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워킹맘 다이어리

'엄마' 혐오 시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이지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지영문화부 차장

이지영문화부 차장

‘240번 버스’ 사건이 결국 ‘맘충’ 논란으로 번졌다. 아이만 하차한 상황을 뒤늦게 알고 버스 운행 중 정차 요구를 한 아이 엄마에 대해 성난 네티즌들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맘충이 뭐에 정신 팔렸길래 애를 떨구나” “애 엄마가 카톡 하고 있었나” “자기 자식 잘 챙기지 못한 걸 누구한테 뒤집어씌우나” 식의 비아냥에 “맘충부터 처벌하라” “공공버스에 맘충 탑승을 금지시키는 걸 제도화하라” 등의 주장까지 등장했다. 이들의 짐작대로 그 아이 엄마가 제 아이 내리는 것도 모른 채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치더라도, 너무 심한 질책이다. 권력형 비리도, 조직적 폭력도 아닌 한 개인의 단순 실수에 과잉 흥분하고 있다. 엄마란 존재가 벌레(‘맘충’) 취급 당하며 집단 혐오의 대상이 돼버린 형국이다. 자기 스트레스에 짓눌려 폭발 직전 상태였던 대중들이 제일 만만한 화풀이 상대로 ‘엄마’를 찾은 것 같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세상이 ‘엄마’를 함부로 폄훼하고 공격할 수 있는 건 엄마가 약자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부당하게 대우해도 그만둘 수 없다는 걸 아는 ‘갑’들의 전형적 갑질인 셈이다. 여자는 엄마가 되면서 ‘을’이 된다. 목숨 걸고 지켜야 할 자식이 있다는 게 치명적 약점이 돼버린다. 매사에 의존적인 갓난아기가 사리 분별 가능한 성인으로 자라는 과정에서 엄마가 이웃에게, 교사에게, 또 동료 엄마에게 저자세를 취해야 할 일은 부지기수다. 거기에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는 이데올로기는 엄마가 된 여자에게 자기 희생적 모성애와 무한책임을 강요한다. 그리고 그 숭고한 어머니상에 미치지 못했을 땐 가차 없이 비난의 칼을 들이댄다. 『82년생 김지영』의 주인공 김지영은 유모차 끌며 커피 한 잔 들고 공원에 갔다가 “맘충 팔자가 상팔자”란 조롱을 받았다. 엄마라면 모름지기 여유 시간엔 삯바느질이라도 해 가계에 보탬이 돼야 한다는 것인지….

사실 어느 시대도 엄마에게 꽃방석을 깔아주진 않았다. 전래동화에서도 그 흔적이 보인다. ‘선녀와 나무꾼’의 선녀는 날개옷을 찾자마자 두 아이를 안고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지상에서의 엄마 노릇이 그만큼 고달팠던 것이다. 엄마인 여자가 견디기에 상황은 선녀 때보다 더 나빠졌는지 모른다. 아이의 건강·인성에서부터 난수표 입시제도에 대응할 책임까지 모조리 엄마 몫인 데다, 초고속 인터넷망 뒤에서 엄마에게 화풀이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는 네티즌들이 한무더기니 말이다. 더욱이 현실세계에선 날개옷을 찾으리란 희망도 없다. 올해 합계 출산율 예상 수치는 1.03명. 예비 엄마들이 선뜻 엄마 될 용기를 못 내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이지영 문화부 차장