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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뒷담화] 슈뢰더 전 독일 총리와 3일의 동행, 두 번의 눈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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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를 3일간 취재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3일간, 한 사람의 사진취재,
20여년 이상 사진기자를 해왔지만 처음 받아본 취재의뢰였다.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그렇지만 그 의미는 알 듯했다.
3일의 동행에서 그의 이야기를 찾으라는 의미로 이해했다.

20170909 김영희 슈뢰더

20170909 김영희 슈뢰더

9월 9일 토요일 오후 4시, 중앙일보 김영희 대기자와 대담이 첫 만남이었다.

김 대기자가 첫 질문을 했다.

“경기도 광주에 있는 ‘나눔의집’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들었다. 어떤 이유인가?”

“사실 일본의 젊은 세대는 과거 범죄행위 참여자가 아니다. 그렇지만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역사에서 교훈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 범죄행위에 가담하지 않았더라도 역사적으로 일어난 일에 대한 책임을 후세대가 통감하고 책임질 필요가 있다. 독일에선 독일이 과거 저지른 잘못된 행위에 대해서 후세대가 반복하지 않도록 기억시키고 배우고자 한다. 후세대는 죄를 짓지 않았어도 역사적으로 책임을 같이 져야 한다.”

그의 답에 적잖이 놀랐다.
‘나눔의집’ 방문은 11일에 예정되어 있었다.
안네 프랑크의 사진 액자와 기부금 1000만원을 전달할 것이란 사실이 보도자료로 이미 알려져 있었다.
사실 처음 그 보도자료를 봤을 때, 출판사의 마케팅 전략이겠거니 했다.
이번 한국 방문이 그의 한국어판 자서전 발간과 맞물려 있기에 그리 지레짐작했다.

그런 터니 그의 말을 듣고 뜨끔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나눔의집 ’방문에 대한 분명한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당신의 소신을 한 번 더 강조했다.

“이런 제스처를 하는 것에 있어서 하등의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없다. 외교적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현직 총리가 아니지만, 설령 현직 총리라 해도 이것은 객관적 사실과 역사적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의 운명에 대한 관심표명이라는 측면에서 외교적 관례와는 다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객관적 사실과 역사적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의 운명에 대한 관심표명'이 외교적 관례를 앞선다는 것, 바로 그의 소신이었다.

9월 11일 오후 3시,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에 도착했다.
그가 고인이 된 김학순 할머니의 흉상 앞에 섰다.
김 할머니가 1991년 위안부 피해를 공개적으로 처음 알린 분이라는 소개에 이내 표정이 숙연해졌다.
그리고 머리 숙여 인사를 했다.
그리고 몇 발 다가와 '나눔의집' 소녀상 앞에 섰다.
한참을 마주 보던 그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위안부는 잘못된 표현이라 생각한다. 위안이라는 말엔 자발적이란 의미가 담겨있다. 그런데 여기 계신 분들은 전쟁의 참혹함에 희생된 분들이다.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란 표현이 보다 정확하다.”

평소 그렇게 생각해왔다고 했다.
그는 이들 위안부 피해자를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충분히 자격이 있고 적극 지지한다고 했다.

‘나눔의집’ 생활관으로 들어섰다.
모두 네분의 할머니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용수(90)·이옥선(91)·박옥선(94)·하점연(96) 할머니였다.
그는 할머니들과 일일이 포옹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할머니들과 마주앉아 대화를 이었다.
그의  이마에 금새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마침 에어컨이 고장 났다고 했다.
그런데다 수많은 취재진에 둘러 쌓였으니 찜통과 다름없었다.
땀냄새와 발 냄새마저 진동했다.
송골송골하던 땀은 어느새 비오 듯 흐르고 있었다.
그는 아랑곳없이 할머니들과 대화를 이었다.
보다 못한 수행원이 휴지를 건넸다.
그제서야 이마의 땀을 훔쳤다.
그러다 어느 순간 손으로 땀을 훔쳤다,
그 순간, 표정이 여느 때와 사뭇 살랐다.

 고개를 돌려보니 마주앉은 박옥선 할머니가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다시 그를 보았다.
그도 눈을 훔치고 있었다.
솔직히 그 순간 눈물이라는 확신이들지않았다.
그가 손으로 훔치는게 비 오듯 흐르는 땀인지 아니면 눈물인지 분간을 할 수 없었다.

다만 뭔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을 뿐이었다.
(나중에 다른 장소에서 그가 말했다. 눈물을 흘렸노라고….)

이용수 할머니가 말했다.
“먼 길 오셔서 너무나 감사 드립니다.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독일이 사죄하는 모습에 감명받아 울었습니다. 행복한 분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릴 찾아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 드립니다."

그는 머리 숙여 답례를 했다.

 대화가 끝나고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그는 또 할머니들을 껴안았다.
그들의 표정에서 행복이 읽혀졌다.
비록 짧았지만 진심을 나눈 후의 표정이었다.

이용수 할머니의 손을 잡고 바깥으로 나서다가 그가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를 기다리는 수많은 취재진을 발견한 게다.

그는 호주머니에서 얼른 구둣주걱을 꺼내 부랴부랴 구두를 고쳐 신었다.
할머니들과 함께 보조를 맞추며 나오느라  구두를 제대로 신지 못한 터였다.
첫날 김영희 대기자와 대담에서 그가 이런 말을 했었다.
"정치인은 대중에게 항상 단정한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가 했던 말을 기억하기에 그 순간 그의 속 마음이 읽혀졌다.

다시 이용수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그의 오른 소매 위에 묶여 있는 끈은 이옥선 할머니가 매준 것이었다.
“우리가 죽기 전에 일본이 사죄와 배상을 하고 문제를 해결해주기를 부탁한다.”고  말하면서….

그 다음 날, 그의 팔 목을 확인했다.
끈은 그의 왼 팔목에 매어져 있었다.

원래 기자회견이 예정되 있었다.
수많은 취재진 앞에선 그가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지금 마음으로는 기자회견을 할 수 없다. 할머니들과 고통을 나눴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슴이 아프다. 때론 기자회견이 어울리지 않는 장소가 있는데 지금 여기가 바로 그런 것 같다.”

숙연하고 정중했다.
사실 그가 보여준 행동과 들려준 말만으로도 딱히 기자회견은 필요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그 많은 기자들 중 누구 하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헤어지며 또 포옹을 했다.
박옥선 할머니가 환하게 웃었다.

그가 등을 돌려 이용수 할머니와 포옹으로 작별인사를 나눴다.
그의 등에 배어 나온 땀 자국이 선명했다.
박옥선 할머니는 그새 또 눈을 훔치고 있었다.

 9월 11일 오후 6시 30분,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영화관람이 예정되 있었다.
그날 볼 영화는 [택시운전사] 였다.
행사를 진행한 출판사의 대표가 내빈을 소개했다.

내빈 소개가 끝났을 때 그가 갑자기 손을 들고 말했다.

“여기 꼭 소개를 해야 할 사람이 있는데 빠진 것 같다. 그는 김사복씨의 아들 김승필씨다.”

김승필씨가 일어나 인사를 했다.

바로 그의 옆자리였다.

영화가 끝나자마자 통역사가 먼저 내게 다가와 말했다.

“총리께서 사진을 안 찍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네요.”

뭔 일인가하고 놀라서 물었다. “왜요?”

“하도 많이 우셔서 눈이 새빨개졌다고 하시네요.”

뒤따라 나오는 그의 눈을 봤다.
진짜 그랬다.
카메라를 들고 눈을 가리키며 찍는 시늉을 했다.
종일 붙어 다닌 터라 장난스럽게 시늉을 한 게다.

그가 손사래를 치며 활짝 웃었다.
그 순간 얼굴까지 빨개졌다.

그때 나도 모르게 카메라가 셧터를 눌러버렸다.
엉겹결이었다.
미리 부탁까지 한 상황에 셧터를 눌렀으니 큰 결례가 아닐 수 없었다.
죄송하다고 말을 하려는 순간,  갑자기 그가 내 어깨를 툭 쳤다.
호탕한 웃음과 함께였다.

기념촬영을 원하는 관람객들에게 일일이 응해줬다.
기념촬영을 다 마치고 그가 엘리베이터를 탄 순간이었다.
엘리베이터를 문을 붙잡고 그에게 부탁을 했다.
김승필씨와 기념사진 한 장 찍자고 했다.
둘의 기념사진을 찍어두지 않은 게 맘에 걸린 터였다.

부탁을 듣자마자 그가 수행원들을 헤치고 나왔다.
마침 김승필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김황식 전 총리도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9월 12일 오후 3시 30분, 세종문화 회관 야외 쉼터에서 그가 양복 상의를 벗었다.
아침 7시 부터 시작된 일정이었다.
7시, 롯데호텔에서  월드클래스 300 기업협회가 주최하는 조찬 강연회,
10시 30분, 일산에서  EBS 초대석 녹화,
오후 2시 30분, 세종문화회관에서 기자 간담회 일정을 마친 직후였다.
그와 함께하면서 양복 상의를 벗고 쉬는 모습을 처음본 터였다.
쉬면서도 사인을 요청하는 사람에게 일일이 기념사진 촬영까지 응했다.
.

잠깐의 휴식 후 걸어서 교보문고로 향했다.
오후 5시에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만남이 예정된 터였다.

그 사이 1시간 가량  여유가 있었다.

교보문고를 둘러보다가 당신의 책을 소개하는 광고를 발견했다.
다소 놀라워 하면서 쑥스러워 하는 듯헸다.

마침 전시가 있었다.
윤동주 시인의 시를 화가들이 그림으로 표현한 전시였다.
안내를 받으며 둘러보다가 혼자 조용히 보겠다고 했다.
그러다 한 작품 앞에 오래 머물렀다.
'별 헤는 밤'을 그린 작품이었다.
한 참을 보더니 급기야 구입하고 싶다고 했다.
그 그림이 한 눈에 그에게 와 닿았다고 했다.

청와대로 가야 할 시간이었다.
교보 빌딩 입구에서 그를 픽업할 대사관의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호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아주 작은 빗이었다.

그렇게 조그만 빗으로 머리를 단정히 정리하고 그가 청와대로 떠났다.
내 몫은 여기까지였다.
3일간의 동행으로 한 사람을 다 알 수는 없다.
다만 하나 하나의 단초를 통해 어느정도 가늠해 볼 수는 있을 터다.
내게 그 단초들은 그만의 이야기로 다가왔다.
그 단초들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shotgun@joongang.co.kr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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