휴양지가 베트남에 있다는 걸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달랏(Da lat) 이야기다.

노란색 외벽과 진갈색 지붕이 인상적인 아나 만다라 빌라. 프랑스인들이 쓰던 빌라 17채를 72개 객실로 만들어 운영한다.

노란색 외벽과 진갈색 지붕이 인상적인 아나 만다라 빌라. 프랑스인들이 쓰던 빌라 17채를 72개 객실로 만들어 운영한다.

달랏은 ‘영원한 봄의 도시(City of eternal spring)’로 불린다. 달랏 시내의 해발 고도는 1500m. 연 평균 기온이 섭씨 21~25도로 선선하다. 호치민이나 하노이처럼 고온다습한 지역에 있다가 달랏으로 건너오면 서늘한 기온이 느껴질 정도다. 그래서인지 달랏은 외국인 여행자도 많지만 베트남 현지 사람들이 더위를 피해 많이 찾아온다. 특히 허니문 여행지로 인기다. 달랏 기차역, 베트남 마지막 황제의 여름궁전 등 명소에는 늘 웨딩사진을 찍는 커플들이 많다.

해발 1500m에 들어앉은 고산도시 달랏. 한 세기 전, 프랑스인들이 무더위를 피해 휴양지로 개발했다. 1년 내내 기온이 선선해 '영원한 봄의 도시'라 불린다.

해발 1500m에 들어앉은 고산도시 달랏. 한 세기 전, 프랑스인들이 무더위를 피해 휴양지로 개발했다. 1년 내내 기온이 선선해 '영원한 봄의 도시'라 불린다.

사실 달랏을 휴양지로 발전시킨 건 프랑스 사람들이다. 프랑스는 베트남 전역을 점령(1884~1945)하기 전부터 중남부를 장악해 ‘코친차이나’를 설립했다. 문제는 베트남이 너무 덥고 습하다는 점이었다. 코친차이나의 수도 사이공(호치민)을 피해 찾은 곳이 여기서 300㎞ 북동쪽에 있는 달랏이었다. 그들은 알프스를 만난듯 반가웠다. 철로를 깔고, 호화 빌라를 지었다. 기후와 지형이 커피 생산에 적합하다는 걸 알고는 아프리카에서 가져온 커피나무도 심었다. 달랏은 현재 베트남에서도 최고급 아라비카종을 재배하는 커피의 고장으로 통한다.

달랏에서는 곳곳에서 프랑스의 흔적을 만난다. 달랏에서 나는 베트남 최고급 아라비카 커피도 그 중 하나다. 프랑스인들이 아프리카 커피나무를 가져와 심기 시작한 게 지금까지 이어졌다.

달랏에서는 곳곳에서 프랑스의 흔적을 만난다. 달랏에서 나는 베트남 최고급 아라비카 커피도 그 중 하나다. 프랑스인들이 아프리카 커피나무를 가져와 심기 시작한 게 지금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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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말 커피 취재차 달랏을 갔다. 모터바이크가 거리를 점령한 풍경은 호치민·하노이와 비슷했지만 달랏은 확실히 달랐다. 무엇보다 공기가 선선했고, 유럽풍 건물이 알콩달콩 어우러진 모습은 그 자체로 매력적이었다. 첫날은 시내 중심가인 달랏 시장 인근의 3성급 호텔(일부 호텔 예약사이트에선 4성급으로 구분)인 응곡란(Ngoc Lan)에 묵었다. 1박 5만원 수준으로, 널찍한 객실에 제법 준수한 조식까지. 대체로 만족스러웠지만 밤새 창틈으로 스며든 모터바이크 질주 소리는 영 거슬렸다.

얕은 언덕, 숲 속에 자리한 아나 만다라는 17개 빌라 디자인이 모두 다르다.

얕은 언덕, 숲 속에 자리한 아나 만다라는 17개 빌라 디자인이 모두 다르다.

이튿날 잠자리를 옮겼다. 소문으로만 듣던 숙소인데 이름이 좀 길다. 아나 만다라 달랏 빌라 리조트 앤 스파(이하 아나 만다라). 복작복작한 달랏 시장에서 불과 2.5㎞,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떨어져 있는데 완벽한 적막에 안긴 느낌이다. 북악산 백사실계곡에 들어서면 여기가 서울인가 싶은 기분이 드는 것과 비슷하달까.

아나 만다라의 입구. 세월의 흔적을 증명이라도 하듯 허물어진 벽을 그대로 활용했다. 개인 별장을 리조트로 바꿔 운영을 시작한 건 2006년부터다.

아나 만다라의 입구. 세월의 흔적을 증명이라도 하듯 허물어진 벽을 그대로 활용했다. 개인 별장을 리조트로 바꿔 운영을 시작한 건 2006년부터다.

아나 만다라는 얕은 언덕, 소나무 우거진 숲속에 들어서 있다. 프랑스인들이 1920~30년대에 지은 개인 별장 17채를 2006년 리조트로 바꿨다. 17개 빌라는 현재 72개 객실로 나뉘어 운영된다.
예약한 객실은 1박 15만원으로 가장 저렴한 ‘르 프티 룸(Le petit room)’이었다. 로비에서 체크인을 하니 직원이 카트를 몰고 객실까지 데려다줬다. 진한 노란색 외벽과 진갈색 지붕으로 이뤄진 건물은 프랑스 산골 주택을 연상케 했다. 끼익. 나무 문을 열고 공용 거실을 통과해 2층 객실로 가서 짐을 풀었다. 거실과 객실에는 약 100년 전 프랑스 부호들이 쓰던 고가구가 그대로 남아 있었고 창틀, 조명 스위치 등은 낡아보였다. 마룻바닥은 걸을 때 끄윽끄윽 소리를 내기도 했지만 전혀 거슬리지 않았다. 방 이름(petit)처럼 작고 귀엽기보단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다정하고 아늑한 공간이었다.

빌라 안에 들어서면 만나는 공용 거실. 격자형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볕이 따스하다.

빌라 안에 들어서면 만나는 공용 거실. 격자형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볕이 따스하다.

객실 밖으로 보이는 달랏 시내.

객실 밖으로 보이는 달랏 시내.

아나 만다라는 객실만 매력적인 게 아니었다. 이틀밤을 묵는 동안 틈틈이 산책을 하고 운동도 했다. 식물원 못지않게 온갖 꽃과 풀들이 어우러진 정원, 아름드리 나무가 우거진 7만㎡ 숲을 외면하고 눈만 붙이고 가기엔 아까워서였다. 이제껏 묵은 호텔·리조트 중에서 이토록 조깅 하기에 완벽한 조건을 갖춘 곳은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달리기에 가장 좋은 시간은 물론 아침시간이다. 이른 아침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으며 혹은 유럽과 베트남식이 어우러진 근사한 조식을 먹은 뒤 말이다. 그래야만 아나 만다라가 자랑하는 산 속 휴양(Mountain retreat)의 정수를 체험할 수 있다.

달랏은 연중 기후가 선선해서 수영장은 온수로 운영된다.

달랏은 연중 기후가 선선해서 수영장은 온수로 운영된다.

리조트는 제법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식당 앞 정원에서 즐기는 애프터눈 티, 3코스 베트남 음식을 배우는 쿠킹클래스, 달랏 도심 혹은 아웃도어 체험을 즐기는 투어 프로그램까지. 빠듯한 일정 때문에 아나 만다라의 다양한 서비스를 즐기지 못했지만 다음에 다시 찾을 명분으로 남겨뒀다. 한국의 추위나 더위가 지긋해지면, 혹은 지리멸렬한 일상을 견디기 힘들어지면, 달랏이 아니라 아나 만다라가 그리워 여행가방을 꾸릴 것만 같다.

고산도시 달랏의 아나 만다라 리조트 #해발 1500m 1년 내내 봄같은 날씨 #침엽수 우거진 숲 매력적 #프랑스 부호들의 낡은 고가구도

◇여행정보=한국에서 베트남 달랏으로 가는 직항편은 없다. 하노이나 호치민을 경유해야만 한다. 베트남항공이나 비엣젯항공을 이용하면 된다. 비엣젯항공의 경우, 비수기 기준 30만원 이하로도 인천~달랏 왕복 항공권을 판다. 예약은 리조트 웹사이트(anamandara-resort.com)나 호텔 예약사이트를 이용하면 된다. 주중 기준 가장 저렴한 ‘르 프티 룸’이 12만~15만원 수준이다.

화려하기 보단 고즈적한 분위기의 객실.

가장 저렴한 객실이지만 욕실이 준수하다.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조명 스위치.
리조트 한편에는 텃밭도 있다. 레스토랑에서 쓰는 채소다.
유럽과 베트남식이 어우러진 조식 뷔페.
쌀국수 맛도 근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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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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