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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복지 추구해온 유럽은 지금, 지속 위한 연금개혁 중

중앙일보

입력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왼쪽)과 장 폴 들르봐이예 전 앙마르슈 총선 공천위원장. 마크롱 대통령은 들르봐이예를 연금개혁 전담 고위 관료로 임명했다. [AFP]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왼쪽)과 장 폴 들르봐이예 전 앙마르슈 총선 공천위원장. 마크롱 대통령은 들르봐이예를 연금개혁 전담 고위 관료로 임명했다. [AFP]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장 폴 들르브와예 전 장관을 연금 개혁을 전담할 고위관료로 14일(현지시간) 임명했다. 쉬운 해고가 주요 내용인 노동 개혁에 이어 연 지출이 국내총생산(GDP)의 14.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인 프랑스의 연금제도를 손보는 작업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위해서다. 유럽 국가 중 안정적인 연금 체계를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 스위스도 오는 24일 여성의 정년퇴직 연령을 64세에서 65세로 늦추는 등 연금개혁안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한다.
2차 대전 이후 산업화가 진행된 급속한 성장기에 완벽한 복지를 추구해온 유럽 각국이 연금제도 개혁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당장 연금 적자가 나는 국가는 물론이고 현재 아무런 문제가 없는 국가들도 수십 년 후를 내다보며 지속가능한 연금제도를 위해 보완책을 모색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노동시장 개편과 함께 대선 과정에서 2대 개혁 과제로 꼽았던 연금개혁안을 본격 추진하기 위한 준비에 돌입했다. 프랑스 일부 노조들이 지난 12일 총파업을 벌인데 이어 공무원 노조들이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다음 달 10일 총파업과 대규모 장외집회를 예고한 상황에서다.

마크롱 정부의 노동개혁에 반대해 마르세유에서 총파업 시위에 나선 프랑스 노조. [AP=연합뉴스]

마크롱 정부의 노동개혁에 반대해 마르세유에서 총파업 시위에 나선 프랑스 노조. [AP=연합뉴스]

마크롱 대통령은 복잡하고 세분된 프랑스의 연금 시스템을 개편해 내년 초 단일 체계로 바꾸겠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연금 이해 당사자들과 협의를 진행하고, 관련 장관들과 개혁을 위한 준비 작업과 동시에 입법안 작성을 책임질 자리에 핵심 측근을 앉혔다. 들르브와예 상원의원은 2002~2004년 자크 시라크 대통령 시절 공공서비스 장관을 지낸 공화당 출신이지만 대선 때 마크롱을 지지하며 앙마르슈(전진)의 공천위원장을 맡았다.
마크롱 대통령은 특히 일부 국영철도 근로자들이 일반 근로자들보다 10년 이른 52세에 퇴직하더라도 연금을 전액 받을 수 있도록 한 규칙을 폐지할 계획이라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1995년 자크 시라크 보수 정권에선 알랭 쥐페 총리가 공무원 연금 납입기간을 늘리려다 전국에 걸친 파업에 부딪혔는데, 당시 구조조정을 우려하던 철도 근로자들이 파업에 동참해 전국 철도망이 끊기는 사태가 발생했다. 항의 시위도 3개월간 이어지면서 정치적 타격을 받아 97년 선거에서 정부를 사회당에 넘겨줬다.
하지만 마크롱은 연금 수급 연령과 관련해선 62세로 유지하면서 국영 기업들과 사기업 간 연금 격차는 해소하겠다고 밝혀왔다. 이를 위해 지난 7월 국영철도 사내지에 연금개혁안의 윤곽을 소개한 데 이어 내년 중반 또는 2019년 초반에는 시행하겠다고 예고했다. 국영철도 다음으로 에너지 등 다른 국영기업의 연금에 대한 개혁도 시도할 작정이어서 노동개혁보다 더 강한 반발을 뚫어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다.

프랑스 노동법 개정 반대 시위 [AP=연합뉴스]

프랑스 노동법 개정 반대 시위 [AP=연합뉴스]

24일 스위스 국민투표에선 두가지를 묻는다. 첫번째는 내년부터 부가가치세를 0.3% 올려 장애연금 재정으로 쓰도록 할 것인지다. 스위스의 부가가치세율은 8%로, 독일(19%)이나 프랑스(19.7%)에 비해 낮다.
두번째에는 여성의 정년퇴직 연령을 65세로 한 살 늦추는 안이다. 당초 남성은 65세에서 67세로, 여성은 64세에서 65세로 늦추려다 반대가 심하자 여성만 1년 연장해 남성과 같게 하는 수정안을 정부가 냈다. 여기에 기업연금 자산의 환산율을 4년 동안 6.8%에서 6%로 낮추는 방안도 함께 묻는다. 2019년 1월 기준 45세 미만 가입자부터 연금 수령액은 감소하게 된다. 연금 가입자의 손해 보상을 위해 65세 은퇴가 적용되는 여성 연금 가입자에게 매달 70스위스프랑(약 8만3000원)을 추가 지급하는 내용도 담겼다. 연계된 사안이라 두가지 중 하나라도 부결되면 모든 내용이 백지화된다.
현재 연금이 안정적이지만 2020년이면 재정에 적신호가 켜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스위스에선 개혁 논란이 이어져왔다. 지난해 치러진 국민투표에선 저소득층의 연금 수급액을 올리는 방안이 반대 59.4%로 부결됐다. 재원 마련을 위해 증세가 예상된데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

스위스는 24일 국민투표에서 고령자와 장애인 연금 관련 개정안의 향배를 결정한다. 찬반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젊은이에 대한 배신, 퇴직자에 대한 처벌이라며 반대를 촉구하는 인쇄물. [스위스인포 사이트 캡처]

스위스는 24일 국민투표에서 고령자와 장애인 연금 관련 개정안의 향배를 결정한다. 찬반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젊은이에 대한 배신, 퇴직자에 대한 처벌이라며 반대를 촉구하는 인쇄물. [스위스인포 사이트 캡처]

이번 국민투표 사안에 대해선 현재 찬반이 팽팽하다. 이달초 실시된 두 차례의 여론조사 결과 찬성 투표가 50%를 약간 상회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을 뿐이다. 스위스 연금기금연합측은 “낮은 이자율에 비해 자산의 환산율이 너무 높아 국민투표에서 반대 표를 던지는 것은 불장난을 하는 것과 같다"며 찬성을 독려하고 있다. 스위스에서 근로자가 가장 많은 미그로스 슈퍼마켓 체인의 기업연금측도 “현재 근로자들의 희생으로 기여분보다 너무 많은 연금액을 주고 있는 만큼 올바른 방향인 것은 맞다"고 밝혔다.
반면 대다수 고용주 협회와 경제 부문 대표들은 소비 위축 등을 우려해 부가가치세 인상에 반대하고 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이들은 한꺼번에 지지하기 어려운 제안들을 정부가 섞어놨다고 비판 중이어서 투표 결과가 주목된다.
선거를 앞두고 연금 개혁안 논의가 활발한 국가들도 있다.
체코 정부는 다음 달 20~21일 총선 전에 그동안 위원회를 꾸려 마련해온 연금 개혁안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프라하 일간 모니터가 보도했다. 중도좌파 사민당 정부는 현재 적자인 연금 재정이 인구 고령화로 인해 악화할 것이므로 연금 수급 연령을 점진적으로 인상하자는 안을 제시해왔다. 향후 연금 개혁안을 총선 이후 꾸려질 정부에 따라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오스트리아 대선 당시 정치인들의 투표 장면 [AFP]

오스트리아 대선 당시 정치인들의 투표 장면 [AFP]

오스트리아에서도 다음 달 15일 총선을 앞두고 차기 정부가 현재 연금에 더해 무보증 확정기여형 퇴직연금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연금협회나 컨성팅 기관들로부터 나오고 있다. 회사의 기여금 수준이 사전에 결정되고, 근로자가 받을 연금 급여액은 적립금 운용 실적에 따라 변동되는 연금 제도로, 노동사회장관이 “중소기업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무보증 확정기여형 퇴직 연금 제도를 추가한 독일은 이미 연금수랍 연령을 2029년까지 67세로 점진적으로 연장하고, 조기 연금수령 연령도 60세에서 63세로 늦춘 상태다. 독일은 그러면서 50세 이상 고령층에 대한 직업교육 훈련을 지원해 연금 의존도를 낮추면서 근로 의욕을 붇돋우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일본 사이타마현 하토야마(鳩山)의 구청 고령자지원과에서 노인 주민들을 상담하고 있다. [중앙포토]

일본 사이타마현 하토야마(鳩山)의 구청 고령자지원과에서 노인 주민들을 상담하고 있다. [중앙포토]

초고령사회에 대한 중장기 대책을 마련 중인 일본은 내각부 전문가회의가 공적 연금 수급 연령을 현재 65세에서 70세 이후로 늦추는 방안을 정부에 제안했다고 아사히신문이 보도했다. 일본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관련 법률 개정안을 연내에 의결할 계획이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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