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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가족] "HDL 콜레스테롤 높이는 폴리코사놀…심뇌혈관 질환 막는 새 물질 가능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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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담회│이상지질혈증 치료 동향과 대안

혈액 속 지방 성분이 많은 상태인 이상지질혈증의 치료에는 지난 30여 년 동안 ‘스타틴’이 처방됐다. 하지만 최근에는 스타틴의 부족함을 보완하는 보조·대안제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스타틴이 당뇨병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내용의 최근 연구결과와 무관치 않다. 지난 7일 서울 여의도동 콘래드 호텔에서는 제54차 한국지질·동맥경화학회 추계학술대회 사전 행사로 각국의 전문가가 모여 이상지질혈증의 최신 지견과 치료 대안을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이날 전문가들은 폴리코사놀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김현민 중앙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이하 김)=이상지질혈증은 총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 LDL 콜레스테롤(나쁜 콜레스테롤)의 수치가 높거나 HDL 콜레스테롤(좋은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은 상태를 말한다. 병원에서는 치료 시 90% 이상 스타틴에 의존하고 있다. 스타틴은 이상지질혈증의 대표 치료제로 LDL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약이다. 전 세계에서 3000만 명 이상이 이 약을 복용한다.

조경현 영남대 의생명공학과 교수(이하 조)=지난 30년은 ‘스타틴’의 시대였다. 그런데 스타틴 치료로 LDL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도 여전히 주요 심뇌혈관 질환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LDL 콜레스테롤이 아닌 중성지방 혹은 HDL 콜레스테롤 때문에 심뇌혈관 질환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할 새로운 치료법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면서 10여 년 전부터 ‘HDL 콜레스테롤’이 화두로 떠올랐다.

찬타르 코팩스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의대 교수(이하 코팩스키)=HDL 콜레스테롤은 혈관 벽에 붙은 LDL 콜레스테롤을 떼어 간으로 운반해 분해한다. LDL 콜레스테롤의 산화를 억제하고 혈관내피세포의 기능을 개선해 심뇌혈관 질환을 예방한다.

조=HDL 콜레스테롤은 아포지질단백질(Apo)·효소 등으로 구성된 크기 9~15㎚(나노미터)의 분자다. HDL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을수록 심뇌혈관 질환의 위험은 뚜렷이 감소한다. 그런데 최근 HDL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다고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라는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다.

코팩스키=신장병 환자에게서 HDL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도 항산화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견됐다. 학계·임상에서 HDL 콜레스테롤의 ‘품질’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HDL 콜레스테롤의 품질은 양 외에도 생물학적으로 얼마나 제 기능을 잘 하는지, 분자 구성이 어떤지가 중요하다.

조=HDL 콜레스테롤은 크고 표면이 매끄러울수록 좋다. 단백질 구성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HDL 콜레스테롤 표면에 ‘ApoA-I’ 단백질이 많을수록 품질이 좋다. ApoA-I은 HDL 콜레스테롤의 구조를 지탱하고 산화를 막는다. 치매를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진 ‘(베타) 아밀로이드’가 혈액을 떠돌다 이 단백질을 밀어내고 자리를 빼앗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HDL 콜레스테롤의 항산화 기능이 떨어진다. 최근에는 HDL 콜레스테롤의 양을 늘리고 질을 높이는 방법으로 ‘콜레스테롤전달단백질(CETP)’에 대한 연구가 주목받고 있다.

하비에르 로페스 쿠바 국립뇌신경외과센터장(이하 로페스)=CETP는 HDL 콜레스테롤에 붙어 있는 ‘나쁜’ 단백질이다. HDL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고 LDL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여 심뇌혈관 질환의 위험을 높인다. CETP를 억제해야만 질 좋은 HDL 콜레스테롤이 많아지고 LDL 콜레스테롤이 생기는 것을 막아 이상지질혈증, 나아가 심뇌혈관 질환을 예방할 수 있다. 100세 이상 장수하는 가족에게서 CETP 결핍 유전자가 발견되기도 했다.

김=이상지질혈증 치료의 새로운 대안으로 많은 제약사가 HDL 콜레스테롤의 수치를 높이는 CETP 저해제 개발에 뛰어들었다. 임상시험을 거쳤지만 부작용이 크거나 뚜렷한 효과가 없어 중단됐다. 지난달 유럽심장학회에서 머크사의 ‘아나세트라핍’이 3상 임상시험 결과를 발표했다. 3만 명을 대상으로 4년간 추적·관찰한 대규모 연구였다. 이 약은 CETP를 효과적으로 억제해 HDL 콜레스테롤의 농도를 두 배 높이고 LDL 콜레스테롤의 수치를 20% 낮췄다. 주요 심뇌혈관 질환의 발생도 9% 줄이며 효과와 안전성을 입증했다.

조=CETP의 활동을 막는 또 다른 물질로 1990년대 초 개발되기 시작한 쿠바산 폴리코사놀이 있다. 폴리코사놀은 HDL 콜레스테롤의 수치를 높이고 LDL 콜레스테롤의 수치를 낮추며 항산화 작용으로 노화를 막고 수명을 연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페스=폴리코사놀은 쿠바산 사탕수수의 왁스에서 추출·정제한 8개의 지방 알코올을 섞어 놓은 물질이다. 천연에서 유래한 셈이다. 폴리코사놀의 주요 효능은 콜레스테롤 수치를 개선하는 것이다. 쿠바 국립과학연구소 연구에 따르면 성인이 폴리코사놀을 하루 20㎎씩 4주간 섭취했을 때 총 콜레스테롤이 11%, LDL 콜레스테롤이 22% 감소했고 HDL 콜레스테롤 수치가 29% 상승했다.

조=국내에도 폴리코사놀 관련 연구가 있다. 이상지질혈증이 유발된 어류(제브라피시)에 9주 동안 폴리코사놀을 경구 투여하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 폴리코사놀이 CETP를 억제해 HDL 콜레스테롤의 수치가 올라가고 혈액 속 지질의 농도가 떨어졌다. 8주간 매일 섭취한 인체 대상 연구에서도 CETP 활성이 억제돼 같은 효과가 나타났다. LDL 콜레스테롤의 산화가 눈에 띄게 줄고 혈액 속 중성지방 농도도 감소했다. 혈압도 함께 떨어졌다. 고무적인 결과다.

로페스=폴리코사놀은 심혈관 질환뿐아니라 뇌 질환 치료에도 효과적이다. 허혈성 뇌졸중을 경험한 환자 92명을 대상으로 한 무작위 이중맹검 시험에서 아스피린과 폴리코사놀을 함께 복용하게 했더니 아스피린과 위약으로 치료한 그룹에 비해 LDL 콜레스테롤, 총 콜레스테롤, 혈청 지질 콜레스테롤 수치가 감소하고 HDL 콜레스테롤 수치가 증가했다. 뇌졸중 재발도 크게 줄었다. 간 기능이 좋지 않은 환자에게서도 같은 효과가 나타났고, 신장 질환자에게서는 콜레스테롤 수치가 더 개선됐다.

조=폴리코사놀 섭취 결과 HDL 콜레스테롤의 품질도 좋아졌다. HDL의 크기가 커지고 양도 많아져 항산화 기능이 개선됐다. 노화 관련 질환이나 고혈압·당뇨·심혈관 질환을 예방, 억제할 수 있을 것이다.

로페스=폴리코사놀의 부작용으로는 불면증·두통이 생길 수 있고 비만 집단에서의 체중 감소가 보고됐다. 적정 용량은 20㎎ 정도로 본다. 인체 적용 시험 결과 5~20㎎까지는 용량에 따라 효과가 높아지다가 그 이후부터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간 기능 손상도 관찰되지 않았다. 이상지질혈증을 치료할 때 기존 약물과 함께 폴리코사놀을 복용하면 콜레스테롤 수치 개선에 더욱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김=많은 약제가 천연 추출물로부터 개발되기도 한다. 사과나무 껍질에서 추출한 ‘플로리진’이 연구를 거쳐 현재 제2형 당뇨병의 새로운 치료제로 사용되고 있다. 이렇게 효과와 안정성이 입증돼 신약으로 개발되려면 많은 과정을 거친다. 이상지질혈증의 치료 보완제로 제시된 폴리코사놀은 현재 건강기능식품으로 활용할 수 있다. 신약으로 개발하려면 질환에 대한 직접적인 효과와 안정성을 입증하는 대규모 임상 연구가 필요하다.

글=윤혜연 기자 yoon.hyeyeon@joongang.co.kr,
사진=프리랜서 조상희·김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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